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가 실시한 2014년 경제정책방향 중점과제 설문조사(복수응답) 결과, 설문대상이었던 교수, 기업인, 연구원 등 전문가 291명이 꼽은 올해 경제정책 중점과제로는 '성장잠재력 확충(58.1%)'이었다.
이어 일자리 창출(43.0%), 경제활성화(36.1%) 등이 뒤를 이었다. 한편 일반국민 1000명이 꼽은 경제정책 중점과제로는 '서민생활 안정(54.1%)'이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2012년 대선 정국을 전후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경제민주화는 순위가 뒤로 한참 밀렸다(경제민주화 확립 : 전문가-10.3%, 일반국민-7.4%).
성장잠재력 확충, 일자리 창출, 경제활성화, 서민생활 안정 등 표현만 다를 뿐 속성은 매한가지나 다름없는 이 같은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기업 투자활성화다.
여기 저기 쪼개 써야 하는 정부 예산으로는 한계가 있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기업의 역할을 이끌어내야 한다. 기업이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 소비심리가 발생하고 이 흐름은 경제활성화로 연동된다.
기업 투자활성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도 부족함이 느껴질 수밖에 이 시점, 역주행을 시도하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움직임은 기업들의 투자마인드를 위축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밀실합의'의 산물(産物) 부자증세,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최근 정치권은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3억원→1억5000만원)을 하향조정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과 대기업(과표 1000억원 이상) 최저한세율(16%→17%)을 상향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법인세법 개정안을 합의처리했다.
2011년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8%로 인상하고 최고세율 적용 과표구간(3억원)을 신설하는 '한국판 버핏세'가 도입된 지 단 2년 만에 기습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대기업 최저한세율 인상 또한 경제민주화 바람에 휩쓸려 인상이 이루어진지 1년 만에 재차 인상됐다.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한 '증세' 없는 복지재원 확충을 약속했던 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약속을 깨뜨리는 정치권의 결단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경제주체들에게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는 법안을 여론수렴 과정 없이 밀실합의로 처리한 부분도 논란이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이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경제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당시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본 기획재정부 안팎에서도 "세수효과도 크지 않을뿐더러(연간 4000억원～5000억원 수준) 소비와 투자를 위축, 경제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스민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었다.
'돈줄' 가로막은 정치적 선택, '비판' 목소리
특히 중소기업 등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자금여력을 지닌 대기업들을 상대로 한 증세(최저한세율 인상)는 경제활성화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권이 나서 기업들을 압박해 투자를 하게끔 만드는 시대가 아니다. 투자환경을 좋게 만드는 등 당근을 제시해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해야 한다. 대기업들에게 투자 많이 하라고 하면서 한편으로 세금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재계가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에 반응, '투자축소'라는 형태로 조세저항 기조를 선택할 경우 올해 정부가 설정한 경제성장률 목표(3.9%) 달성 등 전체적인 정부의 국가경제 운용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일자리 문제와도 직결, 결과적으로 서민생활 안정기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홍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수요는 늘어나고 전반적인 세수가 부족하다보니 조세저항이 가장 적을 것으로 판단되는 기업들에게 돈을 걷겠다는 것"이라며 "경제이론적으로 보면 기업활동을 하는데 좋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 과표구간을 하향조정한 것도 경제활성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도 고소득층은 적지 않은 세금을 내고 있는 상황. 지난 2012년 납부된 15조1706억원의 종합소득세수 중 49%를 상위 1%의 고소득층이 부담했다.
상위 10%로 범위를 넓히면 세부담 수준은 무려 86%에 달하는 형편이다. 상대적으로 큰 소비여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파급력을 담보하고 있는 이들이 가처분소득 축소를 기화로 지갑을 닫을 경우 경제활성화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경제전문가는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올려 만들어진 세수로 저소득층 지원을 늘리고, 이들 저소득층의 소비를 늘리는 이른바 '분수효과'를 노린 것"이라며 "하지만 재정을 통한 직접적인 지원은 한계가 있고, 저소득층의 소비진작은 고소득층의 소비활성화가 가져오는 수준의 파급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과표구간 하향조정으로 기업들에게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표구간 하향조정으로 세부담이 증가하는 계층은 9만1000명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근로소득자의 경우 대기업 임원급, 사업소득자의 경우 고소득 전문직 등이 이 계층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과표가 1억5000만원 이상인 사람들 중 근로소득자의 경우 대부분 대기업 임원들이다. 이들이 늘어난 세금만큼 연봉을 더 인상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 하향조정으로 연 4700억원의 세수를 추가로 거둬들일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이 기업의 부담으로 떠넘겨지면서 투자감소 등 국가경제적으로 더 큰 손해가 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여전히 잠재된 정치적 '불확실성'
지난해 미국 연방정부 일시 폐쇄(셧다운) 사태가 진행되고 있을 당시, 미국 현지 경제 주간지 포천 인터넷판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기업의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실업률을 높이고 경제회복을 방해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이 현금을 축적하기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정치적 불확실성'에 있다, 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2분기 미국 비금융권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 등 유동자산 규모는 1조8000억 달러(한화 약 1931조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돈의 일부가 ‘투자’ 형태로 시장에 풀렸다면 실업률이 떨어지고 경제회복 속도가 빨라질 수 있었다는 것이 미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같은 정치적 불확실성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틈만 나면 이념대결로 시간을 허비하는 대한민국 정치권이 뿜어내는 불확실성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은 여전히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기업규제성 세금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적정수준의 사내유보금을 초과하는 금액에 법인세를 과세하는 '80년대 법안'을 부활시키는 움직임은 지난해 국회 논의과정에서 차단막에 걸려 보류됐지만, 언제든지 재논의 될 여지를 남겨둔 상황이다. 접대비 실명제 부활 입법안, 법인세율 인상안 등이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 이 같은 불확실성이 잔존하는 한 화끈한 투자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사내유보금 과세 도입방안 등은 기업활동을 옥죄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