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회복 불씨 확산, '기업투자 활성화'가 답이다"

경제상황 진단, 정부-재계 미묘한 '온도차'

정부가 추산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9%. 세계경제 성장세 확대, 정부의 정책효과 지속 등이 동력으로 작용, 2010년 이후 4년 만에 IMF(국제통화기금)가 추산한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3.7%)를 상회하는 수치를 잡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해 경제회복의 불씨가 지펴진 만큼 올해 정부의 정책적 노력과 민간의 활동 폭을 넓히면 한국경제가 침체일로를 벗어나 성장궤도에 재차 진입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박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이 핵심 키워드로 꼽고 있는 것은 단연 기업의 '투자활성화'다. 기업은 경제의 근간이다. 기업들의 돈줄을 풀어내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창출된 일자리를 통한 내수활성화 등 경제활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투자주머니를 확 풀어해치기를 주저하게끔 만드는 요인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경제상황을 진단하는 기본적인 시각 자체가 정부와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전국 2500개 제조업체 대상으로 기업경기전망지수(BSI : Business Survey Index) 조사 결과 올해 1분기 BSI 전망치는 전분기 대비 2%p 하락한 '92'로 집계됐다.

BSI 100을 초과하면 이번 분기보다 다음 분기에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기업들이 느끼고 있는 체감경기는 정부의 낙관적 현실인식 및 전망과는 현저한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것이 수치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불안한 기운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투자활성화 지표나 다름없는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여전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16일 통계청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2010년 25.8%에서 2011년 4.0%로 급전직하 한 뒤 2012년 -2.0%를 기록했다. 지난해의 경우 1분기 -15.4%, 2분기 -10.0%, 3분기 -4.7%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익성'을 최우선 가치로 설정해 씀씀이 여부를 결정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 이 같은 체감경기의 부진은 과감한 투자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최대 요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수익이 담보되지 않은 투자를 감행하는 것 자체가 '손해보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최근 일부 거시경제지표가 개선되고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내년 우리 경제 성장률을 3%대로 예상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불안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와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대내외 환경 변화의 파장이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큰 만큼 (정부의)정책적 배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활성화 가로막는 보이지 않은 장벽, '반(反)기업 정서'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양 갈래 길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다. 턴어라운드(Turn around)에 성공할 수도, 지난해에 이은 부진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는 지 답은 뻔할 뻔 자다. 일단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시대정신처럼 확산, 재계를 긴장시켰던 '경제민주화' 바람은 상당부분 잦아든 모습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바람이 남겨놓은 '반(反)기업 정서'는 여전히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이 같은 반기업 정서는 기업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핵심요인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골치 아픈 국내시장 보다는 저렴한 임금과 넓은 시장을 가진, 환경적으로 훨씬 우월한 해외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들이 나돈다.

반기업 정서에 가장 큰 피해자나 다름없는(?)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는 '국빈대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해외로 진출해 있는 기업들을 '유턴'시켜야 할 판국에 자칫 국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대기업들의 '유출'을 넋놓고 바라보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3년∼2007년 기간 동안 470억 달러였던 한국기업의 해외직접투자액은 2008년∼2012년 기간 동안 2배가 넘는 1050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 여파로 국내 대기업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5년 자동차 국내 생산 비중이 73%였던 현대자동차는 2012년 43%로 급전직하했고 지난 4년 동안 삼성전자의 노동인력은 스마트폰 열풍에 힘입어 71%(15만8000명->27만명) 늘었지만 국내 고용률은 8% 증가에 그쳤다.

이는 생산성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은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와 반기업 정서 등이 대기업들의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킨 결과라고 FT는 보도했다.

사실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반기업 정서는 '대기업'을 향한 질시의 시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들의 잘못도 분명 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한 '우리나라 국민의 기업 및 경제현안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반기업 정서의 수준을 묻는 질문에 '높다'는 의견을 낸 비율은 63%였다. 반기업 정서의 원인에 대한 응답에서는 '탈법 및 편법 등 기업 내부 문제'라는 응답이 43%로 형성됐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대기업들의 탈법 사례들이 정치적 선전에 활용되면서 반기업 정서를 더욱 부풀렸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기업들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반기업 정서로 접근해서는 곤란한 측면이 크다.

지난 2012년 기준 자산 상위 10대 그룹이 올린 영업이익은 61조2000억원으로 국내 전체 기업이 올린 영업이익의 43.2%(141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국내 매출액 1, 2위 기업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올린 영업이익은 총 43조원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여도'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삼성과 현대차를 포함한 대기업들이 법인세 감면혜택의 80% 이상을 휩쓸고 있다며 '특혜'논란을 부추기고 있지만, 이는 '투자활동'에 기초해 각종 조세감면 혜택이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기업들이 그만큼 투자에 적극적이었다는 결론도출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에 따라 재계 안팎에서는 대기업들을 무작정 규제의 대상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경제성장의 파트너로 동반할 수 있도록 정책 또는 인식적 측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투자확대는 중소기업 등을 포함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일자리를 창출하더라도 대기업들이 만들어야 좋은 일자리라는 인식이 많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기업들이 투자하기 좋은 정책적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경제에서 더 큰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현대차 그룹 등 대기업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들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이들이 한국의 투자·고용·수출·세수 창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만큼 글로벌 기업으로의 더 큰 성장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겉과 속 다른 정부, 뒤통수 때리는 정치권…'야속한 행보'

기업들의 투자마인드를 자극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눈물겹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연일 기업 투자활성화를 언급하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기업 투자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인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는 노력을 해 줄 것을 각 부처에 요구하고 있다.

최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주재한 30대 기업집단 사장단 간담회에서 윤 장관은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창출을 요청하며 '규제총량제' 도입 등을 당근으로 내놓기도 했다.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은 지난해 대비 2% 가량 증가한 95조원의 투자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 4대 그룹을 포함한 전체 기업들의 투자규모는 지난해 수준에서 소폭 증가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최근 안팎에서 터진 악재와 철강 불황으로 휘청이고 있는 포스코는 올해 투자규모를 지난해 대비 2조원 가량 줄였다. 이외에도 유수의 대기업들이 '긴축경영'을 선언하며 투자규모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정치권의 '뒷통수 때리기'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툭하면 대기업 세부담을 늘리는 방향의 세법개정(법인세율 인상)을 추진하거나 심지어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해 강제적으로 투자 또는 배당을 유도해 내는 내용의 '80년대' 세법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 같은 정치적 불확실성 또한 경기침체와 더불어 기업들의 투자마인드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목에서는 정부도 크게 할 말이 없다.

지난해 세법개정을 통해 복지재원에 소요되는 세수를 마련할 목적으로 투자여력이 큰 대기업 등에 적용하는 각종 투자세액공제율을 축소하는 '투자역진적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원화 강세, 통상임금, 저성장 우려 등 기업 부담이 가중돼 투자 심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며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중소기업을 포함해 경제 전반에 새로운 기회가 많아지는 만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투자와 고용 확대가 '필수'이기 때문에 정부가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등을 적극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