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제 폭탄, 한국 경제 '올가미'되나

규제 대상된 대기업…글로벌 경쟁력 상실
경제 민주화, '반기업' 아닌 '균형성장'이 정답

시시각각 조여오는 경제 한파 속에 기업들에 대한 무차별 규제 폭탄은 결국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올가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초 친(親)기업을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가 민관 합동 개혁을 추진하며 규제 전봇대를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부 등록 규제는 계속해서 늘고 있는 상황.

실제 정부 등록 규제는 2009년 1만1050건에서 2010년 1만2120건, 2011년 1만3146건, 2012년 8월 1만3594건을 기록하며 계속해서 늘고 있다.

한 달 후 출범할 새 정부가 '경제 민주화'를 기치로 대기업 경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경제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정부가 공언한 일자리 창출과 복지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기 부흥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대내외의 기업 경영 환경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 정부 기업 규제, 기업 경쟁력 발목 잡나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른바 '손톱 밑 가시' 정책으로 친 중소기업 지원을 다짐했지만 여전히 기업 환경은 한랭전선이다.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던 '경제 민주화' 논의는 대기업 규제 정책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고, 이에 따라 대기업 투자 환경도 덩달아 악화되고 있다.

현재 대기업의 경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등 34개 법률과 84개 시행령의 규제를 받고 있다.

이 중 이명박 정부 마지막 1년 동안 제정 및 개정된 8개 법률에는 대형 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 휴업, 대기업의 특정 사업 참여 제한 등이 포함된다.

실제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정부 규제 부담 순위를 보면 한국은 2009년 98위에서 2011년 117위로 추락했다. 지난해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기업관련 법규 순위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59개국 중 42위를 기록하는 등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논의를 토대로 가속도를 내고 있는 '대기업 때리기'다.

대기업의 지배 구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순환 출자 제한과 금산(金産) 분리 방안이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기업들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규제의 벽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또한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이와 관련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분위기다"며 "유럽 금융 위기로 한국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투자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대기업 규제를 글로벌스탠더드(global standard)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협력, 대기업 죽이기와 달라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 대통령'이 될 것을 공언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이 대선 직전 중소기업중앙회에 방문해 기업인들의 고충을 직접 듣는 등 이전 대통령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준 것도 이 때문.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 아닌 일방적 편 가르기식 규제나 지원은 자칫 기업들의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소기업이 중견 기업으로, 중견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의 구조를 마련해야지,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편 가르기식 지원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대기업에 규제를 가할 경우 중소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또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정부 지원에 안주해 규모를 키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정부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도 "한국의 기업 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수급 관계가 많다"며 "대기업 규제가 강화되면 중소기업에도 결국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편 가르며 규제와 지원에 차별화하기 보다는 균형성장을 위한 세제 지원 혜택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경련 관계자는 "임시 투자세액공제가 폐지되고 고용 창출 투자세액공제로 전환되었지만 공제율이 낮고 조건이 까다로원 공제를 받기가 쉽지 않다"며 "투자세액공제 부활이 어렵다면 현행 고용 창출 투자세액공제의 공제율을 확대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고투세에서는 투자액의 2~3%를 기본 공제하고, 고용 증가 조건으로 최대 3%를 추가 공제토록 해 최대 5~6% 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7%였던 임투세보다 공제율이 부족한 상황이다.

또 일부 기업의 경우 총 근로자 수의 60% 이상 인원을 채용해야 고투세 추가 공제 3%를 전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기업들의 현실과도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경총은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환경에 맞는 유연한 노동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변했다.

경총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우리나라의 강성 노동운동 탓에 한번 정규직으로 채용되면 해고는 어려운 반면 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연공서열형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경기변동에 따른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즉, 기업이 도산하기 직전까지 이르기 전에는 사람을 내보낼 수 없고 임금을 깎기도 힘든 것이 현실인데 기업들은 경기가 좋더라도 정규직을 더 뽑기보다는 비정규직을 사용하거나 인력 절약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등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경총의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정부의 잘못된 규제 중 공장입지 문제를 거론했다.

수도권의 자연환경보전지역에 있는 기업들의 경우 환경오염이 없는 범위에서 증설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대한상의 측은 "자연녹지지역에 관광시설을 지을 수 있는데 용적률이 낮아서 외국인 관광객 수요를 대응하기 어려움이 있다"며 "관광시설에 대해 정부가 용적률을 높여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 경제민주화, '반기업 정서' 아닌 '균형성장' = 갑론을박 논의가 뜨거운 경제 민주화는 '반기업'이 아닌 '대·중소기업 균형성장'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기업들은 지적한다.

이는 최근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기업 살리기'와도 맥이 통한다는 것.

해외의 경우 경제를 살리는 정책들이 주목을 받는다. 주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기 위한 것들인데, 미국의 경우 25개주가 '일할 수 있는 권리'와 관련한 법을 통과시킨 뒤 고용이 크게 늘었다.

독일도 어젠다 2010과 하르츠 개혁을 통해서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취했고, 그 결과 유럽의 '병자'에서 '엔진'으로 놀랍게 변화했다.

이 기간 동안 독일의 성장률은 0%에서 3%대로 상승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수지는 적자에서 균형으로 돌아섰다.

경기 변화에 맞는 탄력적 인력 운용을 돕도록 노동시장 자체를 유연화하고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는 세계적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인세 역시 어려운 경제 여건을 고려해 각국마다 감소 추세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법인세를 30%에서 25.5%로 대폭 낮췄으며, 미국은 35%에서 25~28%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26%에서 24%로 법인세를 낮춘데 이어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23%와 22%로 인하를 계획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경제 위기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 체제의 구축을 기반으로 한 경제 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이다"며 "더불어 경제 체질의 개선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정부는 기업 환경을 개선해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개선하는 등 반기업 정서를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