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회예산정책처 박용주 사업평가국장
대한민국 정부의 1년 예산(2012년 기준) '325조원'. 그 엄청난 규모의 재원이 어떤 정부정책 및 사업에 사용되고 있는지, 특히 국가적인 대의명분과 실리에 맞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검증하는 유일한 곳, 그 곳이 바로 국회예산정책처 사업평가국이다.
사업평가국에서는 특히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사업들과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복지사업 등의 타당성 여부를 비롯해 사업의 결과가 당초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는지에 대해 다양한 분석기술을 통해 성과를 측정하고 있다.
사업의 성격별로 경제사업·산업사업·사회사업·행정사업·공공기관 평가과로 나뉜 5개과 34명의 직원을 이끌고 있는 박용주 사업평가국장(사진)은 푸근한 인상 속에 날카로운 통찰력을 간직한 재정전문가.
박 국장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조직 규모는 작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국가의 사업을 평가하는 유일한 국회 내 조직인 '사업평가국'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에 발간한 '전통시장 육성사업 평가' 보고서와 '공공기관의 민간사업 투자'에 대한 보고서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가 쓰는 보고서들이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고 보람도 크다"고 전했다.
다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수치와 다양한 기준을 제시해 국회의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냉혹한 평가를 우려한 정부 부처에서 자료 제공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러나 순환보직인 행정부와 달리 한 곳에 오래 일하면서 쌓인 '기관메모리'를 통한 전문성으로 자신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
(대담: 최종건 정치팀장, 정리: 김기린, 이희정 기자, 사진: 김용진 기자)
▲ 사업평가국이 주로 하는 업무와 사업 평가 방법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 최근 보도된 영유아보육사업, 전통시장육성사업, 보금자리주택사업 등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국가 사업을 평가하고 있다.
사업평가 방법으로는 프로그램 논리모형 분석·비용편익분석·비용효과분석 등이 있으며 비용·편익·효과를 분석하는 방법도 진실험적 방법·준실험적 방법·조건부가치측정법(CVM) 등 사업특성에 맞게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
사업의 평가 기준으로는 사업목적이 적절한가, 사업목표를 달성했는가에 초점을 두어 효율성과 형평성을 측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은 수해예방, 용수확보 및 친수공간 확보를 위한 사업이다. 4대강 사업의 용수확보량은 12.8억톤인데, 용수확보 목표량이 적정한지를, 12.8억톤의 용수확보를 위해 보를 건설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 가장 어려웠거나 기억에 남는 평가는 어떤 사업이었는가.
= 전통시장육성사업평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통시장에 대한 정부 지원 성과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전국 여러 곳의 전통시장을 방문하고, 상인들을 직접 만나 고충을 들으며 사업평가를 수행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통시장 상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고, 지금까지 정부 지원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으며 사업평가를 수행한 것이 특별하게 기억된다.
사업평가는 정부가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연구용역을 발주한 사업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사업평가국 직원들만으로 모든 평가를 진행하기 어려운 여건이 있다.
▲ 정부나 지자체의 사업은 지역 이권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사업평가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평가가 필요하다. 다양한 사업에 대한 광범위한 재정정보를 수집하고, 객관화된 데이터와 독자적인 분석을 통해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평가의 주관성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업무협의를 통해 정부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포럼을 열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 평가에 포함하고 있다.
타당성 평가를 객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정부가 수행하는 타당성 조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평가를 수행하고, 조사와 관련해 제기된 문제점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선진국은 예비타당성조사를 수년간 충분한 예산을 갖고 수행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6개월의 기간 동안 1억원 미만의 예산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 국책사업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의 적시성과 정확성이 둘 다 필요한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 사업평가는 국책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업 추진 과정이나 성과에 나타난 문제점을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 따라서 국회의원 및 국회위원회 등과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1년 단위로 사업 대상을 선정하고, 철저한 준비 속에 사업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의 대책은 무엇인가.
= 손실이 대폭 발생해도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자회사에 높은 낙찰률로 일감을 몰아주는 것 등을 공기업의 방만경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의 부채규모는 2007년 249조원 규모에서 2011년 말 463.5조원으로 늘어난 상태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대한석탄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등 일부 공공기관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의 충당이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2011년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서도 공기업을 국가와 별도로 신용평가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의 지나치게 높은 금융부채 차입한도 등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등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한 사전적 조치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여러 국책사업에서 예정보다 사업기간이 길어지면서 추가 재원이 소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가.
= 사업기간이 길어지는 요인으로는 특정 사업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거나, 사업계획단계의 준비 부족이나 계획 부실로 사업 변경이 발생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정치적 요인으로 사업기간이 길어질 때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고, 계획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업 추진 단계부터 국회 등에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사업 계획을 평가해 내실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시적 행정 등 무리한 사업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정책의사 결정자들에게 재정의 효율성과 건전성에 대한 의식이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 일부 사업의 수요예측 실패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 2006년부터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운영수입보장제도가 없어졌기 때문에 앞으로는 민자사업보다 재정사업의 수요예측 실패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다 수요예측 억제책으로는 현재도 운영 중인 트리거 룰(trigger rule)을 들 수 있다. 이 제도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가 일정 요건이 충족될 경우 정해진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수요에 사전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과다수요예측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업 추진 목적과 타당성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호남고속철도의 경제적 타당성은 B/C=0.39 수준으로 낮기 때문에 경제성만을 두고 보면 사업의 경제성은 부족하다. 그러나 이 사업의 목적은 지역균형발전이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다. 사업추진 목적과 정책결정의 기준이 일치되는 것이 중요하다.
▲ 약 8800여건에 이르는 정부사업 가운데 평가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 국가발전전략 및 국정목표에 따른 주요 정책사업과 사회·정치적 현안이거나 향후 국민적 관심의 집중이 예견되는 정책사업, 여러 부처와 관련되는 정책사업 등을 주로 선정해서 평가하고 있다.
▲ 사업평가국의 주요 실적을 소개해 달라.
= 지난 3년간 사업평가보고서 및 정기보고서 118건과 현안분석 16건을 발간했으며, 의원 및 위원회의 요구에 따른 조사분석을 650건 수행했다.
최근에는 공기업 공공요금 원가관리가 비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공공요금 원가 산정기준의 개정을 검토하기로 한 바 있다.
또한 임대형민자사업(BTL)에 대한 평가를 통해 BTL사업의 사업계획단계, 협상·협약단계, 건설·운영단계, 성과·환류단계 등 단계별로 문제점을 분석함으로써 임대형 민자사업 정부지급금 추계서의 국회 제출 등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한 정부의 건전재정관리를 유도한 바 있고, 성과보고서 평가를 통해 정부의 성과목표관리제도의 개선에도 기여했다.
임대형민자사업 한도액안 분석, 중장기재정소요분석, 공공기관 정부지원 예산안 평가 등을 통해 국회의 예·결산 심의와 국정감사를 지원했다.
▲ 사업평가를 수행하면서 겪는 직원들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사업평가국 직원들은 담당 부처의 사업에 대한 사업평가보고서와 성과계획서 평가 등의 정기보고서, 의원들의 요구에 의한 조사분석 등을 병행해서 수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사업보고서의 경우 3∼4개월의 기간 동안 정부의 주요 정책 및 사업에 대해 현황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분석하는 사업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 국에 젊은 여직원들이 많은데 일을 싸서 집에 가서 애 재우고 일한다. 하는 일에 비해 인력이 적은 편이다.
수 천개나 되는 사업을 스무명 정도의 사업평가관들 만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데이터 수집하는데만 한 사업에 6개월씩 걸린다. 사업평가 인력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보다 효과적인 평가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금년도 2월에 국가재정법이 개정되어 대규모 개발사업은 원칙적으로 계속비로 편성하고 총사업비 자료도 예산안 첨부서류로 2014년부터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도 전문적인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
그 밖에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정부 부처가 자료 요청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힘든 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업평가국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달라.
= NABO 사업평가국의 평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국회내 재정전문기관에 의해 수행되는 심층적인 사업평가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고 본다.
사업평가의 목적 중 '정책결정의 개선' 및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활용'은 정부 내부평가를 통해 달성할 수 있지만, '책임성의 확보'는 국회의 평가를 통해서만이 제대로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평가국은 2007년 이래 정부의 성과계획서 및 성과보고서를 평가함으로써 성과목표관리제도의 개선에도 기여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