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남성들이 여전히 선호하는 최고의 배우자 기준은 단연 '살림'을 잘하는 여성이다(여성의 경우는 아마도, 살림보다는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할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남성이 최고 배우자의 기준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펑펑 쓸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대다수 월급쟁이 가구의 경우, 꼼꼼한 계산과 계획 아래 돈을 써야만 한다. 나라살림도 마찬가지다. 나라곳간에 금은보화가 넘쳐난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1년 예산은 300조원을 넘나드는 수준이다.
이 예산을 가지고 정부는 각종 사업과 정책을 집행하는 등 국가를 운영한다. 기본적으로 예산을 짜는 역할은 정부의 고유권한이지만 예산이 제대로 편성됐는지, 예산이 잘 쓰여지고 있는지 등을 따져보는 역할은 국회의원들이 도맡고 있다.
300명에 불과한 국회의원들이, 방대하고 복잡한 국가예산 운용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감시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산안에 숨어 있는 빈틈(낭비요소)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은데다, 방어논리로 무장한 정부를 당해내는 일도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의 존재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예산감시를 가능케 만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 소속 예산분석관들이 1년 365일 분주히 움직여 가며 국회의원들에게 양질의 보고서와 자료, 논리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은 예산안 심의에 나서는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 국회예산정책처의 중추, '예산분석실' = 예산분석실의 주요 업무는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연구 및 분석 ▲결산 및 기금결산 연구 및 분석 ▲예산 또는 기금상 조치가 수반되는 법률안 등 의안에 대한 소요비용의 추계 등이다.
말 그대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이 쓰여지는 모든 분야를 망라해 적절한 예산사용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분석해, 국회의원들이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예산안 심사를 할 수 있도록 '척후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산분석실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김춘순 실장이다. 입법고시 8회 출신인 김 실장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무위원회 등을 24년 동안 누벼온 예결산 분야 베테랑 중 베테랑. 최근에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국가재정, 이론과 실제'라는 서적에 담아내기도 했다.
김 실장의 지휘아래 예산분석실에는 박인화 예산분석심의관을 비록하여 ▲경제예산분석과 ▲산업예산분석과 ▲사회예산분석과 ▲행정예산분석과 ▲법안비용추계1과 ▲법안비용추계2과 등 6개 과 단위 조직이 배속되어 있다.
예산안과 결산 연구분석이 주업무인 경제예산분석과는 국회 재정위 입법조사관 등을 거친 실력자로 평가받는 김경호 과장을 필두로 최철민, 이강혁, 연훈수, 김양혜, 김윤미, 윤주철, 민준홍 예산분석관이 일하고 있다.
농업과 국토해양 분야의 예결산 분석을 주로 하는 산업예산분석과는 서세욱 과장과 함께 전용수, 배아형, 김효진, 표승연, 변재연, 한정수 예산분석관이 포진해 있다. 일본 동경대 농업경제학 박사 출신인 서 과장은 농축산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사회예산분석과는 미시간주립대에서 환경정책 및 도시학을 전공한 박사출신 문종열 과장과 박재문, 정민주, 정유진, 김형진, 김성은, 김태은 예산분석관이 일하고 있다. 국방외교와 법무 분야 예결산 분석이 주업무인 행정예산분석과는 정문종 과장의 지휘아래 주성훈, 이유미, 예승우, 정진욱, 김경수, 심성택 예산분석관이 근무하고 있다.
정 과장은 서울대 경제학 박사출신으로 예산과 재정 쪽에 오랜 경험을 쌓은 베테랑. 법안비용추계1·2과는 각각 국회 운영위와 예결위 입법조사관 출신인 정영진 과장과 박선춘 과장이 이끌고 있다. 1과에는 이외에도 전광희, 임준기, 김태완, 정주완 예산분석관이 포진해 있고 2과에는 서명관, 강상규, 문지은, 이진우, 여은구 예산분석관이 일하고 있다.
□ 노력이 겸비된 두뇌, 국회예산정책처의 '중추' =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정부에 맞서 효과적인 국가예산안 심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예산분석실 인원은 고작 30여명 수준에 불과하다.
국회예산정책처 타 실·국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일이 많은 부서가 예산분석실이다. "예산분석실의 보고서가 없으면 예결산 심사도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만큼 예산분석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국회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실 대부분이 예산분석실 보고서가 나와야 예결산 심사관련 업무에 돌입한다"고 귀띔할 정도. 예결산 분석 뿐만이 아니다. 각 부처에 망라된 총 8800여개의 국책사업에 드는 소요비용을 분석하고 법안비용추계 업무도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5년 150건에 불과하던 추계서 작성 건수는 재원조달 방안마련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매년 늘어, 지난해 585건으로 크게 늘었다. 일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인원은 적어, 예산분석실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 사용하며 바쁘게 일하고 있다.
평일 야근은 기본, 주말 출근도 일상화되어 있다. 이 같은 노력이 기본적으로 갖춰진 우수한 두뇌와 융합되면서 막힘 없이 주어진 역할을 해내게끔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예산분석실의 최대 강점은 '정확성'이다. 김춘순 예산분석실장도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정확성을 강조한다. 정부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성을 잃어버린다면 정면대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산분석실은 모든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철저한 자기검증을 한다. 조금의 허점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한 생존전략인 셈. 이에 따라 예산분석실 소속 30여명의 예산분석관들은 보고서 초안을 작성한 뒤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참여하는 포럼 방식의 토론회를 열어, '갑론을박' 토론을 벌인다.
이처럼 내부적인 철저한 검증이 있기 때문에 예산분석실이 내놓은 보고서와 자료의 정확성 또한 더욱 예리해 지는 것이다.
□ "힘들지만, 사명감으로 일하는 예산분석실" = 예산분석실의 과중한 업무를 버텨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명감'이다.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예산분석실이 해 내는 일이 제대로 되어야만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신념 때문.
요즘같은 무더위에도 가뜩이나 더운 국회예산정책처 건물에서 밤늦도록 일과 씨름하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김춘순 예산분석실장은 안쓰럽기만 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예산분석실이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게끔 만들어야만 하는 역할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
김 실장이 가끔은 혹독하다 싶을 만큼 직원들을 다그치기도 하는 이유다. 김 실장 스스로도 예산정책처가, 예산분석실이 철저하게 나라살림을 감시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추가적인 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나라에 보탬이 돼 예산정책처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국민들이 알아준다"며 "이 말에 직원들이 공감을 하는 편이다.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최종건 정치팀장, 김기린·이희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