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대담]"살기 힘든 국민들, '경제민주화' 원한다"

"우리는 왜 지금 '경제민주화 앓이'를 하는가?"

이 질문에 여야 정치인, 경제학자, 조세 전문가, 복지 전문가, 전경련 관계자는 무엇이라 대답했을까. 모두 "국민들이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경제통인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경제권력이 특정 소수에게 집중돼 국민들이 경제민주화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포럼 대표인 민주통합당 유승희 의원은 "세계 경제위기를 재벌만 극복했지 서민은 아직도 위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사회 양극화 때문"이란 입장이었다. 반면 전경련 이철행 기업정책팀장은 "정치권이 국민들의 박탈감을 느끼는 원인을 대기업으로 몰아간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재벌개혁에 대해선 정치권과 전문가, 전경련 측 입장이 확연히 달랐다. 정치권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철행 팀장은 "모든 책임을 재벌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제민주화와 성장이 양립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여야 정치인은 "성장을 위해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구조가 선순환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숙명여대 경제학부 강인수 교수는 "단순한 형평성을 강조하는 것은 좌파적 시각이다. 성장의 과실을 정당한 몫만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철행 팀장도 "경제성장 저하에 따른 경기 악화를 양극화 심화로 오인한 탓"이라고 말했다.

Q.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경제적 평등) 논쟁이 한창이다. 왜 이런 이슈가 나왔다고 생각하나.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이하 이혜훈) = 그동안 우리 사회가 성장 위주로 달려오면서 갈증들이 있었다. 경제권력이 특정 소수에게 집중돼 부당하고 불법적인 일들이 자행된 데 대해 갈증이 많은 것 같다. 시대정신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지금 상당히 많은 국민들이 경제민주화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건드리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유승희 의원(이하 유승희) = 경제민주화가 대두된 이유는 국민들의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을 표방하면서 747공약을 내놨으나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 그나마 세계경제위기를 빠르게 극복했다고 자랑하지만 국민이 체감하기에는 정부와 재벌만 극복했지 서민의 삶은 아직도 경제위기보다 후퇴한 IMF 수준이다. 다시 말하면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고, 이대로 가면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박기백 교수(이하 박기백) =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어려워졌다. 국민들의 관심사가 경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최근 유로존 재정위기 등으로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경제적 형평성 문제에 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승일 운영위원(이하 정승일) = 빈부격차 등 경제적인 양극화를 비롯해 사회양극화가 극심해진 데 따른 것이라고 본다.

숙명여대 경제학부 강인수 교수(이하 강인수) = 선거를 의식한 일종의 포퓰리즘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이슈가 나오는 것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와 따뜻한 자본주의의 확산을 요구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철행 기업정책팀장(이하 이철행) = 여러 가지 원인과 배경이 있겠지만,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국민들의 어려움 증가와 글로벌 금융 위기극복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약진하는 가운데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약자들의 박탈감이 커졌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들의 박탈감을 느끼는 모든 원인이 대기업 때문이라고 하면서 대기업을 손보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표심 잡기용 이슈로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할 것이라 생각된다.

Q. 일각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재벌 때리기' 혹은 '부자증세'로 인식하기도 한다. 경제민주화는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이혜훈 = 재벌 때리기와 재벌개혁은 다르다. 각 당이 정치적인 이념좌표에 따라 생각하는 경제민주화가 조금씩 다르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과 조세정의다. 경제민주화는 경제권력이 집중돼 불공정 거래와 부당 담합행위 등 독점의 폐해가 만연한데 이를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인 힘의 견제와 균형을 경제부분에서도 작동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독점의 폐해를 없애자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다. 불공정 거래와 담합행위 근절하자는 것인데 그걸 '때리기'라고 본다는 것은 너무 과하다. 오히려 재벌 때리기와 부자증세를 말하는 것은 야당이다.

유승희 =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모두 다 함께 잘 살자는 측면에서 대기업도 희생할 것은 희생하자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70년대 개발시대 이래로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몇 개의 대기업 위주로 특혜를 주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및 일반서민들이 대신 많은 것을 희생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전기요금의 경우 산업진흥측면에서 기업에 할인 혜택을 주고 있는데 최근 3년간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곳이 삼정전자로 모두 3140억원에 달한다. 다시 말해 상생을 위해 과거 일방적으로 받아왔던 재벌의 특혜를 줄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고자 대기업도 이제 나눌 건 나누자는 것이지 결코 단순한 대기업 때리기나 희생의 강요가 아니다.
 
강인수 = 시장경제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으로 경제운용의 기본적인 규칙(rule)을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철행 = 경제민주화는 헌법 제119조 제2항이 제1항을 보완하는 것이다. 제1항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통해 재화와 용역 등 부를 창출하는 것이고 제2항은 창출된 부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주장되는 경제민주화는 주객이 전도돼 성장을 전제하기보다는 분배에 우선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재벌과 서민을 편가르고 재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재벌 손보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Q.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쟁이 부각되면서 '성장'에 관한 논쟁이 움츠러들었다는 여론도 있다. 경제민주화와 성장의 양립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이혜훈 = 성장을 위해서도 경제민주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오고 나서 대한민국이 성장률로 보면 성적 나쁘지 않다. 하지만 체감경기는 나쁘다. 전체적인 지표는 좋지만 성장의 과실이 일부 재벌에게만 독점되고 있다. 경제구조가 이분화 되면서 윗목으로 불이 안 들어온다. 중산층 서민경제를 위해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쉽게 말해 보일러 공사다. 지금은 아랫목만 쩔쩔 끓고 장판이 다 타버린 상태다. 윗목이 냉골이면 보일러 공사 해줘야 하는 것처럼 불이 성장인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장을 돕는 것이다.

유승희 = 민주통합당의 성장을 위한 정책콘텐츠는 경제민주화다. 현대 경제는 개발독재 시대처럼 정부나 정치권 주도의 특정 성장정책으로 성장할 만큼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니다. 재벌대기업이라는 소수의 경제주체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현 시장상황에서는 절대 성장을 담보할 수 없음. 재벌대기업이 근본적으로 개혁되면 경제생태계가 선순환 할 것이고 경제생태계가 선순환 되면 시장이 정상가동 되면서 투자와 고용이 늘어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소비의 증가로 이어져 경제가 활성화되어 결국엔 경제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승일 = 경제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경제성장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즉 양극화가 해소되면 경제성장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강인수 = 경제민주화가 단순히 형평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보는 것은 좌파적 시각이다. 효율성 추구를 통한 성장의 과실을 구성원이 정당한 몫만큼 차지하게 할 수 있는 체제를 확립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양립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이철행 = 현재 경제민주화 논의가 힘을 얻는 것은 경제위기 이후 성장 저하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 악화를 양극화 심화로 오인한 결과라 생각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 일련의 경제위기로 성장이 정체되고 경제고통지수가 상승하는 등 서민의 삶이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 부동산가격 상승 기대심리로 가계부채가 급증한 가운데 경제위기 발생으로 부채상환의 어려움도 발생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기업의 투자 확대와 성장을 높여 국가 전반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선결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