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대선 후보들의 출마 선언이 줄을 이으며, 대권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이슈 선점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다. 경제민주화 9대 입법안을 내놓으며 민주통합당이 한 발짝 앞서 나가는 모습이었지만, 새누리당도 뒤질세라 구체적 입법안을 발표하며 추격에 나섰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전면에 내세운 경제민주화의 실체는 '재벌규제'로 요약된다.
하지만 진짜 의도는 이명박 정부의 성장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분배위주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산서민층 표심을 자극할 '복지'가 곧 분배요, 분배에 필요한 정책으로 '증세(增稅)' 정책 추진 움직임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상당히 공세적이다.
이미 고소득자 소득세 과세를 포함해 이른바 '재벌세'를 전면에 내놓으며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재벌규제라는 경제민주화의 정신을 최적화해 살려낸 정책들로 평가되지만 강도 문제로 재계의 극심한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도 고소득자 과세강화를 목적으로 한 소득세 과표구간 및 세율 조정, 대기업 최저한세율 인상 등과 같은 일련의 증세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지향하는 증세정책이 가지고 있는 차이점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선 승패를 좌우할 최대 화두인 경제민주화 실현의 한 방법론으로 정치권이 '(부자)증세' 프레임을 재설정했다는 사실이다.
◆ 표적은 '부자(富者)'…다시 뜨는 '부자증세' 프레임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높은 현 상황에서, 지출축소 및 비과세·감면 폐지 등 소극적 방법으로는 복지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안정적 세수확보가 가능한 적절한 '카드(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정치권의 증세정책 추진 움직임은 '재벌규제'의 맥락에서 흘러가는 양상이다. 하지만 정치권 경제민주화의 근본 지향점은 '분배'다.
분배를 위해서는 상당 규모의 '파이(돈)'가 필요한 것이 현실. 파이 확보의 방법으로 정치권이 내놓은 것은 '증세(增稅)'. 그 중에서도 정치권은 대기업과 고소득자 등 소위 '부자(富者)'들을 카운터 파트너로 선택했다.
대선이라는 '단판 승부'를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각각 다른 내용의 증세정책 추진을 표명하고 나선 상황이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4·11 총선 과정에서 언급했다 철폐한, '재벌세'를 다시 꺼내들었다.
민주통합당의 재벌세 도입방안은 대기업과 자회사(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사이의 주식 배당금에 법인세를 과세하고, 상호출자를 목적으로 대출 받은 자금의 이자를 정당한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법인세 강화책.
이와 함께 민주통합당은 현재 3억원 초과로 설정된 현행 소득세법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1억5000만원으로 떨어뜨리는 고소득자 과세방안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민주통합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만간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세법개정안을 추가로 마련해 연말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경제민주화 공약의 '퍼즐'을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새누리당도 '보폭'을 빨리 가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고소득자 과세강화를 목표로 한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 및 세율 인상 추진을 예고한 바 있으며, 대기업 세부담과 관련해 '최저한세율'을 인상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대기업 최저한세율 인상은 실질 세부담 측면에서 법인세 명목세율 인하보다 체감 세부담이 높을 수도 있는 정책.
새누리당은 또한 소위 돈 있는 사람들이 주로 활용하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과세도 도입한다는 계획. 이와 관련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복지재원 때문에 일부 증세가 불가피하다"라며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세"라고 언급한 바 있다.
◆ "표심 노린 '포퓰리즘(Populism)?'…함부로 증세 논하지 말라"
대선 승리를 열망하는 정치권은 이미 '질주태세'를 갖춘 상황.
이슈 선점 경쟁에서 밀리면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쥘 수 없다는 사실은 지난 4·11 총선을 통해 이미 증명이 됐다. 이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증세정책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도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효과적인 증세정책을 대안으로 내놓아야만 복지정책의 현실성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투표 시 단순하고 즉각적인 이슈들이 유권자의 마음을 결정한다"며 "증세정책 등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유권자들에게 정당 이미지를 인식시키고 당의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세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포퓰리즘에 함몰, 뚜렷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부자증세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법인세율 인상과 같은 대기업 증세정책은 국내 정치환경이 아닌, 국내 경제환경과 글로벌 경제환경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섣부른 법인세율 인상이 자칫 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조세측면의 규제는 편법적인 부의 세습 등 비정상적 행태를 보이는 재벌총수 일가(一家)에 대해서만 제한해야 하고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조세 규제는 현 상황에서 지양해야 할 정책노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 모두가 풍요롭게 살자는 경제민주화의 대원칙에 공감하지만,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대기업과 부자들만 옥죄는 방법은 좋지 않다"며 "국가경쟁력을 감안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이어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겠지만 급격한 증세는 좋지 않고, 부자증세가 정치권의 '유행병'처럼 번지는 상황은 막아야한다"며 "점진적인 증세와 함께 일자리 확충 등 서민경제를 살릴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