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성 내세워 은퇴시장 접수 나선 은행권
일부 수익률 저조…포트폴리오 다양화 필요
국내 은행들이 향후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되는 은퇴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은행 산하에 은퇴 관련 연구소를 속속 설립해 체계적인 개인별 은퇴설계시스템을 제공하며 본격적인 은퇴시장 접수에 나서고 있는 것.
은행의 최대 강점은 폭넓은 수신기반과 고객을 무기로 한 안정성에 있다. 현재 전체 퇴직연금 50조원 중 절반에 해당하는 24조원을 은행에서 운용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안정성은 그만큼 수익성에 있어서는 취약점을 보인다. 실제 퇴직연금의 경우 2011년 확정급여형 기준으로 국내 은행들의 수익률은 4%를 넘지 못하고 있으며, 0.7% 내외의 수수료를 떼고 나면 일반 적금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품도 상당한 편이다.
자신의 은퇴 포트폴리오에 은행 상품을 담으려는 예비은퇴자들은 안정성과 함께 수익성도 꼼꼼히 따져보는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
■ 은퇴시장 공략 출사표 잇따라 = 최근 은행들이 은퇴시장을 향한 출사표를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 전체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우선 하나은행은 지난해 6월 은퇴시장 TFT를 구성한데 이어 최근 은행권 최초로 은퇴설계시스템을 구축해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은퇴설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하나은행은 올해 2월에 은퇴설계전문인력제도를 시행하고, 3월에는 퇴직연금 위주의 상품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은퇴준비전용 장기펀드를 출시하는 등 시장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하나은행의 캐치프레이즈는 '은퇴'가 아닌 '행복디자인'이다. 고객들의 재무적인 부분은 물론 비재무적인 부분까지 고려한 노년의 설계를 완성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1월 일반 고객에게 노후자금을 관리해주고 은퇴설계를 컨설팅 해주는 신한 은퇴연구팀을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퇴직연금 시장에서 운용관리(4조4484억원)와 자산관리(4조825억원) 부문 모두 은행권 1위의 실적을 달리고 있는 신한은행의 저력을 은퇴시장에서 유감없이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은퇴를 준비하는 30~50대 일반 고객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 고액의 자산가가 아닌 일반 월급쟁이들을 대상으로 목적성 자금설계(예적금)를 향후 즉시연금으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KB금융그룹은 오는 8월 KB경영연구소 산하에 'KB은퇴설계 연구센터'(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략, 거시, 부동산, 고객, 글로벌 등 6개 팀으로 구성된 KB경영연구소와의 협업 연구체계를 구축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KB국민은행 WM본부와 KB생명 영업본부에 신설될 예정인 '은퇴설계팀'과의 협업을 통해 '은퇴설계패키지상품' 개발 등 상품 및 서비스 경쟁력 강화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로 했다.
더불어 영업점은 물론 인터넷과 모바일 등 모든 채널을 통해 은퇴 설계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新 은퇴설계상당 시스템 구축'도 준비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본부 퇴직연금 전담조직 내에 전문인력을 집중하고 있다. 자산운용, 연금계리 전문가는 물론 FRM(국제재무위험관리사)등 리스크관리전문가, CFP(국제재무설계사), 해외MBA 등 전문인력이 전담조직 전체인원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은 최대 장점이다.
외환은행은 해당 기업의 설문조사 분석과 현행 퇴직금제도 분석을 통해 기업에 맞는 퇴직연금 플랜을 원스톱으로 설계해 무료로 제공하고, IFRS 도입에 따른 퇴직부채산정 서비스,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 대상 주택담보대출 등 다양한 서비스도 연계해 진행하고 있다.
IBK기업은행도 이르면 7월 조직개편에 맞춰 은퇴 관련 연구부서를 설치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은 고액자산가나 대기업 임원보다는 상대적으로 퇴직준비에 취약한 중소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설계에 포커스를 맞춘다는 계획이다.
'일을 아예 그만둔다'는 '은퇴'라는 개념이 아닌 '퇴직'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기업지원부를 통해 잡컨설팅 등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며 고객들의 인생 후반기를 적극 돕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 안정성은 '강점'-수익성은 '글쎄' =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올해 2월 기준으로 퇴직연금 51개 사업자 중 회사별 운용관리계약과 자산관리계약 실적에서 대다수 은행들이 상위에 올라 있다.
자산관리계약 실적의 경우 삼성생명이 점유율면에서 13.9%로 1위에 올라 있지만 그 뒤를 바짝 쫒아 신한은행(10.0%), 국민은행(9.9%), 우리은행(9.1%), 기업은행(6.2%), 하나은행(5.0%)이 상위에 올라 있다.
운용관리계약도 점유율에 있어 삼성생명(14.5%)과 HMC투자증권(6.5%) 등이 눈에 뜨이지만 국민은행(8.9%), 신한은행(8.8%), 우리은행(8.1%), 기업은행(6.1%) 등 은행권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이처럼 은행권이 타 업권에 비해 퇴직연금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은퇴시장 전반으로 그 세력을 뻗어 나가겠다는 것이 은행권의 복안이다.
신기섭 기업은행 퇴직연금부 차장은 "퇴직연금의 경우 1조원 이상 적립금을 유치해야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데 현재 은행들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안정성이 확보돼야 하는 은퇴시장의 속성상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의 지적대로 은행들의 안정성은 퇴직연금 시장에서 상당 부분 통했다는게 업계의 평가다. 하지만 은행들의 저조한 수익성은 낙관적 판단을 속단할 수 없는 변수다.
금감원과 은행연합회 등의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7개 시중은행의 원금보장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을 조금 웃도는 평균 4.5% 수준. 여기에 각 은행들이 전체 적립금에서 떼어가는 0.7% 내외의 수수료를 제외하면 더욱 초라해지는 성적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타워스 왓슨 코리아가 최근 발표한 상위 20개 퇴직연금 사업자의 연간 수익률 추정치를 보면 은행들이 수익률에서 증권회사와 보험회사에 밀리는 양상이다.
연간 수익률을 비교했을 때 확정급여형에서는 미래에셋증권(원리금보장형, 5.21%), HMC투자증권(비원리금보장형, 3.70%) 등이 상위에 오르고, 확정기여형에서는 삼성증권(원리금보장형, 5.01%)과 삼성생명(비원리금보장형, 2.17%)이 1위에 오르며 시중은행의 수익률을 앞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안정적인 투자를 지향하는 은행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시장 흐름에 맞춰 투자비중을 적극 조정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군의 고민이 필요하다.
이 같은 문제점을 알고 있는 은행들도 보험이나 자산운용사의 펀드 콘셉트 등을 도입한 복합상품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미래 기대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대목이다.
김민호 신한은행 은퇴연구팀 차장은 "은퇴자금을 운용할 때 자산의 70%는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30%는 물가상승을 대비해 고수익추구가 가능한 투자형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충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