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규모 연체 사태 이후 시장 축소 전망
정부, 신용카드 대신 외상거래 없는 체크카드 활성화
우리·농협·산은 등 지주회사, 카드 분사 계획 차질
2000년대 이후 신용카드는 수차례 지각 변동을 겪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이 1만원 이하의 소액 결제를 강제 허용하면서 신용카드가 생활화되기 시작했고, 무분별한 카드 발급과 카드회사 간 경쟁으로 지난 2003년에는 대규모 연체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신용카드는 발급 수를 기준으로 1억장을 넘어서 이제는 경제활동인구, 즉 소득이 있는 사람 한 명당 5장에 가까운 보유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카드 시장에 올해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다.
지난해 정부가 가계 빚 줄이기에 나서면서 신용카드 수를 줄이고, 외상 거래로 인한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
금융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카드시장 구조개선'을 준비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추진에 나섰다.
카드 대책에는 신용카드의 신규발급, 마케팅 비용 등 영업 전반에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카드회사 입장에서 시장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 체크카드 소득공제 한도확대,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 = 금융위는 신용카드를 줄이는 대신 은행계좌에서 결제금이 직접 빠져나가는 체크카드를 카드회사들이 늘리도록 하고 있다.
체크카드는 신용카드와 마찬가지로 손쉽게 결제가 되지만, 예금액 안에서만 쓸 수 있어 외상 거래가 불가능하다.
현재 체크카드는 카드시장에서 13%에 불과하지만, 금융위는 이를 단계적으로 늘려 올해 안에 20%, 5년 후 50%까지 확대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올해 초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 방문해 체크카드를 직접 신청하는 등 체크카드 활성화 대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체크카드의 소득공제 한도 확대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체크카드 소득공제 한도금액은 현재 300만원으로 금융위는 이를 최소 400만원으로, 향후 더 큰 폭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관계 부처인 기획재정부와의 의견 조율이 더뎌지고 있어 차질이 예상된다.
카드대출(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등 카드회사가 고(高)금리를 취했던 영업 부문 역시 축소될 전망이다.
카드대출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등에 악용돼 지난 한 해 피해금액이 1019억원 발생했고, 한 건당 피해금액도 평균 1236만원에 달했다.
앞으로 카드대출을 300만원 이상 신청하면 신청자는 2시간 후 카드회사로부터 입금을 받을 수 있다. 은행권 대출과 달리 빠르게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카드대출이 편리했던 것을 감안하면, 향후 사용 빈도가 훨씬 줄어들 것으로 금융위는 예상하고 있다.
■ 카드관련 민원 건수 가장 많아…수수료 인하 등 본격화 = 올해 초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2년 업무설명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민원 중 카드 등 여신관련 민원이 22%로 가장 많았다.
이는 지난해 삼성카드, 하나SK카드 등이 고객 정보를 유출하는 등 금융사고가 빈발하고, 카드회사가 중소가맹점에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율을 부과하고 있는 등 부당한 영업 행태가 꾸준하게 지적됐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가맹점의 카드수수료를 두고 정치권과 소규모 자영업자 등이 법 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개정됐고, 카드회사의 수수료 수익이 줄어들면서 매출 증대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카드회사의 마케팅 비용 규제를 올해에도 확대하고, 1년 이상 사용되지 않은 휴면카드 해지 절차를 간소화해 불피요한 자원낭비를 줄일 방침이다.
현재 신용카드 사용자가 해지 신청을 하면, 대부분의 카드회사들은 직원과의 전화 상담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사용자가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해지할 수 있도록 바뀌는 것이다.
■ 금융지주, 카드 분사 '주춤' = 카드업계가 안고 있는 또 다른 과제는 대형 금융지주회사들이 카드 사업을 분리하는 데 따른 경쟁 심화다.
앞서 2003년 카드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카드 경쟁은 부실 여신의 확대뿐만 아니라 금융 시장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시 카드회사들은 부실해진 카드 사업 부문을 계열사인 대형 은행들에 합병시켰다가 카드 시장이 회복되자 또다시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현재 카드 분사를 계획하고 있는 우리금융, NH농협, KDB산은금융그룹 등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금융은 올해 안에 카드 분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외부에 강하게 피력했지만, 이에 금융위가 직접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카드 분사가 이뤄지면,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이 가능하고 외형 확대를 하는 데 좀 더 유리하다.
앞서 지난해 초 KB국민은행으로부터 분리된 KB국민카드가 좋은 예인데, KB카드는 분사하자마자 업계 1~2위와 견줄 만한 성장을 단기간에 이뤘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지주들이 카드 분사를 하려는 것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 다소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금융위가 내놓은 신용카드 억제정책이 일선 영업점 등 시장에는 아직 스며들지 않고 있어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일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은행 영업점에서 여전히 신용카드 신규 발급을 늘리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안다"며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은행들이 내규 준비를 마치고, 정부 정책에 동참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