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저축은행을 인수해 조직과 명칭을 정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윗쪽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우리금융저축은행(2011.3), 신한저축은행(2012.1), 하나저축은행(2012.2), KB저축은행(2012.1)의 출범식.
중소 저축은행들, 지역 밀착화 통해 생존 경쟁 치열
일반은행 수준으로 규제 강화…구조조정도 막바지
지난해 저축은행들은 일대 격변을 맞이했다.
저축은행은 소규모 예금과 대출을 취급하기 위해 1972년 설립된 후 자영업자 등 저소득층의 금융 창구 역할을 해왔지만, 2000년대 들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에 무리하게 투자하다 대규모 부실 사태를 유발했다.
또 일부 대주주의 불법 대출과 금융 감독 당국의 부정부패가 맞물리면서 역대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초 취임 직후 저축은행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돌입했다.
이에 부실 규모가 컸던 16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고, 영업정지 유예 조치가 내려진 곳 역시 머지 않아 정리될 예정이다.
현재 정부(예금보험공사)나 금융지주회사 등은 부실 저축은행들을 인수 후 자금을 투입해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나머지 부실 징후가 있는 저축은행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서민 금융 시장을 전반적으로 안정화시키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이른바 '살생부 명단'에서 빠진 저축은행들은 건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동시에 금융지주회사 계열사인 저축은행들과 뜨거운 각축전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 저축은행, 생존 싸움 치열 = 금융지주회사가 인수한 우리·신한·KB·하나저축은행 등은 저축은행 시장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존의 저축은행들은 금융지주회사를 뒷배경으로 가진 곳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
특히 중소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불공정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융지주회사 계열사인 저축은행들은 시중은행과의 연계가 잘돼 있는 만큼 예금과 대출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중은행 대출 신청자가 자격 요건에 맞지 않으면 영업점 직원으로부터 계열사 저축은행의 대출을 안내받거나 편의를 제공받는 등 불공정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중소 저축은행, 특히 지역의 저축은행들에게 밀착화 등 다양한 영업 전략을 세워 생존 방안을 모색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정부는 제1금융권(시중은행)의 대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대부업체 등 사(私)금융보다 낮은 이자에 저축은행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제2금융권(저축은행 등)의 햇살론 등 저(低)금리 서민전용 대출상품을 늘리고, 정부가 운영하는 미소금융과 지역단체 간 연계를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 일반은행 수준으로 규제 강화돼 = 저축은행 규제가 일반은행 수준으로 강화되는 것 역시 저축은행 업계의 판도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위험에 대비해 쌓아두는 대손충당금(손실추산액) 적립 기준을 비롯해 저축은행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 기준 등이 앞으로는 일반은행과 같은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
상호저축은행법은 지난해 7월 일부 개정돼 오는 7월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 내용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은 ▲6개월마다 자기자본을 재(再)산정하고 ▲동일인의 대출액을 제한하며 ▲대주주의 주식취득 공시횟수를 늘리고 ▲임원의 결격 사유를 확대하는 등 각종 규제가 강화된다.
금융당국은 이외에도 농협·수협·축협 등 상호금융의 재무 건전성을 높여 저축은행과 같은 부실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자기자본이 큰 대형 상호금융이라도 거액의 동일인 대출이 불가능하고, 부실 발생 확률도 낮아질 전망이다.
금융위는 '상호금융업감독규정'을 일부 개정하고 ▲대출 한도 ▲대손충당금 ▲회사채 투자 한도 ▲의무 공시 기간 등을 전면 변경했다.
앞으로 자산 300억원 이상의 상호금융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각 중앙회에 경영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자산 300억원 미만이거나 자체 홈페이지가 없는 상호금융도 각 중앙회에 공시 의무가 부과된다.
또 손실 흡수 능력에 비해 과도한 대출이나 투자, 동일인의 대출 한도 역시 제한된다.
현재 상호금융의 동일인 대출은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한도가 제한돼 있지만, 앞으로는 자기자본이 많은 상호금융이라도 일정 금액 이상을 대출할 수 없다.
자기자본이 150억~250억원 미만인 곳은 30억원, 250억원 이상인 곳은 50억원까지 대출할 수 있으며, 150억원 미만이면 현행 기준이 적용된다. 현재 자기자본 150억원 미만의 동일인 대출 한도는 자기자본의 20%, 자산총액의 1%(최대 5억원) 중 많은 금액이 적용된다.
기존의 한도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2년 내에 해소해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 각 중앙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이 소액대출 등을 취급한다는 이유로 다소 느슨한 규제를 받아왔지만, 일반은행과 같은 수준으로 높여 건전성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이르면 3월에 추가로 영업정지…생존 게임 시작 =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지난해 일단락됐지만, 아직 남은 과제가 있다.
지난해 영업정지 유예 조치를 받은 저축은행들이 아직 금감원의 추가 검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검사 결과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4월 이후에 발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자구(自救) 계획을 금감원에 제출한 상태이며, 사옥 매각이나 유상증자(주식을 늘려 자금을 조달) 등을 통해 빚을 갚고, 경영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것이 자구 계획의 골자다.
신응호 금감원 부원장보는 "한 곳은 이미 경영 정상화를 완료했고, 사옥 매각 등을 계획한 저축은행의 경우 2월 안에 매각 대금이 정상적으로 입금되는 등 현실적으로 정상화의 가능성이 높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검사는 회생이 가능한 곳을 살려 저축은행 시장을 한층 안정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고 했다.
저축은행 등 소규모 금융회사들은 일반은행에 비해 내부통제 시스템이 약하고, 대주주의 횡령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위험성도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 지난 부실 사태를 통해 입증됐다.
금융회사에 부실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예금자, 즉 소비자에 돌아가는 만큼 투명한 경영이 요구된다.
앞으로 저축은행 등은 예금으로 부동산 투자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대출자의 변제 능력 검증을 의무적으로 하는 등 금융회사로서의 제 기능을 차츰 되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추가적으로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있을 것에 대비해 후순위채(금융회사 파산 시 변제 순서가 가장 늦은 채권) 피해자의 신고 센터를 확대하고, 소송 등 분쟁을 줄이기 위한 사전 예방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