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두 배씩 성장하며 50조원 시장을 바라보는 퇴직연금. 그러나 갈 길이 아직 멀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은 6.6%에 불과하며 전체 근로자 수 중에선 27.4%만이 가입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는 퇴직연금 시장에 '활성화'가 따라붙는 이유다. 무엇보다 퇴직연금 확대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는 세제 개선이 꼽히고 있다.
이와 관련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은 퇴직일시금 수령 시 적용되는 높은 공제 비율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퇴직연금, 왜 중요한가? =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한 소득대체율은 47.5%. 국제적 권고 기준인 60~70%에 훨씬 못 미친다. 이 중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12.5%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두 배, 미국과 영국 등은 세 배가량 높은 상황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재정 부족으로 곤란에 처한 것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을 통한 은퇴 소득 보장이 절실히 요구된다.
□ 퇴직연금과 세제간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가 = 은퇴 소득의 보장 수준이 70~80%대에 달하는 선진국들은 어김없이 세제 혜택을 활용했다.
은퇴 소득 대비에 대해 자율권보다 복지권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과감한 세제 개선에 나설 때다. 보험연구원이 퇴직연금 잠재 가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세제 지원 확대 등을 통해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대다수인 30.2%가 세제 지원 확대를 요구했고, 수급권 보장 강화(22.1%)와 은퇴 소득의 필요성 및 인식 제고(12.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 가장 우선적으로 손질해야 할 부분은? = 보험연구원 조사 결과, 중간정산을 경험한 근로자의 6.7%만이 은퇴 소득을 위한 저축 및 투자로 활용했다. 나머지는 생활비로 소진했다.
퇴직연금 제도의 기본 취지가 은퇴 이후 노후 재원 마련에 있다는 점에서 퇴직일시금은 부적합하다.
문제는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는 것보다 일시금으로 받는 것이 유리한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는 퇴직급여를 받을 때 일시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소득세, 연금형태로 받게 되면 연금소득세를 부과한다.
그런데 현행 세제 체계에서는 근속연수가 길고 소득이 높은 계층일수록 퇴직소득세보다 연금소득세를 더 많이 내야 한다. 연금수령 기간도 짧아야 유리하다. 거꾸로 된 것이다.
따라서 세제상 퇴직일시금의 혜택을 줄이고 퇴직연금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퇴직일시금 수령 시 적용되는 높은 공제비율(퇴직소득 금액의 40%)을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지금은 단계적 축소도 규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와 함께 연금 수령 활성화를 위해 현행 900만원인 소득공제 수준을 최소 1200만원까지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 그밖에 필요한 세제 개선 과제는? = 퇴직연금 적립금의 납입 시 소득공제 한도를 높여야 한다.
세제 개편을 통해 올해부터는 개인연금과 합산해 연 400만원까지 소득공제가 되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의 대표적 퇴직연금인 401(K)은 소득공제 한도가 개인당 1만6500달러이며, 50세 이상 근로자는 5500달러가 추가로 소득공제된다.
아울러 미국과 일본처럼 우리나라의 개인연금 합산과세도 독립적인 세제 체계로 구분해야 한다. 퇴직연금은 잠재적인 이용자 수와 금액 면에서 개인연금보다 중요하며, 국민연금과도 다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득계층별 세제 혜택의 차등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일괄적으로 세제 혜택을 증가시킬 경우 추가 불입 여력이 높은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향후 근로자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배우자, 특수직역 근로자 등을 포함한 전 국민이 퇴직연금 제도의 틀에 포함될 예정이기 때문에 이에 부응한 퇴직연금 세제 체계의 개선 역시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