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자동차는 하나의 자동차회사를 넘어 전체 제조업의 품질과 신뢰성을 상징하는 둘도 없는 모델이었다.
도요타생산방식은 1980년대 미국 MIT(메서츄세츠공과대학)연구진이 소위 '린'(Lean)생산방식으로 일반화해 지구촌의 많은 생산공장에서 교본(敎本)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제조공정에서 군살과 군더더기를 제거해 제품 및 제조공정 전반에 걸쳐 비용을 계통적으로 절감시키는 생산방식이 마치 효율적인 다이어트로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해서 '린'(Lean)방식으로 불리게 됐다.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소위 미국자동차업계의 '저스트 인 타임'(JIT: Just In Time) 시스템은 도요타생산방식의 핵심이다. 공정(工程)간 재고를 최소화하는 생산지시표 '간반'(Kanban), 스스로 머리를 짜내 품질과 효율과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가이젠'(Kaizen:개선)은 일본어 발음 그대로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구입해 사용중인 제품을 회수해 무상으로 수리해주는 리콜(recall)은 사실 자동차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도요타자동차의 품질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7월부터였다.
'품질의 도요타'에 상상하기 어려운 리콜사태가 발생하자 당시 와다나베 가츠아키 사장은 머리 숙여 사과하며 엔지니어링 자원을 고객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재배치하고 필요할 경우 신 모델 개발기간도 충분히 길게 잡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리콜은 꼬리를 물었고 소비자품질조사에서 도요타제품의 랭킹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년 후 영향력이 큰 잡지 컨슈머 리포트는 도요타 자동차 3개 모델을 추천명단에서 제외시키고, 앞으로 구체적 사양과 디자인에 대한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제공되지 않으면 도요타의 어떤 새 모델도 추천하지 않겠다고 유보를 달았다.
도요타 측은 글로벌시장에서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품질하자라며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러나 최근 8개 차종 1000만대에 육박하는 세계적 대량 리콜과 미국 내 판매 및 생산중단 사태는 '품질의 화신' 도요타를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자동차메이커'로 추락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세계자동차산업계에 GM과 크라이슬러 파산 이후 최대의 위기로까지 불린다. 어쩌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을까. 누구보다도 제조업의 자존심 일본 열도가 깊은 충격에 빠졌다.
문제의 발단은 가속페달이었다. 가속페달을 밟은 뒤 발을 떼어도 계속 속도가 올라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미국에서 빈발했다.
페달에서 발을 떼면 페달이 원위치로 돌아와야 하는데 복원이 잘 되지 않았다. 운전석 바닥에 깔린 매트(발판)가 움직이면서 가속페달을 눌러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도요타는 작년 9월 '매트에 문제가 있었다'며 380만대의 리콜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페달이 복원되지 않는 사고가 잇따르자 올해 1월 21일 230만대 차량을 가속페달 복원력 문제로 리콜했다. 가속페달 자체의 구조적 결함 가능성을 짙게 시사한다. 페달뒤쪽 페달 암(arm)이 연결된 부위의 스프링 성능에 이상이 생기면 원위치로 복원이 잘 안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도요타는 2005년형 모델부터 가속페달 부품을 미국 인디애나주의 CTS사로부터 납품받고 있다. 도요타사 최대의 부품공급업체 일본 덴소의 미국 현지 업체가 공급한 가속페달은 리콜대상에서 제외됐다. CTS 제품에 혐의를 두고 있지만 CTS사는 급발진 문제가 1999년형 일부 도요타와 렉서스모델에서도 나타났다며 CTS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CTS사는 1896년에 창업해 종업원이 4500명이며 자동차 뿐 아니라 항공 우주산업에 전자부품과 센서를 공급하고 있다. 혼다와 닛산 미쓰비시에도 부품을 공급하며 도요타 납품은 전체 사업의 3%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결함의 정확한 원인과 책임소재 규명은 도요타의 명예가 걸린 문제다.
도요타의 리콜사태는 한마디로 도요타가 자신의 성공에 스스로가 제물이 된 것으로 비유된다.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 공정을 단축하기 위해 종래 일본 중소기업을 통해 조달했던 부품들을 전 세계 현지의 부품회사들로부터 조달을 다변화했다.
해외 현지 부품업체들의 부품품질에 문제가 없다 해도 부품조달을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품질관리가 본국 공장에서만큼 완벽할 수는 없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생산라인에 공통의 부품과 디자인을 사용해 중복을 제거하고, 부품도 통일시켜 납품업체 숫자를 줄이고 납품규모를 대형화시키는 것이 도요타생산방식이다.
그러나 효율위주의 이 방식에는 위험도 따른다. 하나의 생산 플랫폼에 여러 모델의 차종을 조립할 경우 어느 한 차종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 모델차종의 문제로 그대로 번진다.
제품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고 대량으로 판매될수록 제품의 조그만 하자도 세계적 규모로 확대된다. 도요타는 2010년까지 세계자동차시장 점유율 15%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품질을 희생한 대가가 이번 사태인 셈이다.
오늘날 자동차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코드(code)로 움직인다. 기계적인 부품성능 못지않게 이들을 연결해 작동시키는 전자시스템도 중요하다. 이번 가속페달 결함도 페달과 차체 전자시스템 간 연결과정에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견해도 불거진다.
자동차는 이제 웬만한 메이커제품도 굴러가는 데는 이상이 없고 대량생산시스템화 하면서 디자인과 마케팅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추세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자동차 특유의 '모노즈쿠리' (물건 잘 만들기)가 빛을 바래는 상황에서 믿었던 품질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도요타차의 품질결함이 너무 과장됐고 여기에는 미국당국과 언론들의 '도요타 때리기'도 한 몫을 한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실제 북미시장에서 8개 차종 생산중단과 230만대 리콜조치는 미국 운수부측이 먼저 요청해 도요타현지법인이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미국의 GM과 포드, 그리고 한국의 현대차까지 '도요타를 팔면 1000달러를 준다' 며 적극적인 시장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 도요타 리콜사태가 과도한 비용절감과 치열해진 글로벌 경쟁의 한 결과물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글로벌자동차메이커들에겐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사태가 닥쳐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먼저 호된 매를 맞은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기술우위를 무기로 계속 앞서 갈 수도 있다. 도요타의 불행을 경쟁사들이 웃고 즐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른 감이 있다.
[변상근 논설고문]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