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구속기소된 안원구 국장이 자신을 향한 검찰수사가 시작된 직후부터 스스로 또는 아내 홍혜경씨를 시켜 폭로한 내용이 정치쟁점화까지 비화된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폭로에 인화성이 강한 내용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안 국장은 자신이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있을 때 포스코건설에 대한 정기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라는 문건을 확인했으며, 한 전 청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해서도 자신에게 권한을 넘어선 지시를 내렸다고 폭로했다.
이와 함께 그는 비망록을 통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지방국세청을 돌며 직원교육을 하는 과정에서도 인사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고 적어놓는 등 한 전 청장의 부정의혹을 열거해놨다.
■ 포스코 세무조사 때 도곡동 땅 실소유주 확인?
안 국장은 "대구청장으로 있을 때 포스코건설 정기세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제출한 문건들 속에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 이명박'이라고 기록된 문건을 조사자가 발견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해서 각별한 보안을 지시하고 이 문제를 덮었다"고 폭로했다.
안 국장의 말을 전해들은 민주당은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당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고 기록된 문건은 '전표' 형태였다"고 주장했다.
사실일까. 안 국장의 주장에는 회계와 관련해 조금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쉽게 알 수 있는 모순이 있다. 안 국장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문건이 '전표'였다는 것이 문제다.
'실 소유주'라는 말은 '명의자'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기업 회계실무자들은 "대차대조표 등 장부작성의 기초가 되는 '전표'에는 거래상대가 누구든 명의자가 씌어질 뿐, 실소유주는 기록될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안 국장의 조사팀이 이 문건을 분명하게 봤다면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전표내용이 아니고, 전산으로 작성된 전표 위에 누군가 따로 펜이나 연필로 메모를 한 흔적일 가능성은 있다는 것.
그러나 이 땅 거래가 1995년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이 마저도 설득력이 약해진다. 기업회계 실무자는 "하루에 수천 아니 수만 건씩 전표가 끊어지는데, 거래액이 아무리 커도 10년이 훨씬 지난 전표를 찾을만한 능력이 있는 기업실무자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당시 포스코건설에 대한 정기조사 대상 범위가 2003~2004년 거래였음을 감안하면, 1995년 끊어진 전표가 조사기간 동안의 장부에서 발견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국세청의 많은 사람들은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이에 대해 안 국장은 "당시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라인은 국장과 과장 그리고 조사반장 등 3명이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중에 사실을 안 국세청 감찰이 당시 조사국장을 찾아가 문건을 본 사실이 없음을 강요한 내용을 녹취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당사자들은 펄쩍 뛰고 있다. 안 국장이 언급한 당시 조사국장은 "전표라는 것을 본 적도 없고 그런 것이 있다는 보고도 받지 못했다"며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한 국세청의 입장은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문건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어 감찰직원을 대구에 파견해 확인했지만, 문건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돌아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안 국장이 가지고 있다는 녹취록이 공개돼야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한상률 전 국세청장-안 국장 관계복원(?)
안 국장은 비망록에서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대통령과 독대보고를 통해 관리·통제했다는 사실과 조사와 무관한 본인에게 조사에 투입하도록 사전에 준비작업을 시킨 것은 관할권을 무시하고 사적인 욕심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준 사례"라고 적었다.
이와 관련 안 국장은 조세일보 기자와 만났을 때도 "태광실업 세무조사와 관련해 한 청장으로부터 일종의 특명을 받아 수행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안 국장 얘기는 이렇다. 그가 대구청장에서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발령이 났던 2008년 7월경 내내 부르지도 않던 한 청장이 급하게 그를 찾았다. 당시 그는 하계휴가를 즐기면서 한 청장에 대한 원독(怨毒)을 삭이고 있을 때였다는 것.
당시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던 그는 때는 왔다고 속으로 외쳤다. 한 청장이 나를 왜 멀리하고 미워하는지를 반드시 물어보고, 공직을 그만둘 각오까지 다져가며 한 청장을 만났다는 것.
그러나 당시 한 청장은 언제나처럼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근엄한 표정으로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당신이 해줘야 할 역할이 있다. 이번에 이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어 명예회복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안 국장은 "공직을 그만둘 각오는 한 청장의 말을 듣는 순간 봄눈 녹듯 사라지더라"며 "나도 모르게 제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데요 하며 한 청장의 말에 빠져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때 한 청장에게 또 속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한 청장의 특명에 따라 방한한 베트남 국세청장 일행을 잘 영접했고, 스스로는 특명을 잘 수행한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 한 청장이 다시는 그를 찾지 않았다고 억울해했다.
■ 한상률 전 국세청장 관련 비리혐의 주장
▲ 신성해운 연루 검찰수뇌부 비리 찾아내 맞불로 무마?
안 국장은 비망록에서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과 관련된 신성해운이 문제가 돼 당시 조사검사의 수사기록에 한상률의 내용이 언급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한 청장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당시 검찰수뇌부에 자금지원을 한 업체를 알아내고 빅딜로 무마했다"고 주장했다.
안 국장의 주장은 당시 정보지 등에서 검찰수사기록의 일부로 떠돌았던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뒷 얘기가 있다. 당시 한상률 청장은 자신과 관련된 이같은 내용의 루머가 근거도 없이 나돌자, 국세청의 한 간부를 불러 진상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 청장의 지시를 받은 이 간부는 곧장 검찰로 달려가 담당검사의 협조로 수사기록을 볼 기회를 얻었고, 이 문제와 연관된 변호사도 만나 진위여부를 파악했다고 한다.
정보지에 나돌았던 검찰수사기록에는 질문-답변 형식으로 이뤄져 있고 여기에 한 청장의 이름이 삽입돼 있었는데, 실제 검찰수사기록에서는 한 청장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확인이 불가능한 누군가 교묘하게 정보지의 질문-답변 사이에 추가로 질문-답변을 넣어 한 청장을 거론했다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 승진 등 인사를 통해 직원들로부터 금품수수(?)
안 국장은 "(한 청장이)납세자신뢰도 제고를 위한 교육을 명분으로 전국을 돌면서, 인사청탁을 하는 직원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했으며, 국세청의 한 간부가 그 창구였다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국세청 사람들은 "사실은커녕 그런 소문도 없다"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더 나아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국세청의 한 직원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을 하러 가는 마당에 뒤에서는 따로 돈을 받는 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 국세청이 그처럼 썩었느냐"며 "국세청 국장까지 했다는 사람이 그처럼 비뚤어진 생각과 오해를 하다니 부끄럽다"고도 했다.
한 청장의 금품수수 창구역할을 했다고 지목된 전임 간부도 "(안 국장이)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마당에 따로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 아니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특히 "지방국세청 순회교육이 분명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청장을 수행한 것은 맞다"며 "사실과 사실이 아닌 내용을 교묘하게 짜맞추니, 국세청을 잘 모르는 사람이면 일부 믿을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