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前국세청장이 낙마한 지난 1월19일 이후 국세청장 자리는 공석 상태로 이어져 왔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국가재정 확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국세청의 수장자리를 이토록 오래 비워두는 것은 청와대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아예 국세청장 자리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지만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간간이 '적합한 인물을 찾고 있다'는 불명확한 해명만을 내놓은 채 지루한 시간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새로운 국세청장 인선시기.
아울러 어떤 능력과 성품을 가진 인물이 후보자로 지명되는지 여부다. 이는 '대한민국 국세청장'이라는 국가적인 측면, 범위를 넓게 설정했을 때의 관심사다.
그러나 범위를 국세청 조직에만 국한시켜보면 또 다른 관심사가 존재한다.
바로 어떤 '출신성분'을 가진 인물이 '우리 회사(국세청)'의 수장이 되느냐, 내부출신 국세청장이냐 외부출신 국세청장이냐의 문제다.
□ 국세청장 자격조건= 인선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는 넉 달(앞으로 또 얼마의 시간을 소비할지는 모르는 일이다)동안을 뒤져봤지만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장 인선 지연에 대한 각종 설(說)과 추론 등을 배제하고 청와대가 내세우고 있는 인물난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청와대가 분명한 국세청장 자격기준을 가지고 인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넉 달의 시간이 소요됐고, 또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 가늠키 어렵다는 측면에서 보면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국세청장 자격기준 또한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국세청장 자격기준은 무엇일까.
제반 상황을 종합하면 충분히 추론이 가능하다.
전임 국세청장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고, 직전 국세청장 또한 부적절한 처신으로 불시 낙마, 국세청은 '비리조직'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즉, 이 같은 국세청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한 '주위환기' 필요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 입장에서는 청렴성과 도덕성을 기본으로 갖춘 인물을 후보자로 뽑아 올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국세청 조직개편을 감안하면 개혁성을 가져야 하며 정권과의 '코드'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여기에 지역적 색채마저 적합하다면 80∼90점 짜리 후보자가 될 수 있다.
청와대가 명확한 인선기준을 가지고 심도 있는 검증을 진행, 나름대로 '무결점' 후보자를 지명한다고 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검증시 드러나지 않은 불미스런 의혹이 제기된다면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부실이라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후보자 개인사의 흠결은 물론이거니와 정치공세의 쟁점이 될 만한 결격사유가 없는 인물을 지명한다면 말 그대로 '100점짜리' 후보자가 된다.
어려운 미션이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청와대가 넉 달 이상 공을 들인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확보할 수가 있다.
□ 또 다른 자격기준…'출신성분'= 범위를 좁혀보면 청와대가 고려해야 할 또 다른 국세청장 자격기준이 존재한다. 국세청장 후보자의 '출신성분'이다. 즉, 국세청 내부출신이냐 국세청이 아닌 다른 정부기관 혹은 민간출신이냐의 문제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대수롭지 않은 기준이지만 고려의 범위를 국세청이라는 조직에 국한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다른 어떤 기준보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또 관심이 가는 자격기준이다.
지금까지 국세청장 후보자로 거론된 십 여명의 인물들은 내부출신과 외부출신이 골고루 섞여 있다. 국세청 혹은 다른 정부부처에 몸담았다가 퇴직, 현재 기업인으로 변신한 인물들도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청와대는 현재 내부출신 인사와 외부출신 인사를 동급으로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보자 검증단계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편중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검증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동향과 관련해 여러 가지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현 시점에서 내부출신 후보자를 지명할 경우 '내부승진 시킬 요량이었다면 진작하지 왜 시간을 끌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요지의 '내부승진 불가론'도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연결선상에서 다른 정부부처 출신 기업인이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에 머물러 있었지만 본인이 고사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검찰 압수수색 등 외풍으로 인해 시련을 겪고 있는 국세청 직원들의 '반발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내부출신을 후보자로 지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전국 2만명 국세청 직원들의 사기와도 직결되어 있다. 국세청 직원들은 내부출신 국세청장을 바라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내부출신 국세청장의 명분은 예나 지금이나 흔들림이 없다.
외부출신 국세청장에 대한 거부감은 국세청 조직의 특성.
국세청이란 조직만이 외부출신 수장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국세청이라는 조직이 다른 정부조직에 비해 이 부분에서 '유별성'을 띈 것만은 사실이다.
내부출신 인사와 외부출신 인사 사이에 빨간줄을 긋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분명 국세청장 인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조직이기주의가 다분히 반영된 문제다.
그러나 청와대가 국세청장 인선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자격기준'인 것만은 확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