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헌재, '한정위헌결정' 기속력 놓고 30년 대립
국민권익위, "과세당국 89사업연도 법인세 취소 의견표명"
장기 분쟁으로 과다해진 '환급가산금'… "지급하지 않는 방안 고려"
납세자측 '환급가산금' 양보… 해결 열쇠 될 수 있을까?
◆…국민권익위원회 로고
20년 된 세금 사건이 아직도 소송 계류 중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 2번 변하도록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과세관청이 지난 2004년 1월 행한 법인세 부과처분이 만 20년이 경과한 2024년 현재까지도 법원(대법원)에 사건이 진행 중이다.
20년 동안이나 세금 관련 사건을 국가기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과세당국이나 법원 등 국가기관이 납세자인 일반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심각한 신뢰위기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계속 중인 이 사건(KSS해운 법인세 부과처분)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입장 차이로 인해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좀체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답답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결국 신청인(KSS해운) 측은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을 통한 해결책을 생각해 냈고, 마침내 지난 7월 권익위 '의결'을 통해 해법(?)이 제시됐다.
권익위는 '의결 주문'을 통해 "과세당국(피신청인)에게 KSS해운(신청인)의 1989사업연도 법인세 52억여원 중 약 3억5천여만원을 초과한 부분 및 방위세 13억여원 중 8천8백여만원을 초과한 부분을 취소할 것을 의견표명한다"면서 "다만, 이 사건 분쟁이 장기간 지속됨으로 인해 환급가산금이 과다하게 발생한 점을 감안해 과세당국에서 법인세를 취소할 경우 환급가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안을 함께 고려하라"고 결정했다.
신청인 측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가온의 소순무 변호사는 권익위의 결정에 대해 "현 헌법상 사법체계의 사각지대를 메우려는 전향적 결정"이라며 "권익위는 그 존재이유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세청도 결정의 취지를 존중할 것으로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 왜 미제사건이 됐을까?
KSS해운(신청인)은 해운업을 영위하는 법인으로, 1989년 7월 '구 조세감면규제법'에 따라 주식 상장을 전제로 소유 재산에 대해 자산재평가를 실시하고, 그 재평가차액 147억여원을 법인세법에 따라 익금에 산입하지 않은 채 1989사업연도 법인세를 신고·납부했다.
과세당국(피신청인)은 지난 2004년 1월 KSS해운이 재평가세 특례 혜택을 받고 의무적 주식 상장기한인 2003년 12월 31일까지 주식을 상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KSS해운에게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을 적용해 1989사업연도 법인세 140억여원(과소신고 가산세 및 미납부가산세 91억5천여만원 포함)과 방위세 14억5770여만원(가산세 2억4천여만원 포함)(이하 '이 민원 원처분')을 KSS해운에게 고지했다.
KSS해운은 '이 민원 원처분'에 대해 2004년 3월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고, 국세심판원은 2005년 3월 이 민원 원처분(법인세 약 140억원+방위세 약14.5억원=약 154.5억원) 중 과소신고가산세와 미납부가산세(약 91.5억원)를 취소하는 일부 인용결정을 했다.
이후 KSS해운은 2005년 '이 민원 부칙규정'은 구 조세감면규제법의 시행에 따라 실효됐다는 취지로 '이 민원 원처분'에서 국세심판원 감액금액을 차감한 부과처분(이하 '이 민원 부과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이하 '이 민원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이하 '이 민원 판결') 확정됐다.
한편, KSS해운(신청인)은 '이 민원 소송' 진행 중에 '이 민원 부칙규정'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서울고법은 제청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KSS해운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헌재법 제68조2항의 위헌법률심판형 헌법소원)을 청구했는데, 헌재는 '이 민원 조세감면규제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이 민원 부칙규정이 실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됨을 확인한다'라고 결정(이하 '이 민원 한정위헌결정')했다.
이에 KSS해운은 대법원에 '이 민원 소송'의 취소를 구하는 재심의 소를 제기했는데,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이 민원 한정위헌결정'에도 불구하고, 이 민원 판결이 정당하다며 KSS해운의 재심청구를 기각(이하 '이 민원 재심기각판결')했다.
KSS해운은 다시 헌재에 '이 민원 재심기각판결'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대법원의 '이 민원 재심기각판결'에 대해 KSS해운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이하 '이 민원 재심취소결정')해 신청인은 또다시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현재 소송(이하 '이 민원 재심소송')이 진행 중이다.
권익위는 먼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 유무를 놓고 지난 30년이 넘도록 견해 차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KSS해운 민원 관련 사안에 대해 대법원에서 재심소송이 진행 중에 있지만, 첫째로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대한) 견해를 바꾸어 KSS해운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하고, 둘째로 우리나라 사법체계상 이(대법원과 헌재의 한정위원결정의 기속력에 대한 견해 차이)를 해소할 규정 또한 없어 이 민원이 언제 해결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권익위의 상황 인식이다.
신청인(KSS해운) 측은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으로 받아들여 이 문제를 해소해 달라고 신청했고, 또 지난 4월 "이 민원 부과처분의 취소 시 발생하는 환급가산금에 대해 일정부분 양보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이에 국민권익위는 "KSS해운(신청인)의 의사를 과세당국(피신청인)으로 하여금 수용할 수 있도록 조정해 달라는 의견서를 추가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 과세당국의 주장
한편 과세당국(피신청인)은 "권익위의 이 민원이 대법원에 재심소송이 진행 중에 있으므로, 부패방지권익위법에 따른 '고충민원'의 처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부패방지권익위법에는 '행정심판, 행정소송, 헌법재판소의 심판이나 감사원의 심사청구, 그밖의 다른 법률에 따른 불복구제 절차가 진행중인 사항'은 이송 또는 각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세당국은 또한 "이 민원 부과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민원 부과처분을 변경 또는 취소하는 것은 불가하므로 신청인(KSS해운)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국민권익위, KSS해운의 민원은 '고충민원' 대상
국민권익위는 KSS해운의 이 민원과 관련해 "과세당국이 KSS해운에게 한 이 민원 부과처분의 처분일이 2004년 1월 16일이므로 만 20년이 지났고, KSS해운이 헌재로부터 이 민원 한정위헌결정을 받은 날인 2012년 7월 26일로부터도 약 12년이 경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이 민원 한정위헌결정에 대해 이후 대법원은 2013년 3월 임 민원 재심기각결정을 했고, 헌재는 2022년 7월 이 민원 재심취소결정을 했으며, 현재 대법원에 이 민원 재심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대법원 판례와 헌재의 그동안 입장에 비춰,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대한 입법적·제도적 해결방안이 마련되지 전까지는 신청인이 대법원과 헌재를 오가며 소송을 반복하더라도 최종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권익위는 "따라서 이런 제반상황을 고려해 볼 때, 신청인(KSS해운)이 '이 민원 재심소송'을 통해 권리 구제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여지고, 향후에도 헌재와 대법원을 오가는 지리한 절차 반복만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별한 사정을 감안해 예외적으로 고충민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이 민원 부과처분' 취소할 있는지 여부
권익위는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둘러싼 헌재와 대법원의 대립이 30년 넘도록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가기관이 합리적 해결 방안을 강구하지 않아,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을 위해서는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한 적극행정을 구현함으로써, 국가행정의 적정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권익위는 "따라서 헌재와 대법원이 의견이 달라, 행정의 적법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행정의 합목적성 차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정을 구현하기는지를 기준으로 고충민원을 통한 권익구제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런 관점에서 권익위는 4가지 판단 기준을 제시했는데, ① 이 민원 발생의 실질적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② 이 민원 부과처분의 적법성 여부, ③ 향후 이 민원의 추가 발생 가능성, ④ 이 민원을 구제했을 때 훼손되는 공익과 이 민원을 기각했을 때 잃게 되는 공익의 비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익위는 먼저 "이 민원의 발생 원인이 과세요건의 경과규정을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판단했다.
둘째, 이 민원 부과처부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헌재와 대법원의 엇갈린 판단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행정처분의 적법성 여부가 불분명한 상태라고 분석하면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법격언을 차용해 "개별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합리적인 행정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셋째, 향후 이 민원의 추가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낮다고 평가하면서, "무엇보다 이 문제가 국가기관간 법해석과 관련된 논쟁으로 이 민원을 구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넷째, 이 민원을 구제할 경우 훼손되는 공익(조세공평주의)과 이 민원을 기각할 경우 잃게 되는 공익(국민의 국가에 대한 신뢰 저하)을 비교해도 "전자의 조세공평주의보다 후자의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한 행정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권익위는 "이 민원의 부과처분을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민원 관련 분쟁이 장기간 지속돼 환급가산금이 과다 발생한 사정과 고충민원 해소차원에서 이를 반환하게 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신청인(과세당국)이 이 민원 부과처분 취소시 신청인(KSS해운)에게 환급가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덧붙였다.
◆…정의의 여신상 디케
무엇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 여부를 놓고 30년 넘게 대립하며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편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제50조(처리결과의 통보 등)는 "(국민권익위로부터) 권고 또는 의견을 받은 관계 행정기관등의 장은 이를 존중하여야 하며, 그 권고 또는 의견을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그 처리결과를 권익위원회에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계기관인 국세청의 처리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 대립을 지속하고있는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 문제에 대해 '입법적·제도적 해결책' 마련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당부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이 있다. 20년이 넘도록 해소되는 않는 납세자의 눈물을 이번 기회에 닦아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