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6월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는 카타르와 오만 국적의 LNG(천연가스) 생산 업체와 LNG 장기 도입 계약을 체결한다.
당시 가스공사는 원활한 자금조달 및 민간기업들의 해외자원 개발 참여를 독려할 목적으로 해외자원 개발 및 수입에 관심이 많은 6~7개 민간 기업(종합상사)들과 '컨소시엄'을 구성, 가스전 지분 각 5%를 매입해 LNG의 안정적인 도입 기반 및 수입 기반(배당금)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지금은 경쟁이 더 치열해졌지만 당시는 세계 각 국이 '자원확보 경쟁'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뛰어들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자원빈국(資源貧國), 대한민국도 가만히 앉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도 민간 기업들이 해외자원 개발에 뛰어들 '원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세금혜택(해외자원개발투자액 세액공제, 해외자원개발투자 배당소득 법인세 감면 등)을 도입했다.
다시 당시 상황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가스공사와 종합상사들은(이하 컨소시엄) LNG 생산 및 판매로 발생한 배당금을 안정적으로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방편으로 2개의 SPC(특수목적회사)를 세운다.
코라스(Koras)와 코엘엔지(Kolng)였다.
컨소시엄은 코라스와 코엘엔지의 법적 실체를 버뮤다에 둔 뒤, 운영사무소는 각각 미국 휴스턴(코라스)과 영국 런던(코엘엔지)에 설치했다.
배당금에 대한 세금을 외국에 낼 경우 '남 좋은 일'이 된다는 점을 감안해 두 SPC의 법적 실체를 '조세회피처'인 버뮤다에 두고 축적된 '부(富)'를 모두 국내로 들여오는 묘안을 짜낸 것이었다.
당시 SPC 설립 등 모든 사항들은 관계부처(현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 및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이후 4년만에 가스공사와 종합상사들은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는데 성공했고, 2001년 9월 첫 배당수익을 올리며 현재까지 사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자원빈국(資源貧國) 대한민국 = 세계는 지금 '제2의 냉전'이라고까지 불리는, 천연자원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2015년 기준 에너지 수입 의존도 95%에 달하는 자원빈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 어느 나라에 비해 자원을 어떻게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생존의 문제다. 한국가스공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카타르, 오만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투자한 국내 유수의 종합상사들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사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생긴 문제로 인해 세법이 개정되면서, 이를 '무기' 삼아 달려든 국세청의 공세 앞에 맥없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는 형편이다.
문제의 소지는 영 엉뚱한 곳에서 생성됐다.
2000년대 중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론스타 펀드' 사건이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 펀드는 조세회피처에 세운 특수목적법인을 매개로 국내 부동산(현 강남파이낸스센터)을 매각해 엄청난 양도차익을 얻은 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먹고 튄' 것이다.
정부는 제2, 제3의 론스타 펀드를 막기 위해 세법을 개정한다.
내국법인 판단 기준(법인세법 제1조1항)에 실질관리장소 기준(소재지 기준은 동일)을 추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홍콩이나 싱가폴에 법인을 세운 후 국내로 진출해 사업을 하더라도 종전까지는 외국법인으로 분류하지만 홍콩 소재 법인이더라도 이사회 등 중대한 의사결정이 국내에서 이루어지면 내국법인으로 판정되도록 법이 고쳐진 것이다(2006년 1월1일 시행).
론스타 펀드와 같은 명백한 조세회피 목적을 갖고 한국 시장을 유린하는 외국계 기업 및 국내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세금 없이 해외로 빼돌리기 위한 목적의 '불순 사업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이루어진 법 개정이 세금회피 의도가 없는 내국법인들을 때려잡는 '칼'이 될 줄은 그때까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칼날, 가스공사와 종합상사들을 겨누다
2015년 12월 국세청은 탈세혐의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부서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소속 조사요원들을 대구광역시 소재 가스공사 본사에 투입, '심층(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한다.
관할 지방국세청을 바꿔 진행하는 '교차세무조사' 형태로 진행된 당시 세무조사는 4~5개월 가량 진행됐고 1200억원 가량의 법인세 및 개별소비세 등을 추징하는 것으로 종결됐다.
국세청은 당시 세무조사에서 코라스와 코엘엔지를 문제삼고 나섰다.
두 SPC의 법적 실체가 조세회피처인 버뮤다에 있었지만 이사회 등 중대한 의사결정이 컨소시엄 참여업체들의 국내 사무소에서 결정됐다는 정황을 포착, 두 SPC를 2006년 1월1일 시행된 개정 법인세법 규정에 따라 '내국법인'으로 간주한 것이다.
내국법인으로서 당연히 내야할 배당소득에 대한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SPC에 본세와 가산세(신고불성실가산세 등)를 추징했다.
코라스, 코엘엔지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는 컨소시엄에 참여한 종합상사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은 2003년 이후 해외자원개발투자 배당소득 법인세 감면 등 세금혜택을 받아왔었다. 이는 코라스와 코엘엔지의 경우 '도관회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배당수익을 올린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이 받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국세청은 코라스, 코엘엔지 두 회사가 내국법인에 해당, 배당소득 법인세 감면 혜택의 주체는 이들 회사이며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이 받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컨소시엄 업체들에 대해서도 감면 받은 세금 등을 추징했다.
이에 가스공사와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은 지난해 4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한 상태다.
코라스와 코엘엔지 및 컨소시엄 업체들에 부과된 세금은 현재 기준으로 수 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심판원을 거쳐 소송전으로 옮겨갈 경우, 이에 소요되는 시간 동안 추가적인 세금이 달라붙어 최소 3000억원 규모로 불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