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97.9%, 중소기업 회계투명성 제고必
"부실 재무제표로 대출 심사할 수밖에 없어"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외감을 받지 않는 기업들은 대부분 세무사 또는 회계사 사무소에 맡겨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신뢰성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직에 있는 중소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얼마 전 재무제표 컨설팅 용역을 맺고 있는 한 기업의 사장으로부터 적자가 많아 대출 연장이 안 될 수 있을 것이란 걱정을 들었다. 그러나 이 회계사는 원칙대로 적자를 표기했고, 결국 이 기업은 대출 연장을 받지 못했다.
이 회계사는 "대출 연장이 되지 않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감가상각을 반영하지 않고 재고자산을 시가로 평가하는 등의 방법을 적용해 분식 없이도 예쁜 재무제표를 만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하물며 나쁜 의도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원칙 없이 당기순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라며 "어떻게 은행이 독립적인 제3자의 감사 혹은 검토도 받지 않은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대출 관련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28만개 기업의 재무제표가 무방비?= 사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재무제표를 스스로 작성할 만한 능력이나 인력이 부족해 세무사나 회계사 사무소에 용역을 주고 있지만, 회계사와 기업이 짜고 금융기관 대출을 목적으로 조작된 재무제표를 만들어도 이를 걸러낼 장치가 없는 게 현실이다.
2011년부터 상장기업에 의무적으로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고, 회계신인도를 제고하겠다는 정부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자산 70억원 미만)의 이처럼 '신뢰성 잃은' 재무제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자산총액 70억원 이상인 1만8074개사가 외감을 받고 있고, 이중 상장기업의 수(678개, 작년 말 기준)를 제외할 때 30만 중소기업(비상장기업 포함) 중 약 28만개사가 외감을 받고 있지 않고 있다. 즉 약 28만개사의 재무제표가 '비신뢰 구간' 놓여있다는 얘기다.
□금융기관 97.9%, "中企, 회계투명성 제고해야 한다"= 작년 한진수 한국회계학회 연구위원 등이 발표한 '외부감사 대상법인의 범위결정기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자신의 회계투명성이 높다고 평가했지만,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의 회계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인식의 차이를 뚜렷이 보여줬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2004년에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정책자금 수혜자 212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회계관행과 회계투명성을 조사한 결과 87%가 공인회계사에 의한 외부감사가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제고한다고 나타났다.
또한 조사대상 중소기업이 스스로 평가한 회계투명성은 63%의 기업이 매우 또는 상당히 높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2004년 옛 재정경제부는 금융기관의 3.9%만이 중소기업의 회계투명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금융기관 임직원 중 97.9%가 중소기업의 회계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더구나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년 6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당월 기준으로 은행의 기업대출(원화)이 총 7조6000억원 발생했으며, 이중 80%인 6조1000억원이 중소기업에서 발생했다.
즉 한 개의 중소기업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만, 수많은 중소기업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대기업을 훨씬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부실대출 우려, 배제 못 해"= 중소기업의 채권자로서 최대 이해관계자인 금융기관이 중소기업의 회계투명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은행의 기업 대출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부실 대출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기관은 외감을 받지 않은 기업의 재무제표를 통해서만 대출심사를 하는데는 신뢰성이 없어 대표이사의 경력, 동종 업종간의 매출액 차이 등의 비재무적 정보 등을 함께 심사하거나 은행별로 신용평가시스템, 분식체크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재무제표 역시 세무사나 회계사가 작성한 재무제표 또는 세무서에 법인세를 신고할 때 발급 받게 되는 재무제표 제출 증명서를 제출 받아 심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와 회계사가 짜고 충분히 분식 재무제표를 만들 수 있고, 세무서가 발급한 제무제표 제출 증명서는 말 그대로 재무제표를 제출했다는 증명서일 뿐 재무제표의 분식여부를 확인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비재무적 정보와 분식체크 시스템 등이 대출심사에 동원되더라도 기업의 재무제표가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자료가 되기 때문에 부실 재무제표는 잘못된 대출 심사 자료로 쓰여 금융기관의 부실 대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분식체크 시스템이 있는데 대출 차입금 이자가 너무 적다든지 하는 등의 체크 가능한 부분만을 분식체크해 대출 심사를 하게 된다"며 "여기서 체크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