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고시회

편해진 납세자, 불편한 세무사	2023.05.08
◆…유영조 중부지방세무사회 회장(왼쪽)과 김진현 중부지방국세청장이 이달 초 열린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세청의 모두채움서비스가 과도하게 확대돼 세무사의 업무영역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축소시키고 있다" 지난 3일 유영조 중부지방세무사회 회장이 중부지방국세청과의 종합소득세 관련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모두채움서비스는 말 그대로 세금 신고서를 국세청이 납세자 대신 채워주는 서비스다. 세금 신고는 원래 납세자가 하는 것이지만, 국세청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료가 많기에, 납세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모두채움서비스를 통해 납세자는 내역을 확인한 후 동의만 하면 간단히 세금 신고를 완료할 수 있다. 세금 신고가 비교적 간편한 단순경비율 적용 대상자를 위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대상자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의 경우 전체 종소세 신고 대상자 1180만 명 중 절반이 넘는 640만명에게 모두채움서비스가 제공된다. 2021년 212만명, 지난해 497만명 등 증가세도 가파르다. 그만큼 세금 신고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납세자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 서운한 세무사들 납세자들은 편해지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무사들의 심기는 불편하다. 유영조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사실 국세청의 모두채움서비스가 과도하게 확대되고 있어 세무 업무영역을 침해하고 축소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라며 "세무사는 국가 재정수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극히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국가재정 수요 등 거창한 표현을 섞어가며 에둘러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국세청이 과도하게 납세자에게 편의를 베풀어 세무사들의 일거리가 줄었다는 것이다. 업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유 회장으로선 충분히 꺼낼 수 있는 이야기다. 더욱이 유 회장은 내달 열리는 본 회장 선거에도 출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무영역, 일명 '밥그릇' 수호는 회장의 가장 큰 역할이기 때문에, 이런 발언은 회원들의 표를 모으는 데 꽤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납세환경이 편해질수록 세무사들의 위기의식은 커져가고 있다. 또 다른 일례로, 국세청은 올해 국세행정운영방안에서 최근 화두로 떠오른 '챗GPT'를 홈택스에 활용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 쉽고 편리한 홈택스 개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 문구가 세무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난 3월 22일 국세청에서 열린 국세행정개혁위원회에 참석한 원경희 세무사회 회장은 이런 국세청의 챗GPT 홍보문구에 대해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의 필요성을 전부 무시한, 향후에는 없어져야 할 납세협력자로 인식하도록 하는 부정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라며 개선을 강력히 요구했다. 표면상으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이라는 문구에 대한 불만으로 보이지만, '쉽고 편리한 홈택스 개편'에 대한 세무사 업계의 불안감이 내포된 발언이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 납세서비스가 과도하다? 납세자가 불편할수록 세무사의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모든 전문자격사가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전문가를 찾게 된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에는 글을 읽고 쓸 수만 있어도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특별한 취급을 받을 순 없다. 세무사들이 쉽고 편리한 납세환경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쩜삼'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무 플랫폼의 등장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세무사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쉽게 세금을 신고하고 환급까지 받는 현실이 세무사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무사 업계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보단 변화 자체를 막아 현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국세청의 납세서비스 강화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세무사 업계의 모습은 납세자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까지 만든다. 국세청의 납세서비스가 과도하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語不成說)이다. 최대한 세금 내기 쉽고 편한 환경을 조성해 세수를 차질없이 확보하는 게 국세청 본연의 임무다. 세금 신고가 너무 쉬워지면 세무사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적당히 하라는 세무사 업계의 발언은 자칫 국민의 공분을 살 수도 있다. 세무사는 매래에 없어질 직업을 조사할 때마다 매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세무사는 AI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 4위에 올랐다. 아직은 '설마 세무사가 없어지겠어?'라고 의문을 품은 이들이 많지만,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세무사 업계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저작권자 ⓒ 조세일보(http://www.joseilb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해진 납세자, 불편한 세무사

2023.05.08

◆…유영조 중부지방세무사회 회장(왼쪽)과 김진현 중부지방국세청장이 이달 초 열린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세청의 모두채움서비스가 과도하게 확대돼 세무사의 업무영역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축소시키고 있다"

지난 3일 유영조 중부지방세무사회 회장이 중부지방국세청과의 종합소득세 관련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모두채움서비스는 말 그대로 세금 신고서를 국세청이 납세자 대신 채워주는 서비스다. 세금 신고는 원래 납세자가 하는 것이지만, 국세청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료가 많기에, 납세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도입됐다. 모두채움서비스를 통해 납세자는 내역을 확인한 후 동의만 하면 간단히 세금 신고를 완료할 수 있다.

세금 신고가 비교적 간편한 단순경비율 적용 대상자를 위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대상자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의 경우 전체 종소세 신고 대상자 1180만 명 중 절반이 넘는 640만명에게 모두채움서비스가 제공된다. 2021년 212만명, 지난해 497만명 등 증가세도 가파르다. 그만큼 세금 신고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납세자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 서운한 세무사들

납세자들은 편해지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무사들의 심기는 불편하다.

유영조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사실 국세청의 모두채움서비스가 과도하게 확대되고 있어 세무 업무영역을 침해하고 축소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라며 "세무사는 국가 재정수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극히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국가재정 수요 등 거창한 표현을 섞어가며 에둘러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국세청이 과도하게 납세자에게 편의를 베풀어 세무사들의 일거리가 줄었다는 것이다. 업계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유 회장으로선 충분히 꺼낼 수 있는 이야기다. 더욱이 유 회장은 내달 열리는 본 회장 선거에도 출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무영역, 일명 '밥그릇' 수호는 회장의 가장 큰 역할이기 때문에, 이런 발언은 회원들의 표를 모으는 데 꽤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납세환경이 편해질수록 세무사들의 위기의식은 커져가고 있다. 또 다른 일례로, 국세청은 올해 국세행정운영방안에서 최근 화두로 떠오른 '챗GPT'를 홈택스에 활용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 쉽고 편리한 홈택스 개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 문구가 세무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난 3월 22일 국세청에서 열린 국세행정개혁위원회에 참석한 원경희 세무사회 회장은 이런 국세청의 챗GPT 홍보문구에 대해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의 필요성을 전부 무시한, 향후에는 없어져야 할 납세협력자로 인식하도록 하는 부정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라며 개선을 강력히 요구했다.

표면상으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 없는'이라는 문구에 대한 불만으로 보이지만, '쉽고 편리한 홈택스 개편'에 대한 세무사 업계의 불안감이 내포된 발언이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 납세서비스가 과도하다?

납세자가 불편할수록 세무사의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모든 전문자격사가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전문가를 찾게 된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에는 글을 읽고 쓸 수만 있어도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특별한 취급을 받을 순 없다. 세무사들이 쉽고 편리한 납세환경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쩜삼' 등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무 플랫폼의 등장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세무사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쉽게 세금을 신고하고 환급까지 받는 현실이 세무사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무사 업계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보단 변화 자체를 막아 현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국세청의 납세서비스 강화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세무사 업계의 모습은 납세자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까지 만든다.

국세청의 납세서비스가 과도하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語不成說)이다. 최대한 세금 내기 쉽고 편한 환경을 조성해 세수를 차질없이 확보하는 게 국세청 본연의 임무다. 세금 신고가 너무 쉬워지면 세무사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적당히 하라는 세무사 업계의 발언은 자칫 국민의 공분을 살 수도 있다.

세무사는 매래에 없어질 직업을 조사할 때마다 매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세무사는 AI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 4위에 올랐다. 아직은 '설마 세무사가 없어지겠어?'라고 의문을 품은 이들이 많지만,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세무사 업계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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