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과세표준 조정에 따른 실질 세부담은 저소득층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되려 고소득자 세금만 깎아주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른바 '부자 감세'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는 모습.(사진 연합뉴스)
'소리 없는 증세.'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는 이렇게 표현된다. 물가가 올라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 명목임금이 올랐다고 더 높은 세율로 세금을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월급쟁이들의 '조세저항'을 의식한 듯, 정부는 중·저소득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을 상향조정하는 식으로 세금 부담을 낮추려고 한다.
그런데 서민·중산층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세제개편안(21일 발표)의 취지와 달리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많고, 되려 벌이가 좋은 고소득 근로자가 '감세' 혜택을 더 누린다는 형평성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불난 데 기름이 부어진 격이다.
사실 세부담을 누가 덜 짊어지느냐를 떠나,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에 비껴 서있는 근로자가 문제다. 소득이 있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 상당수 근로자를 그대로 둔다면 과세제도가 공평하지 않다는 인식이 심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공제감면을 줄이는 방법으로 인위적인 증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근로자 절반은 혜택 0원, '부자 감세'로 불리는 이유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따라 최하위 소득세율(6%)을 적용받는 대상은 '과표 1200만원 이하에서 1400만원 이하'로 오른다. 근로소득자의 대부분이 속한 과표 4600만원 이하 구간은 5000만원(세율 15%)으로, 다음 소득 구간은 5000~8800만원 이하(24%)로 바뀐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저소득층의 세부담을 줄여주는 조치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총급여액이 5000만원이라면 근로소득세는 18만원이 줄고, 총급여가 7800만원일 땐 54만원을 덜 낸다. 총급여가 1억5000만원이라면 세액 감소 폭(24만원)은 상대적으로 작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근로자는 '연말정산'을 거쳐야만 최종 내야 할 세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연말정산 근로소득세 계산의 기준점인 '근로소득금액'을 구하려면 앞서 언급된 총급여(비과세 소득 제외 금액)에서 근로소득공제(모든 근로자에 적용)를 받은 금액부터 빼야 한다. 이 금액을 기준으로 각종 항목을 공제하고, 간이세액표에 따라 뗀 세금(원천징수)과 비교해 소득세를 돌려받거나 더 내는 구조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소득세 납세 대상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근로소득세의 경우 각종 공제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과표구간 조정만으로는 정부가 목적하는 정책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이 근로소득자 대다수에게 적용되는 소득·세액공제(근로소득공제, 인적공제, 연금보험료·보험료·신용카드 공제, 근로소득세액공제)를 적용해 분석한 결과, 근로자의 총급여액이 3000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사실상 세부담 변화는 없다. 이 소득 구간 근로자는 1014만9033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52.3%다. 근로자 수가 453만명에 달하는 ‘3000~5000만원’ 구간의 1인당 월평균 감면 예상액은 1만3713원이다. 8000만원~1억원 구간은 4만5000원(1인 평균)이 줄어 상대적으로 혜택이 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총급여액 3000만원이라면 3만8590원이 줄어들고, 4000~7000만원일 땐 근로소득세를 18만원 덜 낸다. 총급여가 7500만원~1억원까지 오르면 54만원의 세금이 줄고, 근로소득세액공제 한도가 줄어든 1억3000만원 구간에서도 24만원의 세금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소득세 과표 조정은 '생색내기용 정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득세의 경우 물가수준상승에 따른 과세표준의 상향 조정폭이 매우 작고 세율조정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중산·저소득층에 대한 소득세 경감은 매우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세 하위 구간 감세는 자동적으로 상위 구간에 더욱 큰 감세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부자 감세인 셈"이라고 말했다.
1억 벌어도 세금은 0원…'無稅'근로자 725만명
근로소득세는 공평하지 못한 세금으로도 불린다. 근로자 10명 중 4명 가까이는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근로소득에 따른 원천징수로 세금은 매월 자동으로 급여에서 떼지만 연말정산에서 각종 소득·세액 공제로 전부 환급받은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국세청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현재 근로소득세 결정세액(연말정산)이 없는 근로자는 725만5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7.2%에 달한다. 면세근로자 비율은 2013년까지 30%대 초반(32.4%)을 유지해다가 2014년 48.1%까지 치솟았다. 2013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한 소득세법 개정으로 근로자의 세부담이 늘자, 정부가 연말정산 보완 대책을 내놓고 공제 혜택을 대폭 늘려서다. 이후 임금상승 등의 영향을 받아 면세자 비율은 매년 하락세를 보였고, 2020년엔 공제 혜택이 늘며 비율이 소폭 올랐다.
총급여수준을 살펴보면, 1000만원 미만 구간의 면세근로자 수는 307만2187명(42.3%)이다. 면세근로자 10명 중 4명이 한해 1000만원도 못 번다는 소리다. 주로 벌이가 시원치 않은 근로자들이 대다수이나, 개중에는 급여가 1억원을 넘는 근로자도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1억원 초과 구간에서 1344명의 근로자가 과세미달이었다. 8000만원~1억원 이하 구간(1115명)에선 1000명을 넘겼다.
그간 정부도 '면세자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외쳐왔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근로소득 최저한세 신설·근로소득공제 축소 등이 거론되었지만, 정부의 방법론은 '임금상승에 따른 면세근로자가 자연스럽게 감소되도록 지켜봐야 한다'였다. 올해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면세자 축소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으면서, 이 입장은 여전히 변함없다. 전문가들은 세금을 안 내는 근로자가 많다는 점은 과세기반의 축소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윤태화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GDP 대비 소득세 세수비중이 낮은 편인데, 이러한 직접세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면세점 하향조정을 통한 면세자 축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초고소득층에 대한 세율이 높게 되어 있는데,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전반적인 세부담 증가를 가져올 수 있도록 과세구간에 대한 세율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도 "소득이 낮아 면세자 비율이 높은 것 외에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면세자가 적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이를 바로잡기 위한 공제제도 개편 등의 노력이 소득세 과표조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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