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세재졍연구원은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과세당국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납세 순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체납자들 관리에 대한 모형 구축은 지속되어야 한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실행 가능한 '넛지' 방법의 적극적 활용은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했다.(그래픽 연합뉴스)
세금을 거둘 때 과세당국의 경고나 세무조사 압박이 나을까. 아니면 "이미 90% 이상의 국민이 세금을 정상적으로 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편이 나을까. 납세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후자였다.
체납(또는 탈세)에 골머리를 앓은 각국 과세당국이 납세고지서에 도덕적인 호소가 담긴 특정 문구를 넣는 '넛지(nudge)' 전략을 펴고 있다. 넛지란 팔꿈치로 쿡 찌른다는 뜻인데, 경제학에서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한다. 납세고지서에 처벌 관련 문구가 아닌 행동을 변화시키는 유연한 문구를 담았더니 체납 확률이 줄어들었다는 연구사례도 있다. 우리나라 국세청도 이러한 특정한 고지 방법으로 체납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국세청 의뢰로 내놓은 연구용역 보고서(지난해 8월)에서 새로운 체납관리 방안으로 넛지를 제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다운 조세연 부연구위원은 "해외 주요 OECD 국가들은 체납·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납세자들에게 적극적인 행정조치의 일환으로 넛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며 "온라인·모바일 납세 고지가 활성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넛지를 활용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 연구결과를 정책 활용에 참고할 수 있다고 했다.
압박해도 못 거둬…체납세금 얼마나 될까
체납세금 문제는 국세청이 고질적인 골칫거리다. 해마다 수십조원씩 체납이 발생, 국가재정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의 각종 복지 공약을 이행할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체납 문제에 대한 획기적 방안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현재 체납이 발생하게 되면 국세청은 체납자에게 독촉장을 발송하고, 납세자의 납부 의사가 없다면 재산압류(강제징수) 절차를 밟는다. 2004년부터 고액체납자의 성명·주소 등을 공개하는 제재수단도 있지만, 이러한 '망신 요법'을 해봤자 의미가 없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 해마다 체납발생건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체납발생건수(당해연도 기준)는 약 286만건에서 2015년에는 327만건, 2019년엔 373만건으로 훌쩍 뛰었다.
체납발생액도 2010년엔 약 18조원이었는데, 2019년 21조6000억원까지 치솟았다. 매년 10조원 가량 체납액이 이월되면서 총액으로 따지면 규모는 더 크다. 2020년 현재 체납발생 총액은 29조원(28조5208억원)에 육박한다. 보고서는 "여전히 국세 세수 실적 대비 체납비율은 약 8%대이며, 체납발생 총액의 절대적인 규모가 감소하지 않아 체납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체납 발생률은 낮은 편에 속한다. 조세연이 OECD 세무행정 데이터베이스(ISORA)를 분석한 결과 2016~2017년 한국의 체납발생률(체납액을 총수입 또는 조세수입으로 나눈 수치)은 약 7%로, OECD 국가의 평균은 약 34%(조세수입기준)였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188%)·스페인(10~11%)의 체납발생률은 한국보다 높았다. 일본은 약 1.7%로 매우 낮은 수준에 있었다.
'체납 줄이기' 주요국이 실시한 실험은
보고서는 "납세 순응에 사용된 넛지의 방법으로는 크게 억제 넛지와 비억제 넛지가 있다"고 했다. 억제 방법으로는 주로 과세당국의 경고나 세무조사가 대표적 예다. 각국 과세당국은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에 더해, 납세고지서 문구의 변화·납부기한 조정하는 식의 비억제 넛지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 미시건대학교 연구진은 미국 3개주(캔터키, 캔자스, 위스콘신)에서 체납 사실을 안내하는 우편 발송실험 결과보고서를 2018년 내놓은 바 있다. 2014년 명단이 공개된 체납자 3만4334명이 대상으로, 이들의 평균 체납액은 1만3000달러였다. 다른 사람의 체납 규모 등이 담긴 우편을 체납자에게 보내고 납부율 변화를 살펴보는 게 실험 내용이다. 그 결과, 체납액이 큰 구간에선 우편배달 후 납부율의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반면, 체납액이 작은 구간(2273달러)에선 우편배달 후 10주 이내에 미납액을 납부할 확률이 2.1%포인트 높아졌다.
영국 국세청은 통상적인 안내문에 더해 사회적 가치, 공공서비스 이익이 언급된 편지를 체납자에게 보냈다. 400~10만파운드까지의 금액을 체납한 10만1471명이 대상이었다. 편지엔 '10명 중 9명은 기한 내에 세금을 납부합니다(기본문구)', '당신은 지금 기한 내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매우 소수의 사람 중 하나입니다(소수강조)', '세금을 내면 건강보험, 교통, 교육과 같은 공공서비스를 확충할 수 있습니다' 등 내용을 담았다.
실험 결과(2017년), 우편을 받은 체납자가 23일 이내에 납부한 확률은 기본 문구의 우편을 받았을 때 1.3%포인트, 소수 강조 문구를 받은 경우엔 5.1%포인트나 올랐다. 공공서비스 이익이나 손실을 강조한 우편은 납부율을 높이는 변화가 발견되지 않았다. 영국 국세청은 이 조치로 약 12만명의 체납자들로부터 약 490만 파운드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효과를 봤다. 보고서는 "주요 국가들은 적극적인 행정 개입을 통해 체납률을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면 장기적으로 세정 운영을 할 수 있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우리도 안내문에 특정 문구를?…검증 남았다
현재 한국에서 종합소득세나 부가가치세 신고를 안내할 때 체납 관련한 넛지 정책은 적용하진 않는다. 납부고지서에 넛지 문구를 넣었을 때 납세자들의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 우려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도 "신고 기간부터 체납 및 탈세와 관련한 문구를 삽입하거나 안내하는 것이 오히려 세금 회피를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넛지 정책을 적용하려면 효과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보고서가 제안한 건 납부고지서에 특정한 문구 삽입이다. 해외사례에서 효과성을 검증받은 메시지를 넣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10명 중 9명이 납부기한 내 정상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체납이 발생되면, 과세당국은 정도에 따라 체납자들의 정보를 온라인에 고지할 수 있습니다' 등이 예시 문구다. 보고서는 "체납에 따른 제재의 내용, 제재의 종류를 직접적으로 문구에 포함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국세청도 이러한 행동 과학을 징세행정에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행정비용이 크게 소요되지 않은 납세고지서 문구 변화부터다.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징수를 위한 노력으로 압박이 아닌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안내문에 넛지 문구를 삽입하는 것을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체납이력이 있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50%에겐 기존 안내문을, 나머지 절반에 넛지 안내문을 발송해서 검증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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