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우리나라도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에 대한 파격적인 조세지원 정책을 내놨지만, 수탁연구개발에 대한 조세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에서는 수탁연구개발에 대한 조세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지원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장)는 25일 조세일보와 한국세무학회, 한국조세정책학회 공동주최로 조세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연구개발비와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방안' 웹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수탁연구개발에 대한 조세특례를 허용함으로써 수탁연구개발 전문연구사업자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기업의 연구개발은 국가경제의 핵심동력이고 각국은 규제와 조세분야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 연구개발은 자체연구 및 위탁연구 외에도 수탁연구개발이 제대로 수행될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며 "이런 점에서 OECD 37개 국가 중 11개국에서는 수탁연구개발의 경우에도 각종 조세지원을 함으로써 수탁연구산업(CRO, CDO)이 크게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세특례제한법시행령에서 수탁연구개발에 대해서 원천적으로 조세특례를 허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가 연구개발을 통한 최첨단기술에 의한 기업경쟁력을 제고하는데 매우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세특레제한법 시행령 제1조의 2에서 조세특례대상이 되는 연구개발에서 '위탁받아 수행하는 연구활동'은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20일에 제정된 '연구산업진흥법'에서는 수탁연구개발도 연구산업에 포함해 진흥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다른 나라의 현황을 살펴보면 위탁연구개발기업에 대해서만 연구개발비에 대한 조세지원을 하는 국가가 가장 많다. 이에 해당하는 국가는 ▲호주 ▲캐나다 ▲체코 ▲프랑스 ▲그리스 ▲아이슬랜드 ▲이태리 ▲일본 ▲한국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뉴질랜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러시아 ▲슬로바크(수탁자가 공적기관인 경우) ▲슬로베니아 ▲영국(① 중소기업, ②수탁자가 연구기관인 경우의 대기업) ▲미국 등이 있다.

실제로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수탁연구개발기업에 대해서만 조세지원을 하는 국가도 있는데 ▲벨기에 ▲헝가리 ▲네덜란드 ▲루마니아 ▲영국(위탁자가 영국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의 대기업)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일정조건을 갖춘 경우 위탁연구개발기업 혹은 수탁연구개발기업에게 조세지원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국가도 있는데,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슬로바키아(수탁자가 사적기관인 경우) 등이 있다.

위탁연구개발기업과 수탁연구개발기업에게 모두 조세지원을 하는 국가는 ▲덴마크 ▲아이스랜드(연구개발 공동연구) ▲터키 등이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수탁연구개발 조세지원을 원천적으로 배재함으로써 위탁 및 수탁연구개발이 활발한 바이오산업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국내 글로벌 바이오기업들이 전세계의 연구개발을 수탁받아 연구하게 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조세지원제도를 글로벌 기준과 추세에 부합하도록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홍 교수는 조세특레제한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정안 내용에 대해선 ▲모든 수탁연구개발을 조세특례제한법상 연구개발에 포함하는 안 ▲바이오산업 등 수탁연구개발이 활발한 사업을 우선적으로 조세특례를 적용하는 안 등을 제시했다.

 

대기업, 세금 더 많이 내고 연구개발 조세지원 '찔끔'

홍 교수는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장려금과 대기업에 대한 조세특례의 차등을 완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2019년 기준 연구인력개발비용 세액공제 신고현황을 살펴보면 중소기업이 1조2647억원, 대기업이 9658억원으로 총 2조2305억이었다. 중소기업이 일반법인에 비해 세액공제 규모가 더 크며, 제조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설비투자 등 투자세액공제의 경우 제조업이 주로 차지했으며 중소기업이 일반법인에 비해 6배가 많은 673억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았다.?

수입금액이 5000억원을 초과하는 대기업은 법인세 중 63%를 부담하고 있으나, 연구개발비 세액공제는 43%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대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와 관련한 조세지원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홍 교수는 "현대 국제사회는 바이오, 반도체, 인공지능 등 글로벌대기업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며 "해당 분야는 극심한 글로벌경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대기업에 대한 연구개발지원에 중소기업에 비해 차등을 둘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개발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할 필요성 및 논리성이 약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이전까지 고도성장기에서는 연구개발관련 조세특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며 "실제로 2013년 이후 우리나라는 국제경쟁력을 잃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급격히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홍 교수는 근로자에게 근로장려금을 지급하듯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연구개발장려금과 설비투자장려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법인세의 납세의무자 중 49%는 면세자다. 이들에 대한 연구개발 등 각종 추가적인 조세특례는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다"며 "근로자에게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만큼 일정조건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연구개발장려금 및 설비투자장려금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