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고가(高價) 아파트에 사는 등 호화생활을 누리는 전문직 사업자의 모습으로, 다른 한편에선 무려 27억원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며 고액체납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런데 병원 운영으로 돈 벌이가 되는데도 체납액을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병원의 수입금액은 가상자산(비트코인 등)으로 흘러들어갔고, 이렇게 은닉한 금액만 39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국세청 레이더망을 피해가진 못 했다.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재산 은닉행위에 대해 국세청 직원들은 다양한 징수방안(외부기관 자료수집 확대 등)을 고민한 끝에 가상자산의 존재를 알아냈다. 국세청은 A씨가 보유한 가상자산을 압류하자, 전액 현금납부하며 백기 투항했다.

◆…병원 사업소득을 가상자산으로 은닉한 고소득 전문직 사례(자료 국세청)

국세청은 A씨와 같이 가상자산으로 재산을 은닉한 고액체납자 2416명에 대해 약 366억원을 현금징수하거나 채권확보를 했다고 15일 밝혔다. 체납자들이 가상자산에 숨긴 재산을 정부부처 최초로 강제징수한 사례다.

김대지 국세청장은 앞서 올해 신년사에서 "고도화된 빅데이터 분석 등 체납징수 기반을 적극 활용해서 악의적 고액체납자에 대한 추적·징수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A씨 사례와 유사하게 재산상 이익이 발생하고도 세금을 회피하려 가상자산으로 숨긴 이들도 많았다.

B씨는 경기도 소재 부동산을 48억원에 팔았다. 양도차익에 따른 세금은 12억원이었는데, 이를 납부하지 않고 모조리 가상자산으로 은닉했다. C씨도 아버지의 사망으로 금융재산 17억원을 상속받은 이후, 상속세 2억원을 납부하지 않았다. 가상자산으로 숨긴 상속재산은 5억원에 달했다. 국세청은 B·C씨가 보유한 가상자산을 압류해서 현금징수하거나 채권을 확보한 상태다.

◆…정철우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15일 세종시 국세청사에서 고액체납자의 은닉재산 징수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 국세청)

가상자산의 강제징수 결정은 대법원의 판결을 잣대로 삼고 있다. 2018년 5월 대법원에선 가상자산을 몰수의 대상인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재산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강제징수 대상인 체납자들 중에서 222명은 다른 재산은닉 등 추가적인 강제징수 회피 혐의가 확인되어 추적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상태다.

국세청 관계자는 "성실 납세자가 존경받고 조세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액체납자의 은닉재산을 알고 계신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고액·상습체납자의 은닉재산을 신고했을 땐 포상금이 지급된다. 징수금액에 따라 5~20%의 지급률을 적용받아 최대 20억원까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