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소득을 국가가 필요에 의해서 가져가는 것이 '세금'인 만큼 그 무엇보다도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

그래서 세금을 논할 때는 공평과세,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 등의 용어가 등장한다.

세법 자체가 불공정, 불공평하다면 법을 집행하는 국세청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국세청의 모든 과세는 법에 근거해야 하고, 세법의 제·개정을 담당하는 부서가 기획재정부(정부안)와 국회다. 이들 기관이 국민의 여론을 듣고 세법을 처음부터 공정하고 공평하게 설계해야만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기재부나 국회 모두 상속세 제도의 불공평성 등 깊이있는 고민보다는 '부자증세 vs 부자감세', '보수 vs 진보' 라는 구도로 싸움이 전개되면서 정치적으로 휘둘리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2월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조세일보 사옥 회의실에서 '상속세,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열린 전문가 좌담회에 패널로 참석한 최영록 前세제실장, 백운찬 前세제실장, 김용민 前세제실장,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사진 왼쪽부터). 당시 김 전 실장은 "상속세는 이중과세 성격이 강해 최고세율을 40% 수준까지 내려야 한다"고 밝혔으며 최 전 실장은 "세율 인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 박사는 "상속금액이 커질 수록 도망갈 곳이 없어 세제개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상속세 제도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최고세율 50%'다. 소득세 최고세율(42%·내년부터는 45%)과 비교해서도 과도하게 높은 세율 때문에 상속세 최고세율을 소득세 최고세율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상속세제가 소득과세에 대한 '보완장치'라는 점에서 소득세보다 높다는 것은 과도한 세 부담을 떠안겨준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2월14일 조세일보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세제실장을 역임한 전문가 3명을 초청해 가진 '상속세 개편방안 좌담회'에서 백운찬 전 세제실장(삼정 KPMG 고문)은 "현직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상속세 최고세율이 소득세 최고세율보다 높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조세원칙에 맞다. 상속세 문제로 기업경영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마이너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더불어 이미 소득세로 세금을 납부한 재산에 대해 상속을 한다는 이유로 또 다시 과도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있어왔다. 아버지가 이미 소득세를 냈는데 자녀가 같은 재산에 상속세를 부담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런 주장에 대해 상속세율 인하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상속재산은 불로소득인데다 각종 공제가 많아 소득세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소득세 과세체계는 현재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는 세율 6%, 1200만~4600만원 이하·15%, 4600만~8800만원 이하·24%, 8800만~1억5000만원 이하 35%, 1억5000만~3억원 이하·38%, 3억~5억원 이하·40%, 5억원 초과·42%다.

세법개정으로 인해 내년부터는 과세표준 10억원 초과·세율 45% 구간이 신설된다.   

상속세는 과세표준 1억원 이하·10%, 5억원 이하·20%, 10억원 이하·30%, 30억원 이하·40%, 30억원 초과·50%다. 상속세는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과세라는 것이 더해져 최대 60%까지 세율이 상승한다.

세율만 보면 상속세가 높지만, 과세표준으로 보면 소득세가 더 타이트하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세 부담이 과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도, 소득세보다 상속세 부담이 크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과세대상의 성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세는 근로·사업·양도·기타소득이든 발생한 수입에 대해 일정부분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기 때문에 재원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상속세는 가족이 사망해 받는 것으로 그 자산이 현금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대개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자산이다.

상속재산을 처분해 상속세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라면 할증과세까지 더해져 경영권을 포기해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가족이 사망해 슬픔에 잠긴 것도 모자라 고인이 남긴 재산 혹은 평생을 쏟아부은 기업을 넘기면서까지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현실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에 더해 상속세 간 불공평도 발생한다. 부동산의 경우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표준을 산출해 세율을 적용한다. 7억원의 집이 있다면 현재 공시가격은 시세의 70% 정도이기 때문에 4억9000만원이 과세표준이 된다. 세율이 30%에서 20%로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은 고인의 사망일 전후 2개월의 최종시세가액 평균으로 계산하는데,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 부담은 커지게 된다. 한진그룹의 경우 조양호 회장이 사망한 지난해 4월 이후 한진칼의 주가가 두 달만에 80% 급등해 유족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가 대폭 늘어난 전례가 있다.

여기에 최대주주라면 할증평가 20%가 추가된다. 여러모로 주식을 상속받은 유가족은 부동산을 상속받는 유가족에 비해 억울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상속세 간의 불균형을 먼저 맞추고 타 세목과의 불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상속세 논란은 10조원이라는 삼성의 막대한 상속세 때문에 촉발되기는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속세제에 대한 문제점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기업이나 전문가들은 상속세의 과세체계 개선 등 과세제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정치권은 '있는 자 vs 없는 자'의 구도로만 논의됐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진단과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상속세는 기본적으로 급격한 경제성장 시기에 불법·편법수단으로 부를 축적해 제대로 내지 않은 세금을 상속할 때 정부가 회수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제도였지만, 이 때문에 정직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 제도가 됐다. 상속세 최고구간의 경우, 천문학적인 세율이 적용되다 보니 상속세법대로 세금을 내면 '바보' 취급을 받게 되는 풍조가 생겼다. 따라서 너도 나도 편법과 탈세로 상속세의 과중한 부담을 피해갔다. 그래서 법대로 상속세를 내는 납세자 수와 세수가 얼마 되지 않은 이른바 '바보세'가 된 것이다.  

이제는 주민등록시스템, 금융시스템, 부동산시스템, 국세통합시스템 등의 전산화·고도화로 탈세가 거의 불가능한, 과거와 비교할 때 '천지개벽'의 투명한 상황이 된 만큼 상속세 체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 조세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속받는 사람이 몇명인지 관계없이 상속재산 총액에 대해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현행 유산세 과세 방식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상속받는 사람의 몫별로 상속세액을 메기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OECD 회원국 중 상속세를 부과하고 있는 21개국 중 유산취득세 방식을 운용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16개국이며 유산세 체계를 택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 영국, 헝가리, 터키 등 5개국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속받은 재산을 처분할 때 이익을 실현하는 것으로 보고 과세하는 것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자본이득세는 현재 미흡한 수준이기 때문에 소득세 과세체계에서 자본이득에 대한 누락분이 발생하지 않도록 과세체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고경희 한국여성세무사회장(세무사)은 "장기적으로는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가야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렵기 때문에 일단은 세율을 낮춰야 한다"며 "세율은 30% 정도로 낮추는 것이 적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