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소관 상임위 안건들을 처리하기 위한 전체회의를 열었으나 세무사법 개정안은 향후 재논의(계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사진)

#. 변호사의 욕심이 하늘을 찌릅니다. 변호사가 세무사법을 개정하여 회계업무를 하겠다는 것을 막아주세요 -  한국세무사회가 11월 16일 진행한 일간지 광고 문구.

#. 세무사의 반 헌법적인 발상과 이기심이 하늘을 찌릅니다. 세무사가 위헌적인 입법으로 세무대리를 독점하겠다는 것을 반드시 막아주세요 – 대한변호사협회가 11월 17일 진행한 일간지 광고 문구.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세무사법이 기한(2019년 12월말) 내 처리되지 않으면서 사상 초유의 '입법공백'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세무사 자격이 있는 변호사들의 세무대리 업무 범위를 정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에 국회 심의를 앞두고, 양 자격사 단체가 맞불을 두며 국회 밖에서 신경전을 펼쳤다.

이런 가운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위원장 :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지난달 30일 해당 상임위 법안 심사를 위한 전체회의를 열었으나 세무사법 개정안은 향후 재논의(계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12월 정기국회 종료(9일)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비 쟁점법안으로 취급되는 세무사법만을 놓고 원 포인트 심의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많아 사실상 연내통과는 어려울 전망이다.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벽에 부딪히면서 사상 초유의 '입법공백'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지난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에 의견이 엇갈리며 끝내 본회의 문턱을 밟지 못한 세무사법은 제21대 국회에서도 공수처법, 코로나19 정국 등에 밀려 비 쟁점법안으로 취급되면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변호사들에게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해주는데도 논란이 되는 부분은 세무사 업무의 핵심인 회계장부작성(이하 기장)과 성실신고확인에 제한을 두기 때문이다.

한국세무사회는 기장과 성실신고확인 만큼은 절대로 허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는 헌재의 판결 취지대로 업무영역에 제한을 두어선 안 된다는 입장으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세무사법 개정안은 총 3가지.

가장 먼저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무사 자격이 있는 변호사는 3개월 이상의 실무교육을 이수한 후 세무대리 업무(기장·성실신고확인 업무제외)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반면,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세무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에게 모든 세무대리 업무 수행을 허용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세무업무와 관련된 실무교육을 받지 않고도 제한 없이 모든 세무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판사 출신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세무사 자격을 보유한 변호사들이 실무교육을 이수하면 모든 세무대리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러한 3가지 법안을 놓고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위원장 :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지난달 24일 법안 심사에 들어갔지만, 여야 의원들에 의견이 엇갈리면서 재논의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날 열린 조세소위원회 속기록에 따르면,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무사법 개정안에 대해) 세무사회는 세무사회 나름대로 또 변호사협회는 변호사협회 나름대로 (주장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기 의원은 "(세무사법이 폐기된 이후) 1년 만에 특별한 상황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제20대 국회에서 결정했던 방식을 지지 하는 입장"이라며 "향후 위헌 소지라든지 이런 부분은 당사자가 있어 피해갈 수 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가면서 조금 더 성숙된 합의들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장부작성 업무가 세무사로서의 본질이고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지의 판단에 따라 (다시 한 번) 위헌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위헌 가능성이 있다면 (국회에서) 해소하고 가야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고 밝혔다.

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영역을 국회에서 결정한다 하더라도 헌재가 판시한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면 또 다시 위헌 논쟁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게 박 의원의 지적이다.

양 자격사 단체의 의견차가 첨예 한데다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에 의견이 엇갈리며 개정안 처리를 위한 접점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하더라도 변호사 출신들이 포진한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어야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 시점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세무사법 두고 '평행선'…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세무사법 개정안과 관련해 대한변협은 헌법재판소에 결정 취지를 존중해 모든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세무사회는 회계전문성이 없는 변호사에게 기장과 성실신고확인 업무만큼은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세무업계는 헌재의 판결이 세무대리 업무를 일체 할 수 없도록 전면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며 회계 지식이 필요한 기장업무를 제외하는 것이 문제없다는 입장인 반면, 변호사업계는 핵심 업무를 제한하기 때문에 헌재결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한변협 측은 세무대리업무의 핵심이 되는 업무가 제한되기 때문에 양경숙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헌재의 결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변협은 "세무사의 기득권 보호로 점철된 위헌적인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는다면 국민들의 다양한 선택권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각종 위헌 소송으로 커다란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낭비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같은 비용이라면 변호사와 세무사 중 누구에게 세무대리를 의뢰할지 국민에게 물어봐야한다"면서 "국민들이 납세 서비스를 받기위한 선택의 폭을 넓혀야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세무사회는 세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변호사들이 세무대리 업무를 수행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헌재 판결은 세무사 자격이 있는 변호사들에게 업무를 허용하라는 것이지 전문성이 요구되는 모든 업무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세무사회 관계자는 "세무사의 세무전문성을 고려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대로 세무사법개정안을 상임위에서 의결해 본회의에 상정시켜 하루빨리 법을 통과시켜야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8년 4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세무사법이 효력을 상실한 후, 지난 20대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세무사 자격 보유자의 경우 임시번호를 부여받아 세무사 등록을 진행하고 있는 법적 불안정성이 계속되고 있다. 

세무사법 개정안 처리가 계속해서 지연된다면 세무대리 활동에 근간이 되는 등록규정이 무력화되고 세무대리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납세자까지 선의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장(인천대 경영학부 교수)은 "국세기본법에 모든 납세자는 세금 신고 시 세무대리인으로부터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입법공백이 길어져 법적 불안전성을 방치하는 것은 납세자 권익의 상당한 침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국회는 조속히 관련법을 개정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