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시동건 조세심판원 = 심판원은 그동안 극심한 내우외환을 겪었다. 아직도 그 여진이 남아있고 외부의 의심섞인 시선들이 잔뜩이지만 심판원은 자체적인 개혁 정책 추진을 통한 '정면돌파'를 택했다. 사진은 조세심판원 인터넷 홈페이지(www.tt.go.kr)

국무총리 조세심판원(원장 안택순)이 개혁을 천명하고 나섰다.

의도했든 안했든 그동안 감추어 왔던 심판행정의 '민낯'까지 스스로 드러내며 개혁다운 개혁을 하겠다는 각오다. 수 개월에 걸쳐 심판원 안팎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사건사고들이 '무결점'으로 마무리되면서 개혁 추진의 '최적기'가 됐다는 판단 아래 드라이브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은 성공을 예단할 수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심판원에 쏟아졌던 이런 저런 비판의 목소리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개혁은 성공이란 열매를 반드시 따내야 한다.

심판원을 둘러싼 '오해 덩어리'들

◆…'발전' 더딘 납세자권리구제 기능 = 심판원은 23일 개혁안을 발표하며 "세제운영의 3대축 중 납세자권리구제의 발전은 조세행정 및 징세행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체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더딘 발전, 개혁의 '명분'이다.

심판원의 심판행정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전문성 시비는 물론, '비리개입'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제기될 정도로 심판행정이 불투명하다는 오해가 쌓여 왔다.

문제의 근원은 분명 심판원 내부에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심판원의 잘못만 탓하기는 힘든 구석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의 근원을 다 알면서도 해소하지 않고 그대로 '고인 물'로 놓아 둔 외부적 요인들도 많기 때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조직도 그대로, 사람도 그대로, 체계도 그대로 이다보니 뒤쳐지는 것은 당연지사. 세무대리 시장 참여자들 또한 이러한 상황에 최적화된 대응력을 갖추면서 자의반 타의반 오해의 크기만 커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워낙 오랜 시간 쌓여왔기 때문에 좀처럼 사라지지 않겠지만 과거의 틀을 깨고 오해의 시각을 조금이나마 줄여나가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심판원 개혁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심판청구사건 1건당 평균 심리시간 '8분'... 충격적 민낯

◆…해 거듭할 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심판청구 = 조세심판원에 제기되고 있는 심판청구건은 햄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내국세 및 관세, 지방세를 포함해 총 9083건이 청구(청구세액 6조6115억원), 10년 전인 2008년 대비 73%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청구세액 기준 218% 증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던 심판원의 '민낯'을 심판원 스스로 공개한 점은 신선하면서도 (그 실태는)충격적이다. '평균치'이지만 심판사건 1건당 평균 심리시간이 달랑 '8분'에 불과하고 전체 처리사건의 92%가 심판관회의 1회로 종결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 정도다.

이 판국에 전문성 시비 등 심판원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세간의 오해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노릇이다.

2018년 기준 9000건을 상회하는 과중한 심판청구건(업무량)을 100여명에 불과한(행정지원 인력 등을 제외한 실제 심판사건담당 인력은 더 적다) 인력으로 소화하려다보니 불가피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납세자권리구제기관'이라는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1년 이상 '장기미결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는?

◆…줄어들 기색 보이지 않는 조세심판 사건 1건당 평균 처리일수 = 지난 2014년 이후 감소세를 보였던 조세심판 평균 처리일수는 2017년 157일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다시 173일로 올라섰다. 국세기본법이 정하고 있는 법정처리기한은 90일.

법정처리기한(90일)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고질적 문제라 넘어간다 하더라도, 과도한 '장기미결사건'을 양산해 왔다는 것도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

재계와 세무대리 업계 안팎에서 이야기 하는 심판원의 '장기미결사건' 양산 이유는, 세액이 크고 쟁점이 복잡할 경우 심판원 자체적으로 인용 또는 기각 여부를 결정하는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간만 잔뜩 끌다가 기각 결정을 내린 후 '법원의 판단을 따르라'는 식으로 밀어내 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액'을 보지 말고 '쟁점'만 보고 법리적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심판원의 역할이지만, 그렇지 못하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납세자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많았다. 

심판원 "문제있는 부분 다 뜯어고치겠다" 

◆…일감은 폭증했는데 인력은 제자리만 맴도는... = 현재 조세심판원(2019년 7월20일 기준)은 117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최근 부분적으로 인력이 늘긴 했지만, 폭증하는 업무량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 심판원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인력확충'이라는데 전문가들은 동의하고 있다.

심판원은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을 다 뜯어고치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납세자의 자기주장 기회를 보다 확대하고, 장기미결사건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내부절차를 보다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심판관 회의 개최 사실을 납세자에게 사전 통보해 충분한 준비가 가능하도록 지원하며 그동안 '비밀의 영역'에 있었던 사건진행상황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등 심판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납세자 권리행사의 편리성을 향상한다는 계획이다.

심판원을 둘러싼 문제들을 파생시킨 근원 중 하나인 '인력' 부분도 변화를 추구한다는 방침.

현재 심판원 상임심판관 1인당 연간 처리건수는 지난해 기준 2546건에 달한다. 월 20일, 연 240일 풀근무를 한다고 가정하면 하루 10건 이상을 처리해야 하는 셈.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된 심판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측면이 크다. 상임심판관은 물론 사건조사 실무인력을 충분히 공급하고 납세자권리구제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러 측면을 심판원이 안고 있던 문제들을 해소하고 개혁 다운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은 '인력확충'이다. 우수한 인력들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납세자권리구제를 위해 매진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 이러쿵 저러쿵 뒷말을 만들지 않는 심판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곧 심판원 개혁의 궁극적 지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