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 창업주들이 죽기 전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주기 꺼려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상속세 때문이다. 

장수기업을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가업승계 세제지원(가업상속공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세금공제를 허용하는 잣대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는 바람에, 활용도가 낮아 '빈껍데기 제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가업승계를 원하는 중소·중견기업 오너일가의 부담이 다소 덜어질 조짐이다.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손질하려는 전향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그간 공제금액 한도를 정하는 경영 기간을 확대한다거나, 상속세에서 제외되는 재산에 자본이득이 발생했을 때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등 '부의 무상이전'을 최대한 틀어막는 규제적 성격이 너무 강한 제도의 틀을 바꿔 기업인의 기(氣)를 살리는데 무게를 싣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가업상속공제의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사청문회(2018년 12월) 당시 밝혔던 정책기조다.

홍 부총리 취임 이후 내부 검토 작업이 시작됐는데 홍 부총리가 지난달 30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가업상속 요건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엄격하다"는 발언하면서 더욱 속도감 있게 개편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가업을 상속하는 경우 상속재산가액의 100%를 가업경영 기간에 따라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가액에서 공제해주고 있다. 연 매출액 3000억원을 넘지 않은 중소·중견기업이 적용대상이다.

피상속인이 최소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중견기업을 상속해야만 공제 요건이 갖추어진다.

대단한 특혜인 것은 분명하나 이 제도를 실제로 활용하는 기업 수는 극히 드문 형편.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가업상속공제를 신청한 기업인은 75명(건)에 불과했다. 이들의 공제금액은 1896억6700만원으로, 이 금액을 제외하곤 나머지 상속재산에 대해선 과세이루어졌다. 같은 공제 항목으로 과세 미달자는 16명이며, 공제금액은 329억31000만원이었다.

공제를 받으려면 10년 간 각종 요건을 지켜야 한다.

가업의 업종을 바꾸면 안 되고 정규직 고용 유지,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해서도 안 된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17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를 보며 기업의 현실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기업인들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피상속인의 10년 이상 계속 경영(46.2%)', '사후의무이행요건 기간 10년 유지(32.6%)' 등을 꼽았다.

정부도 이 부분을 손질하려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동일 업종을 10년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도 너무 탄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100년 이상 장수기업이 1만73개(일본 3만3069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경우엔, 5년만 경영해도 85%(100% 7년)를 공제해준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대사회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가업을 물려받으면 10년 이상 업종 변경을 하지 못하도록 묶어놓는 것은 탄력적으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의 개편 방향은 상속공제의 사후 요건(동일 업종 유지 등)을 완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령 밀가루 재분업을 물려받은 이후, 밀가루가 아닌 빵을 만들어 팔더라도 가업을 유지한 것으로 인정하는 식이다. 전혀 동떨어진 업종이 아닌 유사업종이라면 가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업종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진 않는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동일업종 유지하는 부분을 아무나, 다 풀어줄 수는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한 실무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종범위를 넓히려는 부분이 사실상 확정된 만큼 이와 맞물려 가업상속공제금액 인상이 진척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국회에는 가업상속공제 한도금액을 현향 30년 이상 경영한 경우 5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세법개정안(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안)이 제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