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장미 한국세무사고시회장.

국세청은 제56회 세무사 자격시험 최소 합격인원을 지난해 630명보다 70명(11%) 늘어난 700명으로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지난 2008년 최소 합격인원을 700명에서 630명으로 축소한 이후 11년 동안 유지해오다가 다시 늘린 것이다.

이에 세무업계는 세무사 최소 합격인원을 700명으로 늘리는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주요 과세기반인 20세 이상 경제활동인구와 기업체의 증가가 수년간 정체상태인 점을 비롯해 최근 국세청이 납세자가 직접 신고·납부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세무대리 시장을 크게 잠식해온 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한 세무사사무실의 경영악화 등이 근거가 된다. 

세무대리인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국세청의 이해 불가한 입장

국세청은 지난 11년 동안 세금 신고인원 증가율이 세무사 증원 증가율보다 두 배 이상 높은데다, 과세표준 양성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하다 보니 세무대리인의 수요가 증가해 합격자 수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전반적인 사회의 경제규모가 확대되었고 타 자격사의 선발인원도 확대 선발하는 추세인 점, 여기에 현 정부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청년실업문제도 세무사 선발인원 증원의 이유가 됐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세청의 주장대로 세무대리인의 수요의 증가에 따른 명분이라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세무사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8000명 수준이던 등록 세무사는 지난해 기준 1만3000명으로 60% 증가했다.

납세인원 증가율(2008년~2017년 35%)보다 세무사 증가율(2008년~2017년 60%)이 2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아울러 국세청이 홈택스 등 전산시스템을 통해 세무대리인의 도움 없이도 세금 신고 등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지속적으로 보급, 세무사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현실도 간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적 결정이라는 명분도 약하다는 지적이다.

세무대리 시장이 포화상태인 이유로, 자격을 취득해도 개업을 하지 못하는 세무사들이 많아 선발인원 증원이 곧 청년들의 고용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앞서 제시한 최저임금의 인상 및 주 52시간의 근로 등 개업세무사들의 환경악화로 직원 수를 줄여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의 청년실업문제 해소라는 명분 역시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회계사의 수요확대, 몸값상승과 이에 따른 합격자증원과는 다른 측면

세무업계의 이러한 상황과 달리 그간 과중한 업무에 비해 수임료가 낮아 가치가 떨어졌던 회계사들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 신외감법(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업들의 회계감사 의무가 강화돼 더 많은 회계사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외부감사 대상 기업 수가 기존 2만8900개에서 3만3100개로 4200개(15%) 증가하고, 이전까진 회계감사를 받지 않았던 구글·페이스북·루이뷔통 등 글로벌기업의 한국 법인들도 대상에 포함됐다.

현재 회계사 공급 규모는 회계법인들의 수요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 삼정·안진·한영·삼일 등 이른바 '빅4' 회계법인의 채용 계획은 1300명으로 신규 배출 예정인 회계사 수(850여명)보다 53%나 많은 상황에서 회계사합격자 증원 발표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세무사업계의 현실을 반추해보면 다소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새로 개정된 외감법에 따라 회계사의 수요가 증가되고 과거 "자본주의의 파수꾼"의 지위를 회복하고자 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세무업계의 골치 아픈 현실을 반추해보면 다소 씁쓸한 마음도 든다.

더욱이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후보들의 선거전을 살펴보면 세 후보 모두 '직역 수호' 를 앞세우고 있다. 변호사 업계에선 세무사, 변리사 등 유사 직역들이 활동 영역을 심각하게 잠식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른 변호사의 세무업무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에 우리 세무업계는 이미 결정되어버린 세무사수 증원에 더 이상 한탄만 하지 말고, 변호사 등의 타 자격사로부터의 업역 수호가 우선이다. 주요 현안인 조세소송대리권 등의 대어를 노리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세무사의 업무를 좀 먹는 불법행위 등을 차단하는 등 새로운 영역의 직역확보 등을 통해 회원들의 찰진 밥그릇을 좀 더 챙겨주는 것이 현실을 슬기롭게 타파할 수 있는 최고의 방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에 한국세무사고시회는 "회원과 하나 되어 실천하는 고시회"라는 모토에 걸맞게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아나가는 한편, '건상유족(褰裳濡足)'의 마음가짐으로 회원들의 권익향상과 위상제고에 매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