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 그룹의 복지재단이나 미술재단 쪽에서 일 해보도록 해라"

재벌가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대사다. 집안은 별 볼일 없지만(?) 능력을 갖춘 며느리는 이를 통해 콧대 높은 시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전환점을 얻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을 쟁취한다(혹은 탐욕에 함몰되어 추락하거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재벌그룹의 복지재단이나 미술재단 등은 재벌가 사모님들의 우아한 '경영시험대'이지만 현실에서는 공공연한 '탈세창구'로 악용되는 케이스가 더 많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대기업 계열의 모 문화재단은 계열사 주식을 규정을 넘어 취득하고 계열사로부터 받은 미술품을 무상설치하다가 적발되어 증여세 150억원을 추징당하는 등 국세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에 대해 전수검증을 벌여 36건의 세금탈루 사례를 적발, 증여세 410억원을 추징했다.

공익법인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하는 대신 세법상 혜택도 많은 편이지만 상당수 대기업들은 이를 사주일가의 탈세창구나 그룹 지배권 강화 등에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공익법인, 대체 뭐길래…어떻게 탈세하나?

공익법인은 '사회복지, 종교, 교육, 장학, 의료 등 사회일반의 이익을 목적으로 민법 또는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을 말한다.

공익법인에 대한 가장 큰 혜택은 단연 상속세와 증여세 면제다. 공익법인이 공익사업에 사용할 목적으로 출연받은 재산은 상증세가 면제된다. 상속·증여세율이 최대 50%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혜택이다.

만약 주식으로 출연을 받았다면 계열사 내 기업의 주식보유 비율이 5% 미만이어야 하고 그 이상 출연받을 경우 증여세를 내야한다. 이는 총수일가가 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

예를 들어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공익법인이 계열사 내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상증세를 내지 않아도 그룹 내 사주일가의 지배권이 강화된다. 어마어마한 자산을 가진 재벌들 입장에선 세금을 아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주식보유비율이 5% 미만에서 10% 미만으로 완화되고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 또한 일반공익법인은 총 자산가액의 30~50%인데 반해 성실공익법인은 아예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성실공익법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운용소득의 80% 이상을 무조건 공익목적 사업에 사용해야 하고 출연자 및 특수관계인이 이사 현원의 5분의 1을 초과하면 안 되며 특수관계인 간 자기내부거래를 하지 않는 등 8개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주로 위반하는 사례는 주식보유한도를 위반하거나 특수관계인을 고용해 급여와 복리후생비를 과다하게 지급하거나 계열사로부터 현금과 미술품 등의 자산을 출연받아 공익목적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A문화재단은 특수관계인을 5분의 1이상 이사로 선임해 성실공익법인에서 제외됐음에도 대기업 계열 회사 주식을 5% 넘게 취득해 증여세 200억원을 추징당했다.

B문화재단은 미술관이나 아트홀을 운영하며 계열사로부터 현금을 출연받아 기념관을 건립하는 등 공익목적에 사용하는 것으로 가장해 창업주의 생가 주변토지를 취득해 증여세를 탈루해 증여세 30억원을 추징당했다.

C학교법인은 특수관계인이 이사 수의 5분의 1을 초과한다는 조항을 위반하고 계열사 임원이 퇴직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등기이사로 선임해 급여와 복리후생비를 부당하게 지급해 직·간접적으로 지급한 금액에 대해 증여세 20억원 폭탄을 맞았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외면한 공익법인…국세청 칼끝 어디를 향하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들이 사회적으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뜻으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그들은 크든 작든 일탈행위를 한다면 일반인보다 더 많은 지탄을 받게 된다.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실제 이를 악용해 일탈행위를 저지르는 사례도 많은데다가 계열 공익법인들이 보유한 자산이 전체 공익법인이 보유한 자산보다 평균 6배가 높게 나타나는 등 공익사업과는 무관한 목적을 위한 자산 보유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8월 발표한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현황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대기업(57개) 소속 165개 공익법인의 평균 자산규모는 1229억원이었다. 이 중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28개)의 공익법인만 따졌을 경우 평균 자산규모는 1649억원이었다.

대기업 계열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공익법인의 평균 자산이 261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의 평균 자산이 무려 6배 이상 높았다.

공익법인의 자산규모가 가장 큰 대기업은 삼성이었다.

삼성은 14개의 공익법인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5조1838억원이었다. 현대중공업은 11개의 공익법인을 가지고 있었으며 총 자산은 3조6140억원, 포스코는 공익법인 수 7개에 총 자산규모는 2조8893억원이었다. 이들을 비롯해 공익법인이 1조원 넘는 자산을 가진 대기업은 한진, 두산, 현대자동차 등 총 6개 기업이었다.

보고서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들은 낮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계열회사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자산에서 계열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며 "매각할 경우 차익이 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보유만 하고 있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수단으로 공익법인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공익법인을 공익사업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미 정부는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11월 공익법인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6개 지방국세청에 '공익법인 전담팀'을 신설해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에 대해 전수검증에 나섰고 이를 통해 얻게 된 자료를 토대로 정기 세무조사 기준을 따로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정기 세무조사(법인)는 업종별로 일정한 수입금액 이상인 사업체에 대해 5년마다 주기적으로 조사를 하고 있지만 공익법인들의 수입금액이 적다보니 조사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국세청은 수입금액 기준으로 하는 조사대상 선정 방식 대신 공익법인에 대해선 계열사 주식보유비율 등을 기준으로 조사대상 선정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방향을 설정해놓고 세부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이 어떤 내용의 기준을 마련할 지 여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 다만 수입금액에 관계없이 3년 또는 5년 정도의 주기적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수준의 관리방안만 가지고도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들의 일탈 유인을 상당부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조세전문가는 "공익법인들의 수익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업종별 수입금액 기준으로 하는 정기 세무조사 선정 기준을 똑같이 적용한다면 감시의 눈을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며 "공익법인에 맞는 기준을 마련한다면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