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5월18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회계개혁의 의의와 성공을 위한 과제 '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공인회계사들과 간담회를 실시했다.

"(공인회계사가)40인 이상 (소속된)회계법인만 상장법인을 감사할 수 있게 하면 지방회계법인은 아예 상장사 외부감사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민주평화당 장병완 의원이 한 말이다.

소속 공인회계사 40인 이상인 회계법인만 상장사 외부감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개정 외부감사법(이하 외감법)이 내달부터 시행되면 중소·지방회계법인은 설 땅이 전혀 없게 된다는 것이 장 의원의 지적이다.

정부가 개정 외감법에 이 같은 '상장사 감사인 등록 요건'을 포함한 가장 큰 이유는 '감사품질' 제고다. 일정한 숫자(40인)의 회계사를 보유하지 않은 중소회계법인은 감사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확정해 놓고 만든 규정이란 이야기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30일 기준 40인 기준을 충족하는 회계법인은 전체 회계법인 186개 중 34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152개(88%) 회계법인은 개정 외감법 시행과 함께 상장사 감사를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40인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중소회계법인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기존 규정을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국감장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회계개혁 3법이 통과됐는데 감사 품질 확보가 기본 취지 중 하나"라며 "품질 관리 전문가를 두기 위해서라도 회계사 규모가 일정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희 생각이고 업계 공통 의견"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방 소재 중소회계법인과도 여러 차례 간담회를 했다"며 "감사 품질을 확보하면서 그쪽 어려움도 해소할 방안을 협의해나가고, 40인 기준을 유지하면서 다른 방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계속 상의해보겠다"고 밝혔다.

사고는 대형회계법인이 쳤는데, 개혁 대상은 중소회계법인?

중소회계법인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부분은 이번 외감법 개정의 배경이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회계법인의 부실감사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불구, 정작 개혁으로 인한 불이익은 중소회계법인이 뒤집어 쓰게 생겼기 때문이다. 

사고는 대형회계법인이 쳤는데, 왜 중소회계법인 말살 정책을 쓰냐는 것이 그들의 목소리인 것.

남기권 중소회계법인협의회 회장은 "세월호 참사는 해양경찰청, 계엄사건은 기무사령부, 재판거래사건은 법원행정처가 개혁대상인데 부실감사 사건의 개혁대상인 대형회계법인에는 아무런 개혁조치가 없고 중소회계법인에 대한 말살 조치만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등록 기준에 미치지 못한 152개 회계법인은 2류 또는 저급회계법인으로 평가되어, 감사업무 뿐 아니라 세무 등 컨설팅 업무에서도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회계시장에서 중소·지방회계법인의 경제적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방분권시대를 추진하는 정부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중소회계법인들은 이번 외감법 개정이 대형회계법인에 대한 개혁은커녕, '대형회계법인 일감몰아주기 정책'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상장법인 감사인 등록제는 물론 주기적 감사인 지정 대상을 연간 220개로 분산한 정책도 대형회계법인에게 우선적으로 유리하게 배정될 소지가 있고, 대형회계법인을 위한 최상위 집단 '가군'을 신설한 점, 등록법인에 감사인 점수의 3%를 가산해 이중으로 우대하는 점 등도 대형회계법인 우대정책이라고 말한다.

이에 중소회계법인들은 감사품질은 감사현장에서 대부분 결정되고 현장감사인의 능력, 투입시간, 집중도 등이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감사현장에 감사경력이 많은 고급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장감사에서 실무 경력이 많은 우수한 회계사를 우대해야 함에도 점수평가에서 홀대하는 등 현장감사 인력 고급화 대책이 부실하다는 것이 중소회계법인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민간기업인 회계법인에 자금관리방법, 회계관리방법, 인사관리방법, 내부통제방법, 이사 성과평가방법, 품질관리자 연봉규정 등을 정해 놓은 것도 과도한 규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중소회계법인협의회와 조세일보 상생협력넷 주최로 열린 '회계법인 분할·합병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남기권 중소회계법인협의회 회장.

"40인 기준 완화해 달라"…중소회계법인들 별도 자구책 마련 중

중소·지방회계법인은 무엇보다 당장의 눈엣가시인 '주사무소 40인 기준'을 '주사무소 20인' 또는 '지점포함 40명' 등으로 완화해 달라는 입장을 어필하고 있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 주사무소 기준으로 40명을 채우기 불가능하고 지방 소재 상장사는 서울에서만 감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와 시간상의 제약을 받을 수 받게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8월 40인 기준이 담긴 개정안이 발표되자, 지방 회계법인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구지방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대구경북에 등록된 회계법인은 모두 35개(대구 28개, 경북 7개)인데, 이 중 40인을 넘는 회계법인은 단 한개도 없는 형편이다. 지역에서 나름 큰 규모를 자랑하는 회계법인도 공인회계사가 10~20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진복 대구지방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서울을 제외하면 40인 이상의 회계법인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지역의 상장회사 외부감사를 서울 회계법인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합병해 규모를 키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역 공인회계사를 배제하는 이번 개정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계법인 합병분할제도와 관련한 법안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고 법이 정한대로 내년 5월까지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 등록요건에 맞게 인원을 충원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여건상 중소회계법인 입장에선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소회계법인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또한 상장사 감사실적을 지정감사인 등급 평가기준으로 삼은 것도 지나친 '진입장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사 실적을 평가기준으로 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로 감사실적 대신 사고 점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소회계법인협의회는 현재 중소회계법인의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소속 공인회계사가 20명인 경우에도 40명 기준에 따라 품질관리실 인원과 경력자를 확보하고 이에 따른 예산 확보를 계획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회계사회와 협력해 전산감사기법을 개발, 전산시스템 설치로 감사업무를 통합관리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며 대표이사 및 경영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등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 개별 회계법인의 인적설비와 물적설비를 통합해 사전 및 사후 심리를 전담으로 하는 별도의 회계법인도 계획하고 있으며, 교육 및 연수 강화, 보험가입 확대 등을 통한 안전장치 강화 방안도 고려하는 등 '자구책' 마련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