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신규 공인회계사 선발인원을 현재보다 늘리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회계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매년 금융위는 회계업계 상황에 따라 신규 회계사 선발인원 규모를 검토하고 '최소선발예정인원'을 결정한다. 지난 2009년 이후 최소선발인원은 850명 수준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황.

하지만 올해 업계를 감싸고 도는 분위기가 예년과 사뭇 다르다.

외부감사법 개정, 표준감사시간제 시행, 주52시간 근무제도 도입 등 회계사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회계업계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회계사 합격자 수를 연 1500명까지 늘려도 대형회계법인 등에서 모두 채용이 가능,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합격인원 증원은 '반짝효과'만 있을 뿐 장기적 측면에서 덤핑, 감사품질 저하 등 업계의 제살을 깎아 먹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빅4, "주52시간제 등 대응방안 없어…증원 꼭 필요"

회계사 선발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중심에는 대형회계법인, 이른바 빅4(삼일·삼정·안진·한영) 회계법인들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다. 대형회계법인들의 요구에 따라 금융위가 증원문제에 대한 의견을 여기저기 구하는 등 예년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빅4 회계법인이 올해 목표로 삼고 있는 신규채용 규모는 1300명 이상. 삼일회계법인은 250~300명, 안진회계법인은 300명의 신규 회계사를 원하고 있다. 한영회계법인도 350명이 신규채용 목표이며 삼정회계법인은 '우수인력'이라는 조건 아래(?) 무제한 채용이 목표다.

하지만 올해 배출되는(이달 31일 최종 발표 예정) 회계사 합격자는 이에 현저히 부족한 900~950명 수준이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실제 빅4 회계법인들은 신규 합격자만으로는 채용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미 수십명에 달하는 기합격자 모집을 대부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각 회계법인의 신규 채용 전략도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업계 최고 대우에 가까운 연봉 인상, '사이닝보너스(signing bonus)' 지급, 감사시즌 후 격려금 지급, 입사 축하금 지급 등 경제적 보상은 물론 주4일 근무, 정시보다 이른 퇴근, 적극적인 연차 사용 등 '워라밸'을 내세운 채용 전략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일자리 부족문제는 회계업계에선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

빅4 회계법인에서만 필요로 하는 회계사가 매년 합격인원을 압도하고 있다. 아울러 합격자 대부분이 대형회계법인 취업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빅4 회계법인을 제외한 회계법인들에게 신규 회계사는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하기까지 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보면, 회계사 선발인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 당연해 보일 정도.

한 대형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대형회계법인들은 구인난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 52시간 근무에 대한 대응 방안은 사실상 답도 없는 상황이다. 회계환경 변화에 따라 회계사 합격자 수를 늘리는 방인이 적극 검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인난은 착시(錯視)…지금 있는 회계사들 관리부터 제대로"

회계사 합격인원 증원을 반대하는 측은 회계사 인력부족 현상에 대한 이유를 합격자 수 규모가 아닌, 퇴직자 규모에서 찾고 있다. 대형회계법인들의 인력난은 합격자 수가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현업에서 이탈하는 회계가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소회계법인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28일 기준 회계사 2만여명 중 개업회계사는 1만2931명, 휴업회계사는 7123명으로 휴업비율이 35.5%에 이른다. 또한 2010년 이후 매년 850명 이상의 회계사가 공인회계사 등록을 하고 있지만 이중 49%인 420명 이상의 회계사가 매년 회계사 업계를 떠나고 있다고 있는 형편이다.

남기권 중소회계법인협의회 회장은 "2010년 이후 4대 회계법인은 매년 700~800명의 수습회계사를 충원하고 있으나 등록공인회계사 수는 약 5000명으로 변동이 거의 없다"면서 "대형회계법인의 인력부족 현상은 충원인력 부족 문제가 아니고 다수의 퇴직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2018년 2월 현재 7123명이 휴업 중으로 매년 수백명이 자의 또는 타의로 업계를 떠나고 있는 실정인데 공인회계사 선발인원을 늘려 놓으면 현업을 떠나는 회계사 수만 덩달아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장 역시 "아무리 많이 뽑아도 법인에서 인력관리 하지 않아 사람들이 줄줄이 퇴사하니 결국 인원은 정체"라면서 "현재상황에서 선발인원 늘린다고 달라질지 의문이다. 결국 퇴사자만 동일한 수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반대 측 의견을 펼치는 이들은 회계사 합격자를 늘리면 일시적으로 인력부족 문제가 해소될 수 있지만 회계사 과잉으로 인한 보수 덤핑, 감사품질 저하 등 부작용이 증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이 회장은 "신입들이 감사에 대거 투입되면 결국 감사품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인원이 많아져서 감사품질이 늘어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환상"이라며 "선발인원을 늘려 회계투명성 올라간다면 우리가 먼저 찬성하고 나서겠다"고 혹평했다.

아울러 반대하는 이들은 회계사 부족 운운하는 것은 일부 대형회계법인의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대형회계법인들이 신규 인력으로 '시간'만 채우려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 회장은 "2018년 3월 기준 대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5199명이고 중소중견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6925명으로 이미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어 언제라도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감사인력이 넘쳐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합격자 수 증원 보다는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퇴사하거나 업계를 떠난 회계사 7000여명이 감사업계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대형회계법인은 수습과 1~2년차 인력으로 버티는 방식을 버리고 고급인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경영방침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주52시간제와 감사인 지정제도가 시행 되어도 인력은 부족하지 않다"면서 "다만 그렇게 될 때 기존 경영진을 비롯한 파트너들이 가져갈 파이가 줄어드니 인원을 늘리려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내년도 신규 공인회계사 최소선발 예정인원은 공인회계사자격제도 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오는 11월 경 발표될 예정이다. 회계사 합격자 수 증원이 이루어질 지, 만약 증원이 된다면 규모는 어느 정도 일지,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