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송동 서울지방국세청사에 근무하는 여성 국세공무원들에게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기가 민망한 속사정이 있었다. 그 속사정은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 

4차 산업 혁명 운운하는 요즘 세상에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수 백명이 일하는 대형 건물에서 무슨 화장실 때문에 고민을 할까도 싶지만 서울국세청 여직원들은 화장실을 찾아 옆 건물로, 앞 건물로 가야하는 서러운 시간을 보내왔다.

이유는 서울국세청사 여자화장실 변기가 요새는 좀 처럼 찾아보기 힘든 화변기이기 때문.

화변기는 쪼그려 앉아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오래된 지하철역 화장실이나 버스터미널 등에서나 볼 수 있는 구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서울국세청사 여직원들은 오랜 시간 동안 구시대의 산물을 매일 같이 마주하고 살아왔다. 

그나마 화장실의 숫자도 부족해 고초를 겪어왔다.

서울국세청사 건물은 16층으로 각 층 마다 두 칸으로 구성된 여자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과거에는 여직원들의 숫자가 적어 '수용능력'이 충분했지만, 최근 수 년 사이 여직원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국세청사에 근무하는 여직원 수는 355명. 화장실 숫자도 부족한데 여자화장실 한 칸은 화변기가 설치되어 있어 화변기 사용에 익숙치 않은 젊은 여직원 등은 점심시간 등 화장실이 붐비는 시간이면 급한 배를 움켜쥐고 국세청사 주변의 화장실로 찾아다녔다는 것이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재래식 변기가... = 서울지방국세청 여자화장실 모습. 겨우 2칸 뿐인 화장실에 그마저도 1칸은 화변기가 설치되어 있어 여직원들이 음으로 양으로 불편을 호소해왔다. 하지만 남자화장실은 양변기만 설치되어 있어 여직원들의 불만을 공감하지 못하면서 여직원들이 15년 동안 화변기를 써오다 최근 화장실 공사를 진행, 화변기를 양변기로 교체했다는 전언이다.

이에 여직원들은 모이면 화장실에 대한 이런 저런 불만을 얘기했지만 남직원들은 여직원들의 불만에 공감을 하지 못하면서 서울청사의 여자화장실은 2002년 청사가 준공된 이래 계속 그 상태 그대로였다. 남직원들이 여직원들의 불만에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청사의 남자화장실은 모두 양변기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들은 일부 여직원들은 심한 배신감(?) 마저 느끼며 남녀차별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청사 신축 당시였던 2002년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여직원들의 수가 적기도 했을 뿐더러, 일부는 화변기를 원했기 때문에 양변기와 화변기를 각 1개씩 설치했다는 것.

시간이 흘러가면서 여직원 수도 늘어나고 화변기를 싫어하는 여직원들이 많이 생겼지만 결정권한이 있는 간부들이 대부분 남자이다보니 여자화장실을 들어갈 일 자체가 없어 화장실 공사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화장실에 대한 여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서울국세청장 귀에 들어갔고 즉시 지시를 내려 화장실 전수조사와 공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당초 서울청에서는 화장실을 추가로 만들려고 했지만 청사 내 빈 공간이 없어 화변기를 양변기로 교체하는 공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청은 청사 내 근무하는 여직원 355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고, 그 결과 15명의 직원만이 화변기를 유지하는데 찬성해 청사 내 설치되어 있는 20개의 화변기 중 16개를 양변기로 교체하고 4개를 남겨뒀다. 15년 동안 변하지 않던 여자화장실이 단 2개월 만에 후다닥 바뀐 것이다.

여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라는 전언이다. 

한 여직원은 "화변기를 사용하면 다리도 아프고 힘들었다. 양변기 칸에 가려고 눈치싸움도 심했는데 이제는 편하게 화장실을 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다른 여직원도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바뀔 수 있는 화장실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지금이라도 바뀌어서 너무 좋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