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본회의 직전 국회에서 세무사법 개정에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김현 변협회장 등이 삭발식까지 단행하며 의지를 보였으나,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모두 물거품이 됐다.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세무사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지던 제도가 전면 폐지됐다.

국회는 8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를 골자로 한 '세무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표결 결과 재석 247명 중 찬성이 215명(반대 9명, 기권 23명)으로 압도적인 수치를 보였다.

지난 17, 18, 19대 국회에 이어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민 의원의 '3전4기' 도전이 이번 국회에서 결실을 맺게된 셈.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내용은 '세무사법 제3조 3호'를 삭제하는 것이다.

세무사법 제3조는 세무사의 자격이 있는 이들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1호는 당연히 '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자'이고, 2호는 공인회계사였으나 현재 삭제된 상태다. 3호가 바로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자'다.

즉 3호를 2호와 마찬가지로 삭제함으로써 변호사 자격 취득 시 세무사 자격이 자동으로 부여되던 것을 폐지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그동안 세무사법 개정안은 법조인 출신 의원이 대거 포진한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의 반발로 인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도 못된 채 번번이 폐기되곤 했다.

이번에도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조경태(자유한국당)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지난달 17일 법사위에 장기 계류됐던 세무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해달라고 정세균 의장에게 요청했다.

선진화법 86조는 법사위가 이유 없이 법안이 회부된 날부터 12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해당 법안의 소관 상임위 위원장이 간사간 협의를 통해 국회의장에게 해당 법안의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 의장은 부의를 추진했지만,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지난달 20일 여야 원내대표 정례회동에서 "처음 듣는 법안이니 상임위원장 등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하면서 다시 한번 제동이 걸렸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후 지난 27일 법사위 논의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식으로 세무사법을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법사위에서 진전이 없자 본회의 직권상정이 이루어지게 됐다.

결국 국회는 세무사들의 손을 들어줬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법안 효력 발생 이후 자격을 취득하는 변호사들은 일반적인 세무사 업무를 할 수 없게 됐다. 1961년 9월 세무사법 제정 당시 변호사가 '세무사 자동자격 직업군' 중 하나로 포함된 지 56년 만의 일이다.

세무사회는 이번 법안 통과로 인해 변호사들의 업무영역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자동자격이 폐지되더라도 변호사는 종전대로 조세불복 등에 해당하는 세무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무사회 관계자는 "실제 세무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는 극소수에 불과해 세무조정 등의 세무업무를 수행한 변호사는 지난해 기준 16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변호사들이 실제 업무영역에 큰 영향이 없는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를 강력히 반대한 이유를 '변리사법 개정'에서 찾기도 한다. 세무사법 개정의 여파가 변리사법 개정까지 이어 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변리사법도 세무사법과 마찬가지로 1961년 제정 당시부터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자동 부여하고 있는데, 이를 폐지하는 내용의 변리사법 개정안이 지난 국회 때 법사위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된 바 있다.

본회의 시작 전 세무사법 개정에 강력히 반대하며 삭발식까지 진행했던 대한변호사협회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됐다.

한편 이날 국회는 국세청 등 세무행정 관련 직무에 복무 중 징계를 받은 자에 대해선 세무사 시험 일부 면제 혜택을 배제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도 함께 통과시켰다.

당초 개정안(박명재 의원안)은 파면·해임은 물론, 금품 및 향응수수로 강등 또는 정직에 해당하는 징계처분을 받은 자에게도 시험 일부 면제혜택을 배제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경중을 고려해 강등 또는 정직처분을 받은 자에 대해서는 처분 후 2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시험의 일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수정되어 통과됐다.

현행 세무사법에서는 국세청 10년 이상 재직 직원에게는 세무사 1차시험 면제를, 20년 이상 재직자에게는 1차시험 면제와 함께 2차시험 일부 면제혜택을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