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충돌', 누구 힘이 더 쎌까 = 수 백여개에 달하는 세법개정안을 둘러싸고 정부와 정치권의 치열한 격돌이 예고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복지 재원 확보가 시급한 만큼 반드시 입법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야당의 협조 없이는 관철이 힘든 세법개정안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세논리를 앞세우기 보다는 '정치적 타협'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입법 전쟁'이 총성을 울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 '증세 없는 복지'라는 프레임에 갇혀 공론화되지 못했던 '증세' 논의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활활 타오르며 이른바 부자증세로 정의된,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국회의 심사대에 올라 있는 상태다.

이 개정안은 고소득자,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세수확대형 조세개편'으로 평가된다. 필요한 재원조달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마저도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할 경우 문재인 정부의 공약 달성 여부가 뿌리 채 흔들릴 수 있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은 입법화 성공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사실 수 백 건에 달하는 세법을 고치는 작업이기에 여야 간 접근법은 다르다.

날선 대립각을 세우는 부분은 역시 증세다. 증가하는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세수를 늘리는 조세개편에는 큰 이견은 없어 보이나, 일부계층에만 집중적으로 세부담을 지우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술대 오른 세법은…

정부는 소득세, 법인세법 등 13개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일자리 창출 지원, 소득재분배, 세입기반 확충 등을 목표로 두고 무려 220여개에 달하는 제도를 손질했다. 이 세법개정으로 인해 연 평균 5조5000억원에 달하는 세수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복지 등 주요 정책을 추진하는 큰 동력인 셈이다.

핵심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이다. 고소득자, 대기업의 높은 이윤을 과세기반으로 활용해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높인다는 것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42%로 올리고 법인세 최고구간(과표 2000억원 초과·세율 25%)도 새로 만드는 것인데, 이를 두고 '핀셋증세'라는 평가다.  

의원발의 세법개정안도 소득재분배 강화, 세입확충을 담은 내용의 비중이 커 '쓰나미급' 증세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법인세법 계류안 19개 가운데서 10개 법안은 세율 인상·인하 내용을 담고 있고, 소득세법 개정안의 경우 소득재분배의 비중이 24%다.

9월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의원발의 세법개정안은 총 338개다.

사실 국회 논의 테이블에 오르기 전부터 부자증세는 잡음이 많았다.

소득세의 경우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절반(2015년, 46.8%)에 달하는데도 특정 계층에만 세부담을 집중시키는 부분, 법인세는 '세계적인 추세와 역행한다', '기업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라는 반발이 현재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야당에서는 법인세율 인하안으로 맞불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정책의 실효성을 따지는 부분도 논쟁거리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하는 만큼,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세제지원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와 청년고용증대세제를 통합한 고용증대세제(고용인원당 700만원 공제)를 신설하거나, 정규직 전환하는 기업의 세액공제 혜택 확대(중소기업 700→1000만원) 등이다. 설비투자·R&D세액공제를 축소하면서 정책 타겟을 투자에서 고용으로 옮겨간 모양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세지원 규모나 방식이 기업의 일자리 창출에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세액공제를 받은 중소기업이 작년 고작 0.05%라는 점에서 세금만 더 퍼붓는 정책이 온전히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종교인 과세'가 또 다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종교인 과세시기를 2년 더 유예시키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7대 종단 면담을 거친 설득 작업으로 내년에 시행되더라도 조세저항을 덜할 것으로 보이나, 일부 종교계에서 '세무조사 금지'라는 전제 조건을 달고 있어 자칫 유예 카드가 재차 발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촉박한 세법심의…졸속 우려도

정부와 각 당, 개별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조세법 개정안들에 대한 심의가 자칫 '졸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세법심의를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다.

현재 국회 각 상임위원회는 예산안 예비심사에 돌입한 상태다.

3일 예산결산위원회의 공청회를 시작으로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이루어진다. 세법을 심의하는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13일부터 가동된다. 세법을 포함한 예산안 등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부의 되는 시점(12월1일)전까지 세법심의를 진행한다고 가정해도 약 3주 정도다.

그간 조세소위는 직접적인 세수와 관련이 없거나 사회적 관심이 다소 덜한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 판정을 내렸었다. 일독(一讀) 과정을 거치고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차후 '재논의' 사안으로 분류시켰다. 그만큼 짧은 세법심의 기간을 감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법심의 작업에 속도를 내는데 있어 장애물은 존재한다. 세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예산안 심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공무원 증원 등을 위한 일자리 예산을 크게 늘리는 부분에 있어 야당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게다가 경제·사회적 파급력이 큰 굵직한 법안이 대거 포진되어 있는 상태라 막판까지 합의 판정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과거에도 시간에 쫓겨 딜(deal·거래)하는 방식으로 세법개정이 이루어지면서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수조원의 규모의 세수가 '확보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기에 정부와 정치권간 협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세법개정안 심의는 그 자체만이 아니라 향후 5년의 정책 기조를 전체적으로 좌우할 첫 단추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 달성을 위한 약 178조원 중 66조원은 세입개혁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