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반성 없이 미래로 갈 수 없다", 국세청 '정치중립' 실현
'국세행정 개혁 TF' 가동…정치 논란 야기한 세무조사 재점검

◆…한승희 국세청장은 지난 17일 세종시 나성동 국세청사에서 열린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 참석해 "어떤 일이 있어도 세정의 정치적 중립성 만큼은 철저하게 지키겠다"고 말했다.

"과거에 대한 겸허한 반성 없이는 국민이 바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세정의 정치적 중립성 만큼은 철저히 지키겠다."

17일 세종시 나성동 국세청사에서 열린 국세청 전국세무관서장회의 인사말을 통해 한승희 국세청장이 여러 각도의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입으로만 말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세운 뜻을 현실적인 방책으로 만들어 낼 전담 조직(국세행정 개혁 TF)까지 만들어냈다.

한승희 국세청장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이날 전국세무관서장회의는 과거 문제가 있었던 세무조사 사건들을 되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문제점을 고쳐 현 시대가 요구하는 국세청을 만들겠다는 한 국세청장의 '구상'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자리였다.

여러 가지 국세행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긴 했지만  과거 정치적 논란을 야기한 세무조사건을 재점검 및 재평가하겠다는 그동안 결코 찾아보지 못했던 방안이 앞선에 나오면서 나머지는 속된 말로 '다 묻혔다'.

국세행정 개혁 TF 가동, "세무조사 개선방안 찾겠다" 

민관합동 국세행정 개혁 TF(이하 TF)의 역할은 크게 두 갈래(▲세무조사 개선 ▲조세정의 실현)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세무조사 개선. 특히 국세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TF가 할 일을 꽤 구체적으로 적시해 놓았다.

◆…지난 17일 국세청이 발표한 민관합동 국세행정 개혁 TF 운영 목표. '과거 정치적 논란이 된 세무조사에 대한 점검 평가 등을 통해 세정의 정치적 중립성 제고를 위한 세무조사 개선방안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로 포함됐다.

과거 정치적 논란이 된 세무조사에 대한 점검 및 평가 등을 통해 세정의 정치적 중립성 제고를 위한 세무조사 개선방안을 찾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세청의 방침은 어떤 측면에서 굉장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 뿐이지, 그동안 크고 작은 세무조사와 관련해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된 의혹이 짙은 세무조사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을 부엉이 바위 위에 세운 결정적 단초가 된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이다.

정치 세무조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국세청은 아예 입을 다물거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정치적 목적이 없었다는 해명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 역사를 써내려온 마당에 대뜸 '과거 정치적 논란이 된 세무조사에 대한 점검 및 평가'를 언급한 것은 국세청 스스로 정치적 세무조사를 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꼴이 됐다.

TF가 어떤 세무조사건들을 '정치적 논란이 됐던 세무조사'로 가려내고, 이를 점검해 문제점을 파악한 후 어떤 개선책을 마련해 내놓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선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국세청이 과거이든 현재이든 '정치바람'에 어떤 식으로 휩쓸렸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정치적 논란이 됐던 세무조사를 진행했는지를 대내외에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승희의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다?

실질적으로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 선정 등 과정은 나름대로 투명성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

즉 행정 프로세스 등 시스템 측면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정치적 세무조사 차단 방법을 시스템 측면에서 찾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 부분은 4~5년 주기로 진행되는 '정기 세무조사' 측면에서만 그렇고, 소위 '심층(특별)세무조사'로 일컬어지는 '비정기 세무조사'의 경우는 다르다.

비정기 세무조사의 경우 국세청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보 또는 외부의 제보(탈세제보)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선정해 진행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충분히 '표적 세무조사'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비정기 세무조사의 경우도 조사 착수 전 일정한 선정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국세청이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해명해 버리면 딱히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대검 중수부 폐지와 함께 '(청와대)하명 조사국'이라 불리던 서울국세청 조사4국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던 것도 이러한 비정기 세무조사 대상 선정 등과 관련한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

이에 따라 TF의 활동은 국세청의 비정기 세무조사 행정 시스템 전반에 걸친 재점검 및 개편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의 이러한 움직임에 큰 의미를 둘 필요 없다는 비판적 시각도 나온다. 시스템 측면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차단할 수 있도록 완벽한 개편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실질적으로 비정기 세무조사 행정은 대내외에 공개되지 않은 채 철저히 국세청 내부에 감춰져 왔다. 즉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외부위원들이 제안할 수 있는 방법은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한시적 TF라는 태생적 문제로 인해 내부위원들의 논리에 휘둘리다가 흐지부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제도적인 부분의 개편에 치중하기 보다는 '사람관리'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맞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시간 동안 제기된 국세행정의 정치적 중립 문제는 사실상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문제에서부터 파생됐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국세청법 제정 논의가 있을 때마다 '국세청장 임기제' 도입이 국세청법의 핵심 아젠더로 다루어진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세청 관계자는 "청장이 교체될 때마다 무슨 TF를 만들어 개혁을 외쳐왔지만, 체감할 정도의 수준의 개혁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 있는 국세행정개혁위원회도 출범 당시와는 달리 국세청 업무의 큰 물줄기 정도 보고하는 요식행위 수준의 활동으로 전락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껏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세무조사에는 모두 '윗분'들이 개입해 있었다"라며 "제도적인 개편도 중요하겠지만 윗분들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소신을 갖고 일하는 환경만 만들어지면 국세청을 둘러싼 정치 세무조사 논란은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