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이날 문 대통령은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단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이 이른바 '슈퍼 리치'에 대한 증세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증세 문제가 정치권 최대의 이슈로 급부상했다. 지난 20일~21일 양일간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과 여당 당수의 '콤비 플레이'가 나오면서 증세 논의에 제대로 시동이 걸린 것이다.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소득 2000억원 초과 대기업에 대한 과표를 신설, 25%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안과 함께 5억원 초과 고소득자에게도 과표를 새로 만들어 42%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어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를)이제 확정해야 할 시기"라며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일반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들에게는 증세가 전혀 없다"고 언급하면서 증세 논의를 수면 위에 띄웠다. 

증세는 불가피하지만 소위 '슈퍼부자'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세금을 더 걷을 테니 대다수 국민은 안심해도 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문재인 정부 증세정책의 성격과 방향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설마, 설마했지만 결국 화두가 된 '증세', 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끊임없이 논의되기는 했지만 증세 이슈가 보다 구체화된 것은 지난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다.

5개년 계획에 담긴 각종 공약 이행사업(특히 복지공약)에 투입되는 소요재원은 5년 동안 총 178조원으로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놓은 공약집과 같았지만, 재원마련 대책 부분에서 대선 당시 포함되지 않았던 '자연 세수 증가분' 60조5000억원(연 10조원 내외) 잡혀 있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써야 하는 마당에 근거가 부실한 재원조달 방안을 내놓았으니 대번에 야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비판의 목소리가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선 정부가 '인기'에 연연해 박근혜 정부의 '증세없는 복지' 페러다임을 베낀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여당의원 출신인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5개년 계획이 발표된 지 하루 뒤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재정 당국에서 낸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 조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며 "정공법으로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 이제 국민에게 (증세를)정직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장관이 슬그머니 군불을 떼자 즉각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이 주거니 받거니, 증세정책 추진을 확정적으로 언급하면서 증세 추진이 공식화 됐다.

문 대통령과 추 대표가 직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기획재정부에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대한 소득세·법인세율 인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내달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 세법개정안에도 유사한 내용의 증세 법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 공약 이행을 위해 무리한 증세를 시도하고 있으며 슈퍼리치에 대한 부분적인 증세만으론 제대로 된 복지정책을 실현할 수 없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어, 향후 국회 안팎에서 펼쳐질 증세 논쟁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감한 '증세'…지지율 잘 나올때 추진하자?

증세 방아쇠를 당신 추미애 대표가 제시한 방안은 구체적으로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기업에 대한 법인세 과표구간을 신설하고 현행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3%p 올리는 것이다.

현행 법인세율은 과표에 따라 10%(과표 2억원 이하), 20%(2억∼200억원), 22%(200억원 초과) 등 3단계 과세체계가 적용되고 있다.

아울러 연 소득 5억원 초과 과표를 새롭게 만들어 이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이들에 대해 현행 40%의 최고세율이 아닌 42% 최고세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증세 논쟁에 제대로 불이 붙자 24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추 대표는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는 조세정의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이를 두고 스스로 명예를 지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명예과세'라고 부르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추 대표의 방안이 이번 주 중 발표될 예정인 정부 세법개정안에 담길 경우 "올해는 세율 인상이 없다"던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은 하루아침에 공염불이 되어 버린다.

굉장히 민감한 문제인 증세를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한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질책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증세에 속도를 내는 것은 고공행진 중인 '지지율'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긴 했지만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은 72.4%(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1.9%포인트)로 높게 형성됐다. 정당 지지도 또한 더불어민주당이 50.4%로 전주 조사 대비 2.6%p 하락했지만 야당(자유한국당 16.0%, 바른정당 7.3%, 정의당 6.7%, 국민의당 5.1%)을 압도하는 수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현 시점에선 정책에 다소 변화가 있더라도 국민의 높은 지지율만 있으면 국정 주도권을 쥐고 정면돌파를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이 정부와 여당을 사로잡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증세 물꼬가 터져야 하기 때문에 증세를 서두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증세를 위해선 명분이 중요한데,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우선되어야 그 다음 차례를 내다볼 수 있다는 것. 

지방선거 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지만, 뚜렷한 성과물 없이 증세 이슈를 계속해서 가져가게 될 경우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단김에 쇠뿔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증세 논쟁의 불씨를 일찍 당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한 조세 전문가는 "대통령이 이번에 증세 관련 발언을 하며 5년 내내 같은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올해 슈퍼리치에 대한 증세가 이루어진 후 내년부턴 증세폭이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필요한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올해부터 당장 증세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