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지정한 지방자치단체에 기부를 하면 금액에 따라 세금을 공제 해주는 방식을 차용한 '고향세(고향기부금제)' 도입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지방재정 개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고향세를 도입하려는 데는 서울 등 도시와 비교해 열악한 농촌지역 지자체의 재정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져서다.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후루사토 납세(고향세)'를 도입하면서 지방곳간을 잔뜩 채운바 있다.

10여년 동안 군불만 슬금슬금 떼고 있던 고향세 도입 논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탄력을 받은 모양새. 정부 차원에서도 제도 도입 여부를 놓고 실무적인 검토를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방재원 확대에는 효과가 적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특정 지자체에 재정이 몰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수가 줄어드는 중앙·지방정부와의 협의 없이 진행했을 때 반발도 걸림돌로 남아 있다. 차라리 국세의 지방세 이전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지방재정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군불만 10년 떼더니... 대통령 공약에 실현 가능성 '훌쩍'

고향세 도입은 2008년 당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도시민이 내는 주민세의 10%를 고향으로 돌리겠다'고 공약하면서 처음 세상에 나왔다. 정치개혁의 기수로 '반짝' 주목을 받았던 문 대표와 창조한국당의 실패로 이 공약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18대 국회에서도 고향세 논의는 이어졌다.

2009년 당시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 2011년 민주당 홍재형 의원이 각각 고향세 도입 법안을 내놨다. 2010년 한나라당이 6·2 지방선거 공약으로 일본의 고향납세제를 따온 '향토발전세' 신설을 검토했다. 지방소득세의 최대 30%를 본인의 고향이나 5년 이상 거주했던 지역에 낼 수 있도록 추진하려 했으나, 수도권 반발로 좌초됐다. 

10년의 시행착오 끝에 현재 고향세 논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고향사랑 기부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제시되면서 다시 불붙은 모양새다.

구체적으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기부를 하면 10만원(초과 시 소득세·지방소득세16.5% 공제)까지 세금에서 공제해주는 것인데, 과거 고향에서 받았던 교육·복지 등 혜택에 보은하는 의미를 담아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관계부처인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등은 제도 도입과 관련한 적극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이미 국회에서는 고향세 도입을 위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안은 총 4개다.

지난해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은 농어촌발전공동모금회를 설립하고 모금된 재원을 농어촌 지자체에 배분하는 안을, 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기부금품법을 개정해 법정기부금 형태로 고향세 제도를 도입하자는 취지의 안을 발의했다.

문 대통령의 공약과 꼭 닮은 전재수 의원(더민주)안은 지자체에 기부금을 10만원까지는 전액 공제, 1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부터 소득세·지방세를 각각 15%, 10% 세액공제 하는 내용이 골자.

자신이 내야 할 세금이 고향으로 흘러가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같은 당 홍의락 의원은 근로소득자 본인 소득세액의 10%를 자신이 지정한 지자체에 세입으로 이전 신청할 수 있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열악한 지방곳간 채우기, 고향세만이 답인가

고향세를 도입했을 때 농촌지역 경제를 살릴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인구와 경제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고향세가 도·농간의 재정격차를 완화시킬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행정자치부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인 지방재정 365'에 따르면 2017년 본예산 기준 서울(85%)과 하위 전남(26.23%)의 재정자립도는 3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경기(70.07%), 인천(65.41%) 등 수도권 지자체가 상위권을 차지한 반면, 전남을 비롯해 전북(28.6%), 강원(29.07%), 경북(32.66%) 등은 상대적으로 재원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고향세를 도입하려는 데는 일본의 성공 사례도 한 몫 거들고 있다.

일본은 2008년 고향납세제를 처음 시행했다.

기부금을 내는 출향민에게 일부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시행 초기에는 기부액이 지지부진하다가 2013년부터 기부액이 크게 늘었고, 2015년에는 첫해의 20배가 넘는 1653억엔(약 1조7000억원)이 걷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기부 주체를 기업까지 확대하는 기업형 고향납세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고향세가 특정 지자체에 재정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실제 2008년 고향세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오사카와 가고시마 등 일부 지역에 기부액이 집중되기도 했다. 게다가 일본은 지자체가 기부자에게 보내는 답례품으로 인해 기부액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지역특산품까지 덤으로 얻다보니 손해 볼 게 없는 셈.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엔 이 같은 유인책이 없다보니 일본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대입하기는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고향세 도입이 실질적인 지방재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향세로 세수가 줄어드는 중앙·지방정부의 동의를 구해야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열악한 지방곳간을 채우기 위해선 현 8대2 수준의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고향세 도입은 지방재정 확충, 지방재정 불균형 등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의 의미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정도다. 실제로 지방재정에 도움이 되는 국세의 지방세 이전 비율을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