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겨울 하늘에 지나가는 먹구름만 보이는 새해 정월, 땀 흘리는 현장에서 나는 기도합니다.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고맙다고…….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로 50대에 접어들어 또 몇 년이 지난 세월을 살아온 울산 아지매입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인사를 드려야 할 곳을 찾지 못해서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오다가 체험수기 공모전에 감사의 마음을 써 올릴 기회를 찾았습니다.

감사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재주가 부족하여 겁이 나기도 하지만, 꼭 일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목적으로 나라에서 마련해주신 근로장려금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저의 소중한 딸아이와 제가 다시 한번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신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서툰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저는 울산광역시 중구에서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남편 없이 혼자서 딸아이 하나 키우며 살아가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울산에선 '아지매'라고 불리는 아줌마입니다. 울산으로 오기 전엔 대구에서 살았는데, 뇌출혈로 쓰러져 대구 가톨릭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했는데, 또 다시 문제가 생겨, 모두  합쳐 세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실을 나와 회복실을 거쳐 일반병실에 돌아온 제가 미처 의식이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희미하게 아이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윽고, 의식이 돌아와 눈을 떠보니 한 사람 앉기도 힘겨워 보이는 작은 보호자용 의자에 제 딸이 누워있더군요. 저의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는지 딸이 얼른 일어나서는 아직도 눈물자국이 선명히 보이는 피곤에 절어 졸리는 눈을 비비고는 조그만 손으로 제 손을 꼭 잡고는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 돌아와줘서 고맙데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때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저에게 그 말을 하던 딸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지루하고도 고단한 병실생활이 시작되었지요.

그 후로도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긴 재활 기간을 거쳐 기적처럼 지금의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생활이 끝난 후, 제게 돌아온 현실은 눈물 마를 시간조차 없는 가난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저는 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해야 했지요. 그러다가 그때만 해도 아직 공해도시라는, 별로 예쁘지 않은 별명으로 불리던 울산에 가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건너와 정착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제가 사는 이곳 울산에선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이 일하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살면 살기 좋은 곳으로는 울산만한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하나 가진 딸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딸아이 하나 못 키우랴 싶어 여자의 몸으로는 힘들다는 막노동 현장에서도 일했습니다.

하지만 막노동을 하기엔 몸이 따라주지 않아 수시로 병원과 약국을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그 사이 생활은 더 힘들어졌고요.

그렇게 살길이 막막한 저에게 자활근로라는 이름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더군요. 그래서 동사무소도 가고, 구청에도 가서 이런저런 저의 사정을 말씀드렸고 학교에서 청소하는 일을 소개받아서 지금 제가 몸담고 있는 사회서비스형 자활근로 청소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한다고 조용했다가도 쉬는 시간만 되면 여기로 우루루, 저기로 우루루 다니는 모습을 보면 꼭 엄마를 따라 몰려다니는 오리떼 같아 보여서 실없이 웃기도 했답니다.

솔직히 청소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집안 정리하는 식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제법 힘이 들기도 합니다.

학교를 커다란 집처럼 생각하고 하루 종일 학교 이 구석, 저 구석을 종종걸음으로 다니다보면 언제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더군요. 엄마가 이렇게 하루하루 정신없게 살다보니 몰랐는데 그러는 사이 하나뿐인 저의 딸은 어느새 여기 울산말로 '큰 애기'가 다 되어 있네요.

올해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제 딸은 엄마인 저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라서 엄마로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보물입니다.

엄마가 큰 병으로 쓰러져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어려서부터 봐왔던 아이지만,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듬직한 모습으로 저의 곁을 지켜주는 딸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생활을 잘 유지하려던 제게 닥쳐온 큰 수술 경험과 기나긴 재활 생활은 단지 몸에만 나쁜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생활자체가 어렵게 되는 말하자면 돈, 그 놈의 돈……. 그래서 더 힘든 생활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제 딸아이는 사실 변변한 학원 한 군데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모자란 엄마가 너무도 감사하게도 늘 학교에서 제법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큰 수술과 그로 인해 어려워진 살림살이를 알아서일까요? 딸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늦은 저녁밥을 먹던 딸아이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엄마, 나 대학교 갈 정도로 공부 잘 할 생각 없어요. 나 돈 벌거야. 상고 갈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이런 뜻인지…….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더군요. 그래도 대학교 거뜬히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있는 아이가 대뜸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딸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가난하지만, 니가 간다고 하면 대학 아니라 유학이라도 보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저의 속마음이라도 읽은 걸까요? 딸아이는 "엄마, 대학교 나와도, 박사님 되어도,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라고요. 그러면서 옥신각신 딸은 제 생각, 저는 딸 걱정하며 고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은 저와 딸아이에게 돈이 없어 보낼 수 없는 현실을 깨닫도록 하더군요. 가난한 엄마가 아이 하나조차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다는 현실이 너무 서러워 삶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갈 때쯤, 저에게도 한줄기 단비가 내렸습니다.

알음알음 알게 된 여러 지인들의 소개를 받아 일하는 사람에게 장려금을 준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됐습니다. 이래저래 기쁜 소식이긴 했지만, 어찌해야 하는지 막막했는데 관계자 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더군요.

제가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이니 신청하시라는 권유를 받아 신청한 결과, 작년에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문자도 보내주시고, 친절히 응대해 주신 장려금 지급부서의 관계자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이 하나조차 제대로 키울 수 없는 무능력한 엄마인 저를 따뜻하게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작년에 전해주신 근로장려금과 그동안 쌈짓돈으로 모아둔 저금을 가지고 작지만 포근한 '매입임대주택' 한 채를 샀답니다. 그게 벌써 1년 전 이야기가 되었네요.

지난 십여 년 동안 낡고 허름한 집에서 살다가 새로 이사한 집은 저에겐 대궐 부럽지 않은 따뜻한 삶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저의 딸아이도 이제는 어느덧, 여상 2학년에 접어듭니다. 벌써부터 딸아이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 나 내년에 3학년 돼서 일찍 취업하면 엄마랑 나 둘이서 여행도 다녀보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으러 가자"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딸! 가난한 엄마, 부족한 엄마가 늘 사랑하고, 고맙단다'

오늘도 저는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학교 근처의 작은 공원에서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를 보고서도 박수를 치면서 깔깔 웃어대는 학교로 갑니다.

딸에게도 저에게도 꿈을 꾸고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낮은 목소리로 작은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데 힘을 보테주신 근로장려금 관계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저의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해드릴 수 있다고 믿으면서 서툴게 쓴 글을 이만 마칠까 합니다.

수기 작성자 : 울산광역시 강○○(동울산세무서 출품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