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환수 국세청장 시대가 '황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사'라고들 하지만, 그동안의 전례를 감안할 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는 것은 곧 국세청장 교체를 의미한다. 임 청장이 오는 5월9일 예정된 대선 이후 국세청장으로 계속 남아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대선 후 총리 및 장관 임명, 인사청문회 등 밟아야 할 절차가 많아 임환수號가 항해할 시간적 여유는 아직 남아있지만 인사권자로서의 역할은 지난 17일 오호선 전 국세청 역외탈세정보담당관을 고위공무원(부산청 조사2국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사실상 종료됐다. 

지난 2014년 8월21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임환수 시대'를 열며 2년7개월을 달려오며 2000년 이후 탄생한 10명의 국세청장 중 가장 오랜 기간 청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임 청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없었다면 임 청장 체제가 해를 넘겨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국세청장 임환수'가 쌓은 신뢰와 무게감이 두텁다는 것이다.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 안정화, 송무기능 강화, 성실신고 지원, 세무조사 관리 강화, 납세자 권리 제고, 조직 개편 등 임 청장은 취임 후 국세행정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여왔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다.

안정적인 국가재정 확보는 물론,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변의 소용돌이 안에서도 국세청만은 아무 탈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임 청장에 대한 평가는 고점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임 청장이 높게 평가받는 부분은 임 청장 특유의 '인사(人事) 철학'.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듯, 제대로 된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지금껏 임 청장이 쌓아올린 공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국세청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고 다녔던 임 청장의 인사 스토리를 되짚어본다.  

"열려라 참깨!"…'비고시 전성시대' 활짝

"출발 직급이 무엇이든, 능력과 평판에 의한 탕평인사를 하겠다"

취임식 자리에서 '탕평인사'를 천명한 임 청장의 발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임 청장 취임식 6일 뒤인 2014년 8월27일,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이었던 김봉래 국장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국세청 차장으로 발탁된 것.

26년만에 비고시 출신(7급 공채) 차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김 차장은 2년7개월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임 청장과 손발을 맞추며 차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국세청을 이끌어 온 임 청장 곁을 온화한 성품을 갖춘 김 차장이 지키며, 국세청이 순항하는 데 '그림자 내조'를 톡톡히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파격 인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차장 인사와 동시에 진행된 고위직 인사에서 당시 본청 조사국장으로 근무하던 군(軍)출신 원정희 국장이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 임명됐다.

군특채(10기) 마지막 기수인 원 전 청장은 군출신에게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본청 조사국장에 이어 고위공무원 가급(1급)의 벽을 허물며, '처음이자 마지막 군출신 1급'이라는 역사적 타이틀의 주인공이 됐다.

같은 해 국세청의 대형 이벤트 중 하나인 연말 고위직 인사에서도 비고시 출신들의 강세는 이어졌다. 강세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비고시 출신 인사들이 대규모 기용됐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세무대학(8급 특채) 출신인 김재웅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을 1급으로 승진시키며 중부지방국세청장으로 임명한 것. 세무대학 출신이 1급에 오른 것은 국세청 역사상 김 전 청장이 처음이었다.

김 청장은 1년 뒤 다시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영전, 세무대학 출신 '신화'를 썼다.    

시간을 김 전 청장이 중부지방국세청장으로 임명되던 2014년 말로 돌려보자.

국세청 차장 김봉래(7급 공채), 서울지방국세청장 김연근(행시), 중부지방국세청장 김재웅(8급 특채), 대전지방국세청장 김형중(9급 공채), 광주지방국세청장 신수원(7급 공채), 대구지방국세청장 남동국(7급 공채), 부산지방국세청장 원정희(군특채).

차장과 6개 지방국세청장 등 총 7개 국세청 고위직 중 6개 직위가 비고시 출신들로 채워졌다. 행시출신인 임 청장이 비고시 출신 국세청장(추경석 전 국세청장)도 해내지 못한 획기적인 인사를 단행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온 이유다.

깨질 듯 깨지지 않은 '본청 중심' 인사

비고시 출신이 점령하다시피 했던 2014년 말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임환수 국세청장은 국세청 고위직에 비고시 출신들을 기용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초고속 승진을 통해 각각 광주지방국세청장과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발탁된 한동연 전 청장(7급 공채, 2016년말 퇴임)과 윤상수 현 대구청장(7급 공채)이 이 같은 케이스.

한 전 청장은 2014년 7월 서기관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이후 6개월만에 고위공무원이 됐다. 윤 청장 역시 2015년 7월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후 6개월만에 고위공무원으로 올라서면서 내친김에 대구청장 자리까지 내달렸다. 

두 청장에겐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둘 다 중부지방국세청 국장 자리에서 지방청장으로 영전했다는 점이다.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이 고위공무원 가급으로 승진하거나, 나급 지방청장으로 영전된 케이스는 꽤 있었다. 하지만 중부청 소속 국장 중 지방청장으로 발탁된 경우는 전무했다. 그동안 중부청 소속 국장은 서울청 또는 본청 국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을 뿐이었다.  

두 청장의 인사 발령은 국세청 인사 역사에 남을 '특이 케이스'라는 것.

또 다른 측면에선 본청 중심의 인사를 타파한 혁신적 인사로 기록됐다.

이 외에도 본청 중심 인사에서 벗어난 케이스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2016년 초 순수 지방청 자원 출신인 손남수 전 대전청 성실납세지원국장과 이상화 전 대구청 조사2국장이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동안 부이사관 승진자는 본청 주요 과장급에서 배출됐다. 2급 지방청(대전·광주·대구)에서는 물론, 1급 지방청인 서울청과 중부청, 부산청 과장급에서도 부이사관 승진자는 손에 꼽힐만큼 드물었다.

때문에 당시 국세청 안팎에선 본청 중심 인사가 본격적으로 무너지는 계기가 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돌기도 했다. 그만큼 국세청 조직 내에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본청 중심 인사 기조를 깨기에는 지방청 자원이 턱없이 부족, 이후 부이사관 승진자가 순수 지방청 자원에서 나온 경우는 없었다.

다만 능력만 있다면 지방청에서 부이사관 승진자가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임 청장의 파격 인사는 높게 평가되고 있다.     

동시에 능력과 평판이 모자라면 아무리 행정고시 출신이라도 승진 선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킨 것도 임 청장의 인사 업적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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