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사진=조세일보 사진DB)

영업정지 대상 비상장사까지 포함설 나돌다가 제외  

"회계투명성 높이기 보다 회계산업 안정에 우선한 듯"   

금융당국이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의 5조7000억원 규모 분식회계 가담혐의로 오는 4월 5일부터 1년간 신규 회계감사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면서 비상장사를 영업정지 대상에서 제외함에 따라 안진은 폐업이라는 최악의 위기국면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반면 금융당국은 지난 2001년 대우그룹 부실회계로 산동회계법인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린지 16년만에 중징계를 내리면서도 당초 예상보다는 낮은 수준의 징계를 내려 회계투명성 제고 의지가 확고한지 의심을 받게 됐다. 

24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딜로이트 안진에 대한 징계수위와 관련 영업정지 시점과 기간, 범위를 놓고 고심을 거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증선위는 막판에 ▲영업정지 1년에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불문한 모든 기업에 대한 신규 감사계약 금지 ▲영업정지 1년에 상장사에 대한 신규 감사계약 금지라는 2개의 제재안을 놓고 적정 징계수위에 대한 논의를 벌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증선위의 2가지 제재안은 딜로이트 안진의 운명이 '지옥(폐업)이냐 천당(회생)이냐'를 판가름할 마지노선을 넘나드는 수준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안진은 제재결정 직전까지 1400여개 고객 중 다음달 상장사·비상장사 1100곳과의 감사 재계약을 앞둔 상태였다. 신규 감사계약 금지에는 재계약도 포함된다.

□ 회계투명성 제고냐 회계산업 충격 최소화냐 고심  

당초 증선위는 딜로이트 안진에 대한 영업정지 범위를 상장사는 물론 비상장사를 포함하는 것으로 고정 시킨 상태에서 영업정지 기간을 3개월~1년의 범위 안에서 결정하는 쪽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안진은 1100여개 기업의 고객을 잃게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9일 증선위 산하 감리위원회가 열리면서 감리위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렸다.

이날 일부 감리위원들은 영업정지 기간을 1년으로 정하되 영업정지 범위를 상장사 신규 감사계약으로 한정해 제재수위를 낮추자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회계법인에 대해 폐업에 가까운 수준의 제재를 가할 경우 회계산업의 발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대두된 것이다.

그 결과 제재수준이 영업정지 1년에 상장사와 금융사의 신규 감사계약 금지와 지정감사를 제한하는 수준으로 현저하게 낮아진 것이다. 이는 분식회계와 감사실패를 방지해 회계투명성을 높이는 가치보다는 회계산업의 안정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위원들의 의견이 많았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 영업정지 범위 크게 줄여 회계업계 충격 최소화

증선위는 '제재안 발효시점'을 놓고도 고심이 컸다. 외부감사 신규계약이나 재계약이 통상 4월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회계업계 일각에서는 "법원판결이 나오지 않았는데 감독당국의 조사만으로 회계법인에 중징계를 내리는 것은 문제"라며 법원판결이 나올 5월 이후 금융당국의 제재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최근 한 언론인터뷰를 통해 "금융당국에 탄원서를 내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법인에 내려지는 업무정지 조치는 사망선고나 마찬가지"라며 "대우조선-안진 법원판결이 나오는 5월 이후에 금융당국의 징계수위가 정해져도 늦지 않다"며 반박해왔다.

하지만 제재안이 5월 이후 발효되면 제재효과가 반감되거나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게 문제였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점을 감안해 4월 5일 제재의 효력이 발생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외부감사 계약시즌인 4월을 넘겨 영업정지 조치를 내려 사실상 제재효과를 거둘 수 없게될 경우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증선위가 4월 5일 이전 체결한 계약을 무효화하는 내용을 적시한 것도 안진측이 제재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계약해 징계의 충격을 회피하는 것을 방지해 제한된 범위내에서라도 제재효과를 확실히 거두기 위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대우조선해양의 부실로 수조원의 국고지원이 추가로 이뤄져야 할 상황이어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딜로이트 안진은 제재의 효력이 내달 5일부로 발생함에 따라 올해 회계감사 계약을 연장할 예정이던 상장사 고객을 잃은 채 앞으로 1년의 살림을 꾸려가야 한다. 다행히 이에 해당되는 상장사는 100여개에 그쳐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 것은 면하게 됐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이번 결정으로 딜로이트 안진은 폐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하면서도 "다만 이번 제재가 딜로이트 안진에 충분한 회생의 여지를 줬기 때문에 '봐주기 처벌' 논란이 일지는 않을까 다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회계업계에선 증선위가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를 대상으로 신규 감사계약금지 조치를 내렸다면 딜로이트 안진의 회생의 여지가 사실상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있게 나돌았다. 내달 재계약을 앞뒀던 상장사·비상장사 1100곳 모두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