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클립아트코리아.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중복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기업들의 우려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세와 지방소득세의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을 공유하고 중복 세무조사를 원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세법개정안이 수 년 동안 국회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어서다.

중앙정부에선 '세무조사를 자제하라'는 지침을 지자체에 내려 보낸 상태이기는 하지만, 정책 불확실성이 완전히 걷히지 않으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과도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무조사 권한 일원화, 여전히 '군불'만...

세무조사 권한과 과세표준 결정권은 국세청의 고유 권한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말 지방세법이 손질되면서 지방소득세가 독립세로 전환, 과세표준을 결정하는 권한이 지자체로 넘어갔다. 이로 인해 226개의 시·군·구가 지방소득세에 대한 세무조사권을 갖게 됐다. 

당시 지자체의 자주 세원과 과세권을 넓혀 열악한 지방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부각됐다. 지방세법이 개정되기 이전엔 국세청이 거둔 법인세의 10%를 해당 기업의 사업장이나 지사가 있는 각 시·군·구에 배분해왔다.

하지만 지자체의 세무조사권 행사가 하나의 소득에 대한 중복 세무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고개를 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지자체가 국세청에서 결정하는 소득세와 법인세 과세표준과 다르게 별도의 과세표준으로 결정(경정)할 경우, 하나의 소득에 소득·법인세와 지방소득세 간 과세표준이 달라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권리구제를 위한 행정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정치권에선 지자체에 부여된 세무조사권을 무효화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2015년 새누리당 조원진, 심재철 의원(현 자유한국당)이 발의한 지방세법 개정안 등의 내용은 '지방소득세 과세표준에 대해 국세청이 정한 소득·법인세의 과세표준으로 일원화시키고, 지방소득세의 과세표준에 대한 세무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

그러나 국회의 세법 논의과정에서 "지방자치의 과세자주권을 훼손한다"는 지자체들의 반발에 막혀 작년 초 무산된 바 있다.

다만 같은 해 7월 전(全) 지자체를 관장하는 행정자치부가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사실상 정부안이나 다름없는 의원입법안(당시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안)이 발의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 했지만, 지난해 말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지자체 과세자주권 침해 논란이 거세 논의를 뒤로 미루었다.

"세무조사 자제" 외쳐도 기업들은 '벌벌'

현재 세무조사권을 일원화하는 세법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에 있는데, 올해는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다.

작년 국회 논의 테이블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 방안을 두고 '공론화 과정을 거친 후 결정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으나, 정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공청회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행자부는 세무조사권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각 지자체에 세무조사를 자제하라는 별도의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중복 세무조사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감을 덜어준다는 취지에서다.

법인보다 납세 여력이 부족한 개인사업자들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어 개인지방소득세의 경우엔 2019년(당초 올해)부터 변경된 지방세법의 적용을 받도록 유예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각 지자체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을 어길 수 있어, 중복 세무조사는 언제든 기업 등을 위협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기업들 입장에선 납세 예측가능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518개를 대상으로 세제·세정 애로실태조사를 실시(2015년 기준)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77.2%는 '중복 세무조사 가능성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세금 신고, 세무조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이 때문에서다.

일각에선 국회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는 점에서 입법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내에서 "중복 세무조사 피해를 본 기업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법 개정을 요구하는 것은 입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수위 높은 비판까지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에서도 이 논의를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각 당 별로 대권 후보가 정해지지 않아 정치상황이 불확실하다"며 "3월 임시국회에서 세무조사 권한을 일원화하는 개정안이 논의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세무조사권의 운명은 사실상 차기 정부에서 결정하게 되는 셈인데, 차기 정권을 민주당이 잡을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이처럼 논란이 되고 있는 세무조사권 일원화를 받아 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