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조세연 심포지엄. 왼쪽부터 김갑순 한국세무학회장,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 윤지현 서울대 교수,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 오종현 조세연 센터장, 이용주 기재부 과장, 장경덕 매일경제 논설위원.

투자·소비진작을 위한 상속·증여세제 개편 방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이 쏟아졌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원장 박형수)은 '상속·증여세제가 부의 축적과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제51회 납세자의 날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주제 발표는 오종현 조세연 세수추계패널센터장이 맞아 진행했다.

토론 사회는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가 맡았으며, 토론 패널로는 김갑순 한국세무학회장(동국대 교수),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 윤지현 서울대 교수, 이용주 기획재정부 재산세제과장, 장경덕 매일경제 논설위원이 참여했다.

박형수 조세연구원장은 인사말에서 "저성장·고령화 사회에 직면한 우리 경제에서 투자와 소비를 진작시키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상속·증여세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며 "투자나 소비는 젊은 계층에서 더 활발하다. 고령층에서 젊은 계층으로 원활한 자산이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상증세 부담을 낮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상증세 내리면 부의 불평등 완화될 것"

발제에서 오 센터장은 증여세제를 완화할 경우 가난한 자식에게 자산이전이 보다 활발해져서 사회의 자산불평등도를 완화할 수 있다는 취지의 연구결과를 내놨다.

오 센터장은 "부모가 이타적인 동기에서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한다고 가정할 경우 부모는 자녀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 수준을 고려해 자산 이전 규모를 결정한다"며 "즉 자산을 적게 보유하고 있는 자녀에게 더 많은 자산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상증세는 부의 대물림을 축소해 자산 불평등도를 개선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증여세제 완화는 이러한 부의 재분배를 활성화시켜 자산 불평등도를 개선시킨다"고 주장했다.

한편 오 센터장은 현행 10년간 5000만원인 증여세 직계존속공제한도를 1억5000만원 이상으로 확대해도 자산이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30세 이상이 구입하는 주택자금 2억원까지는 자금출처를 묻지 않는 현행 과세제도를 그 이유로 들었다. 

오 센터장은 "설문에서 자녀세대 응답자들이 부모들로부터 이전받는다고 밝힌 평균적인 자산규모는 약 3억1208만원"이라며 "이 중 대부분은 주택자금 및 결혼자금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에서는 결혼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증여세를 신고·납부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과세관청에서도 30세 이상의 가구주가 2억원 이하의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일반적으로 자금출처를 조사하지 않는다. 사회규범상 강력한 조세저항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 센터장은 "현행 증여세 공제한도를 10년간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이상으로 올리더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이전하는 자산의 규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공제제도 완화는 사전증여의 유도를 통한 실질적인 자산이전 효과보다는 증여세제의 현실화에 가까울 것"이라고 밝혔다.

가난한 자식에게 더 증여해 불평등 해소?…"어차피 한 주머니"

이러한 오 센터장의 연구에 대해 일부 토론 패널들은 다른 의견을 내놨다. 부자 부모가 가난한 자식에게 자산을 물려주는 것은 어차피 한 집안 내에서의 부의 이동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불평등 개선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갑순 한국세무학회장은 "부모와 자식은 부라는 측면에서 한 주머니로 봐야한다"며 "상증세 완화는 자산이전 시 세부담을 줄여 자산불평등도를 오히려 키워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고성장 개발경제 시대에 부를 축적한 세대와 현재 저성장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가 직면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부의 이전이라는 목표를 세운다면 고령세대 전체로부터 젊은 세대 전체로의 이전을 가능케 하는 방식이 더 정의롭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상증세를 완화하면 가족 입장에서는 세금부담을 줄이게 되는 것"이라며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재산이전이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증여세 공제 완화를 얘기하기에는 적절치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사회적 의견도 있다"며 "자녀가 아닌 공익법인에 자산을 이전하는 부분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윤지현 서울대 교수는 가족을 하나의 경제단위로 묶어서 보는 시각에 반대 의견을 내놨다.

윤 교수는 "가계를 하나의 단위로 해서 부나 소득을 측정해서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개개인 단위로 세금을 매긴다"며 "부부합산과세, 가구합산과세가 그래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용주 기재부 과장은 주택자금 2억원까지 과세를 하지 않는 현 제도가 증여를 하는 국민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는 측면을 지적했다. 때문에 증여세 공제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이 과장은 "현행 세법에서는 10년간 5000만원까지 증여세가 공제되고, 그 이상부터는 세금을 내도록 되어있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2억원 미만의 주택자금의 경우는 부모가 자식에게 증여해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여세 공제확대는 현실화의 측면이 있다"며 "현실화가 안되다보니 많은 국민들이 법을 어기게 되어버리는 현실이다"라고 밝혔다.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는 상증세 문제에 있어서 과거의 재산형성과정이 무시된 채 형평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곽 교수는 "내 할아버지는 노름을 해서 가산을 탕진해서 우리 아버지가 고생했다고 한다"며 "똑같은 소득을 가지고 시작했더라도 어떤 사람은 재산이 많아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산이 축적됐는지를 봐야하는데, 그건 무시하고 자산만 보고 흙수저, 금수저를 단순히 판단한다"며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서 세금을 많이 걷는 정책을 만들었다고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전체 시스템에서 어떻게 하는게 공평한 분배가 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