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율 인상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식지 않고 있다. '대선 정국'을 만나면서 오히려 불길이 더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거야(巨野)가 당론으로 밀어부쳤던 '법인세율 인상'은 불안한 경제상황에 당위성을 잃어버리면서 무산됐지만,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대선주자들의 공약이 쏟아져 나오면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납세 여력이 있는 기업들의 세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는 경제상황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는 세목이다.

법인세율을 1%p 올렸을 때 수 조원에 달하는 세수가 걷힌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써야 하는 입장에서는 분명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법인세 인상은 기업 투자 위축 및 고용 축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독약'이 될 가능성도 크다. 

대선 주자들은 대체적으로 비과세·감면 제도를 줄여 법인세 실효세율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도를 짜놓고 있다. 일부를 제외하곤 명목세율(법정세율)을 올리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있으나, 비과세·감면을 줄여 사실상 증세 효과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말만 다를 뿐…대선 주자들 너도 나도 '법인세 인상'

대선 주자들은 우리 사회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일자리 문제를 비롯해 출산·육아 관련 복지 공약을 앞다투어 제시하고 있다.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공약들이다. 

재정 충당을 위한 해결책 제시는 필연적으로 따라 붙는 레퍼토리. 대선 주자들은 대표적인 재정 충당책으로 법인세 인상을 꼽고 있다. 세금을 더 낸 만큼 복지 혜택을 늘리는 '증세 있는 복지'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에 대해 '신중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한 '실효세율'을 올리려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대기업에 집중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연구개발(R&D)비용세액공제 등을 과감하게 줄일 가능성이 높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20일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과 관련해 "당장 기업에겐 (적용이) 어렵다"며 "우리나라 법인세의 명목세율은 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 아니지만 실효세율은 상당히 낮다. 대기업에 집중된 특혜적 조세감면 제도를 고치면 실효세율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적인 재정 소요가 발생했을 땐 명목세율 인상까지 고려하겠다는 방향성도 언급했다.

안 지사와 안 전 대표도 명목세율 인상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며 "비과세·감면을 줄여 실효세율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명목세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는 주자들도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을 500억원(현 200억원 이상) 이상으로 올리고, 해당 구간에 30%의 세율을 적용하도록 했다.

현재 최고세율보다 무려 8%p 올라간 수치다. 이 같은 조치를 통해 약 440개의 대기업에서 15조원 가량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명목세율 인상을 주장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감세 이전 수준(25%)으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율 인하 등 감세정책은 이른바 '낙수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영향이 없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기업들이 투자는커녕 금고에 돈(사내유보금)만 잔뜩 쌓는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10년을 유지해 온 감세정책을 철회할 명분이 강하다는 시각도 있다.

◆…"법인세 인상, 경영 활동 부담스럽니다" = 대선 주자들의 법인세 인상 발언을 두고, 국내 기업들이 경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일부 기업에선 "투자를 차차기 정부로 미룰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대선 주자 '입놀림'에 기업 투자·고용 움츠려드나

문제는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이든 비과세·감면 축소든 증세에 따른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다. 매년 법인세율 인상 논란이 반복되면서 조세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벌써부터 기업들은 '경영 활동에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선 소비위축, 일자리 감소의 악순환을 야기해 한국 경제를 깊은 침체로 몰아갈 위기마저 좌초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특히 법인세 실효세율이 최근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법인세 인상에 따른 기업경영 악화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5년 신고기준 전체 기업(12월 결산법인)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전년보다 0.4%p 오른 17.6%로 나타났다.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3년 17.1%에서 2014년 17.2%를 기록하는 등 매년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법인세 실효세율은 계속 올라갔다"며 "지금 대선 주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법인세 부담을 올린다는 것이 생소한 것도 아니기에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딱히 반대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차기 정부에서 법인세를 올리겠다고 하면 기업들이 투자를 차차기 정부로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며 "심리적으로 움츠러들어 투자를 안 하게 된다는 것인데, 결국은 투자를 하기는 하겠지만 유리한 시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를 더 걷겠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세수입 효과가 적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영업 이익이 나지 않으면 법인세를 아예 안 내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법인세를 조금 더 거둔다고 해서 국가경제에 무슨 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법인세가 인상될 경우 자본유출이 증가하고 해외투자가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트럼프의 조세정책의 영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각각 3%p씩 인상할 경우, 투자 감소는 연간 14.3%에 달할 것으로 관측됐다. 고용감소 역시 38만 20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의 관계자는 "법인세는 지금 국제적으로 다 내리고 있는 추세인데, 우리만 올리면 국가경쟁력에 악영향을 주고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재정건전성 측면 증세 공감하지만…"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증세는 불가피한 요소로 인식되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치권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중부담 중복지'를 내건 증세론에 불을 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세금을 더 거둬 복지재원으로 충당해야 한다는데 큰 이견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주요국 법인세 인하추세에 '역행'했을 때 기업들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법인세를 인하하는 추세에서 조세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는 개인보다 (납세) 여력에 있는 법인에 대한 세금 부담에 찬성을 한다"면서도 "우리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현 트럼프 정부의 법인세 감세정책에 따른 우리나라의 법인세 문제는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어 "차기 정부에서 기업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준조세를 안 걷겠다든지 세제지원이 아닌 규제를 풀어준다든지 해서 법인이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을 해결줘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상에 따른 세부담의 실질적인 귀착도 간과할 수 없다.

법인세 부과는 결국 소액주주나 소비자로의 조세전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서다.

윤태화 가천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법인세는 최종 조세부담 귀착이 법인에 가지 않고 소액주주나 소비자, 하청업체에 가기 때문에 대기업 법인세를 올린다는 것은 효율성이 낮다"며 "다른 나라들은 속속 법인세 인하 추세가 많은데, 세수 조달 측면보다는 조세경쟁을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명목세율을 인상하는 부분은 최후 수단으로 해야 한다"며 "정 세부담을 시킨다면 기본적으로 비과세·감면 제도를 평가해서 과감하게 없애고, 초 대기업에 대해서만 (증세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