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리더십 부재 속에 한국외교가 복합 위기에 빠졌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전방위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은 주한대사 소환과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중단 등 전례 없는 보복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도전은 20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일어날 세계 권력구도의 대격변이다. 지금까지의 발언이나 성향으로 볼 때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 각을 세우고 러시아와 연대 협력하는 대외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도 불사하는 외교․안보 3인방의 초강경 발언, 방위비 분담증액 요구, '국경세'로 상징되는 보호무역조치 위협 등은 안보․경제 양면에서 우리에게 엄청난 리스크(위험부담)를 안기고 있다.

중국의 사드압박과 일본과의 위안부 갈등은 박근혜정부가 자초한 외교적 업보(業報)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원칙 없이 오가다 덫에 걸렸고, 미국에 떠밀려 성급하게 위안부 문제를 봉합하는 합의를 했다가 일본으로부터 되레 외교적 공세를 당하는 처지로 몰렸다.

사드 배치 주장이 2014년 중반부터 미국 군부 쪽에서 줄기차게 비공식·공식으로 흘러나왔는데도 2016년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때까지 박근혜 정부는 부인으로 일관해왔다. 그때까지의 사드배치에 대한 한국의 공식 입장은 미국으로부터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이른바 '3 No'이었다. 

처음서부터 사드가 한국 안보에 절대 필요한 무기라고 생각했었다면 국내외적으로 정부가 국익차원에서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펼칠 수 있었다. '3 No'에서 지난해 7월 배치결정으로 갑자기 상황이 바뀐 데 따른 이렇다 할 설명도 없었다.

사드는 1차적으로 주한미군 보호와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이 들어오는 주요 항만 등 전략 시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사드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노동미사일이나 무수단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여 주한미군 기지를 공격하려할 경우 미국은 방어수단이 없다. 한국이  사드 배치에 동의 않으면 북핵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주한미군은 미군철수 등 극단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국이 우리에게 교역1위 국가이고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대이긴 하지만 우리의 안보를 담보해 줄 국가는 아니다. “군사주권 문제여서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강성발언은 이런 절박함을 깔고 있다.

하지만 사드 배치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산물이라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중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사드 배치로 한국이 미·일 간에 구축된 MD(미사일 방어망)에 편입되는 데 대한 경계심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들을 겨냥한 포위망으로 받아들인다.

사드 배치가 남북관계나 국가안보에 큰 실익도 없이 한·중 관계만 악화시키고,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불러오는 것이 오히려 한국의 '큰 안보'를 해칠 수도 있다는 반론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중국은 문화교류와 경제․통상에 이어 군사위협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에 과연 절충지대는 없는 것일까.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인 한국이 일본에 대해 수세에 몰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피해자가 수용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던 대원칙을 버리고 갑자기 위안부 갈등 봉합에 나선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한·일 간 협력은 한·미·일 공조를 가능케 하는 촉매제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과 중국의  지역 패권에 맞서는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을 위해 한일 간 화해를 촉구해왔다.

하지만 떠밀려 합의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 및 관련단체에 대한 사전설득이나 국내여론과의 소통이 전혀 없었다. '소녀상 문제가 적절히 해결되도록 한국정부가 노력한다'는 합의 내용이 소녀상 철거를 전제한 것은 아니라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소녀상을 또 설치하는 것이 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제사회도 '상대국 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지킬 책무'를 규정한 빈 조약 22조와 상치되는 이 같은 조형물 설치에 비판적이다. 덩달아 '언제까지 사과를 반복해야 하느냐'는 일본 측 논리도 먹혀드는 분위기다. 도덕적인 우위에 서서 국제여론의 지원 속에 풀 수 있는 위안부 문제를 '무모한 강경책 뒤의 어설픈 합의'로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결과가 된 것이다. 

일본 아베총리는 “나도 총리로서 비판을 받으면서도 약속을 지키려는 결의를 실행해왔다”며 한국정부가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소녀상 철거에 나서달라고 역공을 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대북 강성 발언이 잇따르면서 동북아 정세는 어느 때보다 요동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북핵 문제와 관련해 대중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대북 선제타격도 배제 않는다는 경고다. 선제타격은 한반도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리가 마냥 박수칠 일은 아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트럼프의 핵심 대선공약이다. 주한미군은 철수시키지 않는 대신 방위비 부담은 더 많이 지울 태세다. 주한미군 인건비 50%를 부담하고 있다는 우리 주장에 국무장관후보는 '100% 부담은 왜 안 되느냐'고 되묻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주한미군의 틀을 흔들 수 있는 사안으로 우리의 대응전략이 시급하다.

해외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에서 이를 팔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매기는 고율의 국경세는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의 부담을 배가시킬 우려가 짙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미국 일자리를 뺏어간 불공정한 협정이라고 비난해 온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들이 내밀 '계산서'에 대한 대비와 협상전략도 고민꺼리다.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한 정부가 4강․유엔대사를 본국으로 긴급 소집하는 등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 등 국내 정치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드 배치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고,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및 여론에 자제를 당부하는 등 '정면 돌파'의 결기도 감지된다.

한미일 동맹과 한중협력은 그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전략적 모호성을 최대한 발휘하며 이 모두를 아우르는 외교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 우리 안보의 최대 화근(禍根)은 북한이다. 북핵 협상이 진전되면 사드배치의 명분은 줄어들 수 있다. 동맹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우리의 발언권도 높아진다.

북한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한·미 군사훈련 조정, 남북 및 북미 대화를 포함해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는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큰 이니시어티브가 필요하다.

이 과업은 아무래도 다음 대통령정부의 몫이다. 현 위기상황에서 대통령권한대행체제는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