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나성동 국세청사.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가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불과 몇 년 사이 공직사회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 선배 공직자들, 특히 장차관급 등 고위공직 출신들이 누렸던 영화(?)는 현재 공직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후배 공직자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됐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태로 신설된 퇴직 후 3년 취업제한 제도로 퇴직후 재취업길도 힘들어진데다 지난 9월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금지법으로 공직생활 자체에 유연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떠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공직에 남아 뼈빠지게 일해도 승진하기 힘든, 현실이 무겁기만 하다.

특히 세종시 시대가 열린 이후 중앙부처의 유능한 공무원들은 속속 관직을 떠나고 있다.

실제 인사혁신처가 중앙 부처의 일반직 공무원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자발적으로 공직을 그만둔 공무원은 2만7027명이며 이 중 절반 가까운 1만3120명이 세종시 이전 후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부터 세종시 이전이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수치다.

국세청도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고 있지만 조직 곳곳에서 '인재유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천기성 기획재정담당관(우측)과 이상우 국제세원관리담당관.

일선 세무서 등 하부조직에서 속해 있더라도 '국세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의 이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로펌, 회계법인, 세무법인 등으로 이직의 기회가 타부처 공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승진 및 보직 문제가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보장된 정년(국세청 4급 이상의 경우 2년 조기 명예퇴직 대상)을 내던지고 세무사 자격을 개별적으로 획득해 개업하는 이들도 많다.

최근 국세청(본청) 핵심 보직에서 근무하며 미래 국세청을 이끌어나갈 인재로 손꼽히든 2명의 4급 간부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세청 안팎에 충격파를 던져줬다.

사직서를 제출한 이들은 천기성 국세청 기획재정담당관과 이상우 국세청 국제세원관리담당관 등 2명.

이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직접적인 이유는 자녀 교육 등 개인적 사유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초중고생 자녀들을 키우고 있을 텐데  세종시와 서울을 오고가며 일과 가정을 모두 돌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본청 과장들은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 안타깝지만 이들이 조직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천 담당관과 이 담당관은 자타공인 국세청 최고의 인재들로 꼽혔다.

두 사람 모두 서울대 출신인데다, 업무능력에 더해 인성까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들이다. 행시출신 공직자 답지 않은(?) 친화력도 갖춰 상하 동료들로부터 신임이 매우 두텁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말 일 잘하는 젊은 인재 2명이 국세청을 나가게 된 것"이라며 "본인들의 결정이 우선이고 우리야 그러려니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들을 잘 아는 국세청 직원들은 아쉬운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무래도 세종시에서 일하면서 원거리의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라며 "국세청이 세종시로 이전한 후 정착한 이들도 많지만 대부분이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공무원이지만 가정을 생각하진 않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근 들어 세종시 직원들 사이에서 퇴직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본청 직원들의 퇴직 현상이 직급과 관계없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아왔던 인물들인 만큼 귀하디 귀한 국세청 출신 자원 확보에 관심이 많은 로펌, 회계법인 등에서 뿌리치기 힘든 영입제안을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들린다.

하지만 이들은 구체적인 향후 행보를 결정지은 채 퇴직을 선택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흔치 않은 '매물'이 시장에 풀렸다는 측면에서 로펌, 회계법인 등이 이들을 둘러싼 치열한 영입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대형 로펌의 경우 이들의 사직서 제출 소식을 접한 후 영입의사를 타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들도 전해지고 있다.

한편 천 담당관은 1971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39회로 국세청에 입문하게 된 그는 서울국세청 국제조사국, 국세청 조사기획과 등에서 일했으며 백용호 전 국세청장 재임시절 정책보좌관(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국세행정선진화 T/F팀장을 맡아 일하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관리과 총괄계장(1계장), 순천세무서장, 서울국세청 조사4국관리과장, 국세청 통계기획팀장 등을 역임했다.

이 담당관은 1968년 충남 부여 출신으로 자양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행시 41회로 국세청에 입문했다. 2008년 서기관 승진 후 마산세무서장, 서울국세청 신고분석2과장, 서울국세청 조사3국조사관리과장, 국세청 징세과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