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나랏빚이 쌓이는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내년 나라살림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이 넘는 규모로 결정됐다(400조5495억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 재정을 더 풀어 경기부양을 노리는 복안이 잔뜩 깔린 것으로 풀이되지만 국가부채 문제는 뒷전에 두면서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슈퍼예산의 추동력인 세수입 여건에 '먹구름'이 잔뜩 끼면서 재원 조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 또한 상당하다는 것이다. 

올해 세수 호조세를 이끌었던 법인·소득·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 세수입의 증가세가 내년에 둔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 등 세수입 악재가 지뢰처럼 깔려있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예산(세출 기준)은 400조5495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과 비교할 때 2000억원이 줄었으나, 올해 예산 386조4000억원보다 14조1000억원(3.7%)이 늘어난 수준이다.

정부는 내년도 전체 세출예산의 68%를 상반기에 배정, 경기둔화를 초반전부터 막아내겠다는 방침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400조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이 여야 합의를 통해 통과된 만큼, 서민생활과 경제안정을 위해 새해 첫날부터 차질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확장적인 재정정책 운영은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진다. 

실제 내년 예산이 확정되면서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40.1%에서 40.4%로 0.3%p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국가채무액도 올해 644조9000억원에서 내년 682조4000억원으로 올라간다.

국회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국채 문제에 대해 대안책을 제시하지 못한 부분은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뒷전'이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내년에 투입될 재원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할 경우 국채발행 등 '빚내기'로 이어져, 재정건전성을 더 훼손시킬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세수기상도 '흐림'

400조원 규모의 슈퍼예산은 내년 실질 GDP성장률 3.0%를 달성하고, 법인들의 실적이나 소비심리가 개선된다는 등의 전제하에 짜여진 것이다.  

정부는 내년 총 수입이 올해보다 5.9% 늘어난 414조3000억원이 걷힐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중 국세수입은 242조3000억원으로, 당초 전망치보다 5000억원 더 늘었다.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 상속증여세 신고세액공제율 축소 등 세법개정 영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내년 세수여건은 결코 녹록치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 실적이 둔화되고 가계소비도 움츠린 기색을 보임에 따라 세수입이 올해만큼 걷히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511개사가 올해 3분기 낸 매출액은 392조5277억원이었는데,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9% 줄었다. 내년 법인세수(3월 법인세 신고액) 증가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소리다.

4분기 법인 실적도 현재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보통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세수도 그만큼 줄게 된다.

정부는 지난 6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내년 성장률을 3%로 제시한 바 있으나, 이달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으면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KDI는 지난 7일 내년 국내 경제가 2.5%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정치혼란이 지속될 시 성장세는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소비도 급격히 줄어든 모습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외식업 운영자 10명 중 6명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매출이 감소했다'는 응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심리 위축 등의 요인으로 부가가치세 수입이 감소할 수 밖에 노릇. 11월 부동산 대책 이후 분양권·입주권 거래량이 줄어듬에 따라 내년 초 양도소득세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전문가들 "세수 확보에 악재 많다"

전문가들도 불확실한 세수입 여건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400조원의 예산을 조달하기엔 대내외 경제 여건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경기 상황을 반영해 내년에 걷히는 세수가 많은데, 내년에는 경기가 올해보다 더 좋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라며 "세수가 그대로 확보될지는 녹록치 않다"고 말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도 "예산안의 전제인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상황에서 목표한 세수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국내 무역 감소로 이어져 국내 성장률과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올해 경기가 나빠서 (세수확보가)어떻게 될지는 불확실하다"라며 "트럼프 정부가 보호무역주의로 가니 수출은 더 안 좋아지며, 우리 정치상황 등도 세수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투명한 재정 전망이 제기되는 만큼 소모성 지출을 대폭 줄여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민 인천재능대학교 교수는 "우리가 400조 예산인데 1% 정도는 우리가 노력하면 우리가 줄일 수 있다"면서 "1% 개선하면 4조 정도의 세수가 확보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