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담 증가로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정부·여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정치적 우위에 선 야당이 '법인세율 인상' 논의에 주도권을 잡고 나선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단행한 법인세율 인하 효과(낙수효과)의 부재를 명분으로 세율인상을 주장해왔지만 최순실 게이트라는 정치논란을 법인세율 인상의 또다른 동력으로 '떡하니' 장착한 형국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기업 강제모금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에게 강제적인 기부, 사실상의 '준조세'를 뜯어내지 말고 당당하게 법인세율을 올리자는 것이다. 

결국에는 기업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 복지재원으로 쓰겠다는 복안인데, 현재로서는 법인세율 인상 시 기업경영을 위축시켜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때문에 조세전문가들은 법인세율 인상과 대내외적 정치논란을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법인세 인상론에 '힘' 실어준 최.순.실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1월7일 현재 205개 세법개정안(정부안+의원입법안)을 조세소위에 상정했는데, 이 가운데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7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안은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구간에 적용될 세율을 25%로, 같은당 이언주 의원안은 무려 '1조원 초과' 구간까지 신설해 32%의 세율을 적용받도록 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안은 과세표준 200억원 초과 구간의 세율을 24%로 적용했으며, 같은 당 박주현 의원안은 2억원 초과 구간에 대해 25%의 세율을 적용시켰다. 

거야(巨野)가 외치는 법인세율 인상안은 국제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많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의 투자 욕구가 고취시킨다는 차원에서 세계적으로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벌여왔다. 실제로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서 19개국이 2008년과 비교해 법인세율을 내렸다.

법인세는 기업의 투자와 직결되는 만큼, 인상여부에 따라 그만큼 투자가 위축될 여지가 있다. 더군다나 법인세 부담은 근로자, 소액주주, 소비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전가될 수 있어 기업은 물론 개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이처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 법안 통과 여부를 좌우할 정치 상황은 오히려 야권에 유리한 형국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파묻혀 정부여당이 국정 추진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형국에서 야당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이 법인세법 개정안을 포함해 예산 부수법안 지정권한을 갖고 있는 부분도 정부여당의 방어력을 궤멸시킬 요인 중 하나다.

특히 야권은 법인세 인상 논의에 최순실 게이트를 대놓고(?) 엮어가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업들이 강요에 의해 수백억원의 출연금을 가져다 바친 것이 사실상 법인세를 낸 것과 다름없는 일이며 기업들의 기부 등 준조세 부담을 내려주고 당당하게 세금을 올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권의 법인세율 인상 영향권에 포함된 대기업들 대부분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고 있어 이들 입장에선 반대의 목소리를 목청껏 뽑아내기도 매우 껄끄러운 상황이 됐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 게이트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정국을 돌파할 승부수로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담보로 해 야권의 법인세율 인상 등 크고 작은 요구를 수용하는 '빅딜'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황당한 시나리오까지 내놓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한국 법인세율 인상 부추긴다고? = 야당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법인세율 인상 논의를 엮으면서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트럼프 경제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재정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재정건전성 차원에서 증세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법인세 인상, 정치적 볼모로 삼지 말아야"

대내외 여건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우선 국세수입의 증가세 둔화 우려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9월말 현재 국세수입은 189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2조6000억원이 늘었다. 세수실적 개선은 법인의 순이익이 늘어나고 소비실적이 개선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소비 위축, 취업난 지속 등의 영향으로 내년의 국세수입 증가세가 올해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막상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올해 세수잭팟에 대한 환호성보다는 내년 세수여건 불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큰 형편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도널드 트럼프'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는 있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입성해 자신이 대선 과정에서 한 공약,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조건으로 한 주한미군 철수 등이 실제 정책적으로 물살을 타게된다면 '경직성 예산'인 우리나라의 국방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올해 부담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9441억원에 달한다. 이를 100%까지 부담하라고 요구했을 경우, 매년 약 1조원의 추가소요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야권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저소득층의 대폭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는 점에 주목,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증세정책과 결부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법인세율 인하, 상속세 폐지 등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공약했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뒤로 제쳐둔 형국이다.

하지만 법인세율을 올렸을 때 단기적으로 세수가 늘지만 장기적으론 투자 감소 등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도 재계, 학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김성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2% 올렸을 때 투자가 단기적으로는 2.0% 감소, 장기적으로는 3.5%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으로 환산했을 땐 단기적으로는 7조7000억원, 장기적으로는 13조5000억원의 투자가 줄어들게 된다.

트럼프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35%에 달하는 미국의 법인세율을 15%로 떨어뜨려 낮은 세율을 찾아 미국땅을 떠난 기업들을 다시 돌아오도록 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거꾸로 법인세 인상을 외치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조세경쟁력이 떨어질 여지도 있다. 

최근 미국 조세재단이 발표한 '2016년 조세경쟁력지수(ITCI)'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법인세 분야 경쟁력은 20위(60.2점)로 하위권에 속했다. 보고서는 "한국도 법인세율을 낮춰야 해외투자유치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이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야권이 제안하고 있는 법인세율 인상 대신 매년 20조원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는 준조세 부담을 낮춘다는 정책방향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내놓고 있다. 

기업의 경영활동과 결부되는 각종 규제 철폐 여부 권한은 정부가 가지고 있고 특히 이 부처 저 부처에 권한이 분산, 이를 체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정비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부자증세, 감세라는 표현을 써가며 왜곡된 시각으로 보다보니 기업들만 어려워지고 있다"며 "법인세를 정치적 이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법인세는 경제를 이끌어가는 방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라며 "법인세율 인상으로 경제가 안 좋아지면 야당이 '독박'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윤태화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도 "재벌에게 세금을 더 물린다든지 너무 정치적으로 법인세율 인상문제를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