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세무서 직원이 세무조사 대상자를 상급기관 승인 없이 임의로 삭제했지만 국세청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자 관리 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0일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세무조사 운영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세무서에서 관할 지방국세청이 선정한 개인 정기조사 대상자의 전산자료를 임의로 삭제하거나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B세무서는 2012년 5월 관할 지방국세청으로부터 부동산 임대업자 E씨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B세무서 조사담당 직원 G씨는 그해 7월 E씨가 정기조사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공문을 받은 후 2013년 2월 업무가 변경될 때까지 E씨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할 때에도 '수기대장'에 E씨에 대한 선정내역을 누락했다.

후임자 역시 국세행정시스템을 통해 E씨가 미결 조사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G씨의 답변에 미결사항으로 판단해 후임자에게도 인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더해 해당과 팀장은 아예 E씨를 조사대상자에서 삭제하는 이해 못할 행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담당 팀장 I씨는 지난해 5월 국세행정시스템에서 조사대상자를 조회하던 중 2012년 5월 정기세무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E씨가 미결상태로 남아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I씨는 조회 화면을 출력해 담당자 J에게 주면서 "어떤 사항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으나, J는 지방청에 문의도 하지 않고 수기대장 등만 찾아보고 "어떤 자료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이에 I씨는 본인이 직접 확인하지 않고 지난해 5월12일 근무시간 중 업무용 컴퓨터로 국세행정시스템에 접속한 후 조사대상 목록에서 당시 부과제척기간이 남아 있던 E씨의 선정내역 정보를 임의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I씨는 이 같은 내용을 상급자인 담당 과장이나 세무서장에게 보고 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2010년 귀속연도 정기세무조사 대상자로 분류되어 있던 E에 대한 세무조사는 실시되지 않았고 국세 부과제척기간이 올해 5월31일자로 경과, 제척기간 경과 분에 대한 세무조사는 더이상 실시할 수 없게 됐다.

국세청의 가장 강력한 권한이자, 공정성이 그 어떤 업무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세무조사가 일선 직원들의 손 끝에 의해 한순간에 '없던 일'이 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해 감사원은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자 관리체계에 전반적인 '허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세무조사 대상자 명단이 유출될 것을 우려, 조사 착수하기 전까지는 조사관리 업무 담당 팀장과 과장에게만 조사대상자 선정 자료에 대한 정보접근을 허용하고 있다.

일선 세무서 조사업무 담당자는 상급관서의 사전 승인 없이 조사대상자 선정 내역 자료를 임의로 정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또 상급관서인 지방국세청 조사업무 담당자가 국세행정시스템에 세무조사 관련 내용을 입력하고 일선 세무서로 관할을 변경하고 나면 이후엔 조사 진행상황을 조회할 수 없도록 막아 놓은 것도 엄격한 관리·감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감사원은 문제를 야기한 이들의 행위는 통상적인 조사관리업무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중대한 부당행위로, 고의성 여부를 떠나 정직에 해당하는 중징계 처분을 내리고 관련자에게 주의를 촉구하도록 국세청에 권고했다. 

아울러 일선 세무서의 조사관리업무 담당자가 국세행정시스템에 입력된 세무조사 대상자에 대한 선정내역 관련 자료를 임의로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고 지방국세청에서 일선 세무서를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을 권고했다. 

문제를 일으킨 I씨는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업무처리가 미숙했을 뿐 고의로 전산자료를 삭제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B세무서에서만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T세무서에서도 이와 거의 동일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T세무서 2011년 4월 관할 지방국세청으로부터 요식업을 영위하는 개인사업자 K씨를 2009년 귀속연도 정기 세무조사 대상자로 통보 받아 관리했다.

그런데 T세무서 조사관리업무 담당자 L씨는 2013년 다른 세무서로 전보될 때까지 K씨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할 때 수기대장에 선정 내역을 슬그머니 빼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B세무서 I팀장과 마찬가지로 T세무서 조사담당 팀장 M씨는 2011년 9월 국세행정시스템에서 K씨가 조사 대상자에 선정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를 임의 삭제하고 상급자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

M씨는 왜 삭제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고의로 삭제한 것은 아니었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M씨의 비위행위는 징계사유의 시효가 완료됐지만 재발방지를 위해 엄중한 인사조치가 필요하다며 관할 지방국세청장은 이를 인사자료로 활용해 달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