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적(敵)? = 조세심판원과 국세청은 정기적으로 국·과장급 인사교류를 통해 양측 기관 간 원활한 소통을 유지하면서 업무에 있어서도 협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행정심판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 부여를 놓고는 쌍심지를 켜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 심판원에서는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데 반해, 국세청은 불합리한 심판결정은 잡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추경호 의원(새누리당)의 입법안과 별개로, 국세청이 기획재정부에 재의권 부여를 골자로 한 세법개정 건의를 한 배경에는 어느 순간 뿌리깊게 내려버린 두 기관의 '감정의 골'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국세청 안팎에서는 조세심판원의 심판결정 중 일정 부분에 대해 '불신'을 표출하는 모습이 종종 엿보이고 있다.

서로 다른 설립 취지가 만들어낸 운명적인 대립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납세자'가 중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두 기관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으르렁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판결정(인용)에 대한 국세청의 재의권 부여를 무조건 '나쁜 법개정'으로 몰아세우기는 힘들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이를 허용하는 외국의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 저기 엮이는 게 많은, 매우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법 개정을 추진하지 말고 납세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중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글부글' 끓는 조세심판원

조세심판원은 추 의원의 입법안에 대해 심판결정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조세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체적으로 심판원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심판원을 설립한 취지가 행정부에서 잘못 휘두른 과세권력으로부터 선의의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차원이고, 이를 '정부의 조정자' 역할을 하는 국무총리 산하에 둔 것도(애초 설립시에는 기획재정부 산하였지만) 다른 기관의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하라는 의미다.

비록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세법에 상임심판관들의 자격요건과 임기 등을 명시해 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이 최근 1~2년 사이 조세송사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가 반영되어서인지 몰라도, 세액이 큰 관심 사건이 자신들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갈 기미가 보이면 조직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심판결정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인데도, 필사적이다"라고 촌평했다.

심판원의 입장은 굳이 재의권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시스템으로 충분히 여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세심판관회의 결정에도 불구, '일관성 유지가 필요하거나 국세행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일 경우 심판관회의를 거쳐 다수가 참여하는 합동회의에 부의해 인용 또는 기각 결정을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 심판결정 과정에서 국세청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심판원 일각에서는 두 기관이 상명하복(上命下服) 관계는 아니지만, 하급행정청이 상급재결기관의 결정에 반발하는 모양새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국가행정조직의 지휘·명령체계에도 부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심판청구와 유사한 기능인 국세청과 감사원 심사청구 심사청구 역시 행정청의 재의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심판원 관계자는 "다른 행정심판에서도 행정청의 불복을 허용한 사례가 없으므로 굳이 이를 법제화시키기 보다는 행정청 자체적으로 조세심판관합동회의를 융통성 있게 운용해 나가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말했다.

추 의원의 입법안을 뜯어보아도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범위가 추상적이다 보니 국세청 입맛대로 재의 요구를 남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심판관회의에서 인용된 사안에 대해 국세청이 요구하면 합동회의에 부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심판결정에 대한 국세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심판원 관계자는 "국세청의 합동회의 재의를 요구한다는 것이 결국 무슨 뜻이겠냐. (인용)결정이 잘못됐다는 이야기 아니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심판결정 내용을 다수결 원칙인 합동회의에서 뒤바꾸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갈했다.

심판결정에 대한 납세자의 신뢰성도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개정안은 국세청이 심판결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국세청의 재의요구 여부가 확인되기 전까지 청구인인 납세자의 법적 불안전정성이 지속되고, 혹여 결과가 바뀌어 버리면 가뜩이나 심심찮게 제기되는 심판결정의 전문성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국세청-조세심판원, '싸움박질' 할 때가 아니고 '반성'부터해야

사실 재의권 부여 논란은 조세심판원이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심판원의 인용결정이 기획재정부의 유권해석이나 법원판결과 배치되는 경향이 종종 나타나고 있어서다. 

실예로 주택사업공제조합이 대한주택보증으로 전환되면서 출자지분을 주식으로 배정받은 경우 출자금액과 주식배정 금액과의 차액을 손금에 산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사건과 관련해 심판원은 취득과정에서 발생한 투자자산 처분손실로 보고 손금에 산입하는 것이 인용결정했다.

반면 대법원 판결에서는 자산의 평가차손으로 보고 손금 산입을 불허했다. 이는 국세청이 기재부에 세법개정을 건의했을 때 근거로 제시했던 사례다.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들어 심판원에서 인용하는 사례와 유사한 사건들이 대법원에 가서 엎어지는 경우가 있고, 기재부 예규와 다르게 판단을 내리고 있다"며 "심판결정을 한번 더 심사숙고하라는 취지에서 재의권 신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에서 납세자 승소 결정이 내려진 사안과 유사한 사건이 있더라도 심판원에서는 결정방향을 바꾸는데 소극적이라는 인식 또한 여전하다는 것도 문제다. 오죽했으면 국세청이 재의권 확보에 목을 매고 있는지 알만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심판원장이 심판부 결정을 무력화시키고, 사건 재검토(재심)을 남발해 왔다는 비판도 받아왔다는 점에서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국세청의 재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자체도 넌센스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전임 심판원장들의 지나친 국고주의적 태도가 '합동회의' 남발로 이어지면서 납세자 특히 '로비력'을 갖춘 대기업과 국세청이 '비상임심판관들에게까지 가서 로비를 한다'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는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정부 관계자는 "합동회의를 들어가보면 참석한 비상임심판관들이 어느 쪽 입장을 설명듣고 왔는지, 다 티가 난다. 반대입장(청구인 또는 국세청)은 아예 훑어보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현행 규정상 합동회의 구성시 비상임심판관 풀 중 원장이 지정하는 인물로 구성되도록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원장이 심판부 결정을 뒤바꾸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안팎에서는 최근 제출된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의 입법안(합동회의 구성 비상임심판관 무작위 추출 방식 전환)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심판결정 투명성 제고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세무대리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심판원 투명성 문제는 다 알지 않느냐. 투명성에 대한 의심을 걷어내지 않으니, 과세관청도 (심판원을)믿지 못한다. 재의권 논란에 심판원이 열불만 내지 말고, 왜 이런 문제가 불거졌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세무대리인은 "국세청도 반성해야 한다. 심판원에서 기각된 건이 법원가서 깨지는 일이 빈번하지 않느냐. 심판원 단계만 무사히 넘기면 부실과세 책임에서 회피하도록 하는 성과체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 법원 결정으로 부실과세로 최종 판단되면, 어느 자리에 앉아 있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