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자'둘', 그러나... =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왼쪽)이 K스포츠재단에 돈을 대는 조건으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오른쪽)에게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했다는 보도가 나와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불똥은 세무조사 담당기관인 국세청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다른 기업에게까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중근 한 발 늦은 청탁, 안종범 무마시도 미수 그쳤을 것" 분석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K스포츠재단에 대한 자금지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세무조사 편의를 봐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넣었다는 언론 보도를 둘러싸고 논란의 불이 지펴졌다.

최순실 게이트 검찰 수사가 이미 구속된 최순실, 안종범 전 수석을 넘어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뭉칫돈을 갖다 바친 기업 및 기업인들에 대한 수사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엉뚱하게(?) 국세청도 엮이는 모양새가 갖춰진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한 이중근 회장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촉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안종범-이중근, '밀거래' 시도했다?

한겨레신문이 입수한 K스포츠재단 회의록에 따르면 안종범, 이중근 두 사람은 지난 2월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K스포츠재단 관계자 등과 만나 자금지원 문제를 협의했다.

참석자는 총 5명으로 부영측에서는 이중근 회장과 김 모 사장이 참석한 것으로 회의록에는 기재되어 있다. 이 자리에서 안 전 수석 등은 부영측에 K스포츠재단의 사업과 관련해 70~80억원 정도의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시설 등을 지어달라고 한 것이 아닌, '재정적 지원' 즉 현금을 요구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겨레신문 11월2일자 <안종범, 부영 회장과 "70억 지원" "세무조사 편의" 뒷거래> 보도에 첨부된 회의록. 회의록에는 당시 참석자 및 발언(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상세히 적혀 있다. 문건의 지위여부, 세무조사 결과 여부를 떠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부영 세무조사에 대해 원칙대로 했으며 탈세혐의로 검찰 고발까지 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요청에 이중근 회장은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현재 저희가 다소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회의록에 남겨져 있다.

돈과 권력을 교환하자는 제안에 K스포츠재단측은 부영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밀거래의 성사여부를 떠나 안 전 수석과 이 회장 사이에 오고간 이야기는 검찰 수사로 이어질 수 있는 매개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는 '실패한 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국세청 내부에서는 '국세청 세무조사의 공정성 시비로 불거져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국세청 "부영에 1000억 세금추징, 검찰 고발까지 했는데..."

국세청 내부에서는 안 전 수석과 이 회장 등 두 사람이 만나 밀거래를 시도했다는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의록에 기록된 이들의 만남 날짜는 2월26일. 국세청이 부영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시점은 지난해 12월 초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투입된 조사인력들은 탈세혐의에 대한 세무조사(심층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소속이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진행 도중 명백한 탈세혐의를 잡아내 올해 1월 중하순을 전후해 조세범칙심의위원회를 통해 부영에 대한 세무조사의 성격을 '고발'을 전제한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이미 국세청은 이 회장은 물론 부영그룹에 대한 검찰 고발을 염두에 두고 추가적인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무조사 종료와 함께 국세청은 부영그룹에 1000억원을 상회하는 세금을 추징하는 한편 세금포탈 및 횡령혐의로 이중근 회장과 부영그룹 핵심 계열사인 부영주택을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시점은 4월19일이었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사건을 배당해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이런 일련의 흐름을 감안할 때 안 전 수석과 이 회장이 만난 시점에는 이미 세금추징액 및 검찰 고발에 대한 사항들이 구체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회장의 청탁과 별개로 안 전 수석이 '힘'을 쓰기도 애매하고 힘을 쓴다해도 흐름을 바꾸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이미 세금추징액과 검찰 고발 방침이 서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안다. 이 와중에 방침을 바꿨다면, 대번에 조사반 내부에서도 '위험성'을 인지했을 것이다"라며 "십 수년전이라면 몰라도 요즘 '윗선 지시'라는 뉘앙스를 주면 조사반원들이 크게 동요하고 심지어 조사반에서 빼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타이밍상 안 전 수석이 아니라 대통령이 전화를 했더라도 (상황이)바뀌기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라며 "애초 부영 세무조사 착수를 전후해서도 국세청과 과거 안좋은 사건에 얽혔던 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조사 착수 이후에도 부영측에서 여기 저기 라인을 동원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더 조사를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칙대로 했고, 세금추징과 검찰고발까지 정해 놓은 방침대로 이행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중근 회장은 지난 2004년 봉태열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에게 1억3000만원 상당의 뇌물(국민주택채권)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 징역형을 살다 2008년 사면됐다. 당시 이 회장과 봉 전 청장의 커넥션은 국세청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현재 봉 전 청장은 부영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안종범-이중근 밀거래, 성사됐더라면?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이 회장이 안 전 수석에게 한 청탁은 실패한 로비로 보인다. 

다만 안팎에서는 안 전 수석이 과연 청탁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덮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즉 이 회장의 청탁에 대해 어떠한 '액션'을 취했지만, 이미 물꼬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인지한 후 부영그룹으로부터의 자금지원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안팎에서는 의혹이 불거져 나온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실체적 진실은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만약 안 전 수석이 세무조사 무마와 관련한 시도를 했다면, 국세청 고위층을 상대로 했을 것이고 시도가 성공을 했다면 국세청은 과거 수 많은 '정치세무조사' 논란이 가져왔던 고위직 구속 등 우울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