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북한 핵시설을 선제 타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합참의장을 지낸 마이크 멀린은 지난달 16일 미국 외교협회주최 토론회에서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아주 근접하고,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고 본다”며 운을 떼었다.

민주당 부통령후보가 선제 타격 가능성을 공개 언급한데 이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12일 “북한이 핵 공격을 수행할 향상된 능력을 갖추는 순간 (김정은은) 죽는다”고 극언까지 했다. 

한미 양국 군당국 또한 실행옵션 내지 대북 협박카드로 핵무기와 미사일 관련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폭격'과 북한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서슴없이 언급하는 상황이다.

선제타격은 북한의 핵 공격 징후가 있을 때 미리 공격해 핵 공격 능력을 제거하는 개념이다. 국제법상 적의 공격 위협이 임박하고, 이를 막을 수단이 없을 경우 위협의 정도에 비례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이른바 '예방적 자위권'에 근거한 개념으로, 핵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위협이 임박했음이 확인됐을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스파이 등 인적정보 취득은 한계가 있고, 위성 등 감시·정찰 자산을 동원한 종합 분석도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 공격을 준비하는 정황이 없는 상황에서 선제타격에 나설 경우 임박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예방공격이라는 시비를 각오해야 한다. 또한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경우에는 비례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따라서 미국이 언급하는 '선제타격'은 현실적으로 위협요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의 성격이 짙다. 북한 동향을 실시간 밀착 감시할 정보정찰자산과 함께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일거에 제거할 수 있도록 미국의 정밀타격자산을 가까운 거리에 전진 배치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타격 운운은 다소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예방타격의 성공사례로 이스라엘군이 1981년 6월 7일 감행한 이라크 오시락 원자로 기습폭격작전이 꼽힌다. 그해 7월로 예정된 원자로 가동에 앞서 군사적 공격을 결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완공돼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진 북한 영변 원자로를 파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영변 원자로를 파괴할 경우 영변 핵시설 지역은 물론  400∼1천400㎞ 떨어진 지역도 방사능 오염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전해진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예방적 타격은 이미 시기를 놓친 측면도 있다.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이 수립됐던 1994년에는 한 번의 정밀타격으로 핵시설을 모두 파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비밀 핵 시설이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는 데다 핵무기 운반수단이 발전해 이곳저곳 신속한 이동도 가능하다. 

먼저 공격해 반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북한을 꼼짝 못 하게 제압할 수 있을 때 선제타격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동식 발사대에 놓인 북한 미사일들을 실시간 모두 추적해 파괴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더구나 북한이 이미 핵탄두를 소량·경량화 했다면 즉각적인 핵미사일 반격도 가능하다.

'북폭'을 단행할 경우 북한이 이를 전쟁으로 간주, 장사정포로 수도권과 전방 전선 공격에 나선다면 전면전에다 핵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만으로 파악해도 현시점에서 선제타격이든 예방타격이든 우리에겐 둘 다 위험천만하다.

'참수작전'으로 나토연합군의 리비아 카다피 제거작전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그러나 리비아의 경우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내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정부군이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등 극심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북한의 경우 김정은 정권의 주민 탄압이 극에 달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국제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당장 리비아 사례를  북한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고, 이 경우도 전면전을 각오해야한다.

때문에 한미 양국에서 거론되는 선제타격론은 현 단계에서 '압박카드'로서의 성격이 짙다. 청와대 관계자도 “실행 가능성은 낮지만, 선제타격이란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는 것은 사실”임을 부인치 않는다고 한다.

외교로 북핵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대북 군사조치에 대한 동조자는 나라안팎에서 늘고 있다. 심각한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지금까지의 금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적 제재와 압박으로 북핵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실패했다. 1993년 이후 올 3월까지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이 7건 나왔지만 중국의 비협조로 '끝장제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기 전까지 모든 자격을 갖춘 핵보유국으로 만드는 일에  혈안이 돼 있다.  

불행하게도 현 시점에서 대북제재 강화나 협상개시를 위해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대북 제재 강화는 중국 손에, 대북 협상 카드는 미국 손에 있을 뿐이다.

이렇다 할 타개방안 없이 미국 발 선제타격론에 박근혜정부가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미국 강경파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크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탈북을 종용하고 북한 붕괴론을 언급하는 것도 미국의 군사 모험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 대통령의 대북 초강경 메시지는 북한을 핵 포기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핵에 더욱 매달리게 해서 핵 보유 쪽으로 몰아가는 결과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대북 선제타격론은 물론이고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과 전술핵 재배치론, 대북 협상론 등 백가쟁명식 주장도 쏟아진다. 딱한 것은 어느 주장도 주어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우리 입장에서 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게 전략적 유연성부터 갖춰야 한다. 강경론이 득세할 경우 1994년처럼 우리 정부의 만류와는 관계없이 미국이 북폭을 준비할 수도 있다. '순간의 오판'에 의한 파국은 어떻게든 막아야한다.

대북 강경론의 한편에선 “김정은의 체면을 살려 주는 출구 전략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미국 조야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이 갑자기 '바'(bar)를 낮춰 대북 협상에 나서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생각 자체를 못하도록 강력한 대북 억지력 유지에 만전을 기하면서 외교적 돌파구도 함께 찾아야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국론도 결집시켜야 한다. 북한붕괴론으로 북한을 자극하거나 북한 주민더러 '남으로 오라'는 식의 유도는 정책일 수가 없다. 늦어도 미국 차기 행정부의 정책검토 이전에 대북전략을 재조정해 우리 나름의 복안과 해법을 갖고 미국 등 관련국들과의 소통에 임해야한다.